시골 고등학교 도서관 만화책 ㄴ
요즈음에는 어떠할는지 모르지만, 지난날에는 아이들이 학교로 만화책을 몰래 가져와서 서로 돌려읽곤 했다. 만화책이 있는 아이도 없는 아이도 학교에서 만화책 한 권을 같이 읽으면서 즐거운 이야기에 빠져들곤 했다.
국립도서관이나 시립도서관이나 군립도서관에서는 만화책을 좀처럼 장만하거나 갖추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만화책을 ‘책’으로 안 여긴다. 만화책 가운데 몇 가지는 도서관에도 들어가고 ‘추천 교양도서’ 이름을 받지만, 어여쁜 이야기와 그림으로 어여쁜 꿈과 사랑을 심도록 이끄는 멋진 만화책이 두루 알려지거나 읽히지는 않는다.
지난날에는 학교에서 교사가 왜 만화책을 빼앗아서 찢거나 불살랐을까. 왜냐하면, 교사 스스로 만화책을 제대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학교에서 왜 만화책을 먼저 장만해서 도서관에 갖출 수 있는가. 왜냐하면 오늘날 교사 가운데에는 어릴 적부터 만화를 보고 자라면서 ‘만화책도 아름다운 책 가운데 하나’인 줄 알아챈 어른이 있기 때문이다.
숲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숲이 베푸는 기운을 모른다. 나무를 심어서 돌본 적 없는 사람은 나무와 함께 일구는 살림을 모른다. 풀을 손수 뜯어서 먹은 적 없는 사람은 풀내음이 우리한테 어떤 사랑인지를 모른다. 기저귀를 손수 갈며 빨래해서 말리고 갠 적이 없는 사람은 아기를 돌보는 하루가 얼마나 고되면서 즐거운지를 모른다.
만화는 글과 그림으로 이야기를 엮는다. 문학은 오직 글로 이야기를 엮는데, 만화책은 글과 그림을 함께 쓰기 때문에, 만화책에서 흐르는 글은 문학과 같고, 만화책에 깃드는 그림은 예술과 같다. 문학과 예술이 한자리에서 어우러질 때에 어여쁜 만화책이 태어난다. 그냥저냥 따분하거나 이냥저냥 읽어치우는 만화책이 있지만, 두고두고 되읽는 아름다운 만화책이 있다. 두고두고 되읽는 아름다운 만화책은 문학과 예술을 고루 갖춘다.
시골 아이들도 도시 아이들도 아름다운 숨소리를 만화책에서 배울 수 있기를 빈다. 시골 어른들도 도시 어른들도 사랑스러운 노랫소리를 만화책에서 얻을 수 있기를 빈다. 4347.1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책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