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516) 자체 1


조심스런 말투 그 자체가 나쁠 것은 없다

《카또오 노리히로/서은혜 옮김-사죄와 망언 사이에서》(창작과비평사,1998) 6쪽


 말투 그 자체가 나쁠 것은 없다

→ 말투가 나쁠 까닭은 없다

→ 말투가 꼭 나쁠 것은 없다

→ 말투가 그다지 나쁘지 않다

→ 말투가 그렇게 나쁘지 없다

 …



  ‘자체’라는 한자말을 언제부터 썼을까 궁금합니다. 예전 어르신은 이 말투를 쓰지 않았고 지난날 문학에서도 이 말투를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한국말사전 말풀이를 살피면 거의 관용구처럼 쓴다고 하는데, 한국사람이 어느 때부터 이러한 관용구를 받아들였는지 궁금합니다. 이런저런 관용구가 아니라면 우리 삶터를 나타내기 어렵거나, 우리 삶자락을 보여주기 어려울까 궁금합니다.


 살아 있는 육체 그 자체의 아름다움

→ 살아 숨쉬는 몸을 그대로 보여주는 아름다움

→ 살아 숨쉬는 몸을 그대로 느끼는 아름다움

 죽음이란 말 자체도

→ 죽음이란 말부터도

→ 죽음이란 말마저도

→ 죽음이란 말은 그 말대로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은 그 자체가 기적이다

→ 아무 일 없이 돌아왔으니 바로 기적이다

→ 잘 돌아왔다니 더없이 놀랍다


  예부터 한국사람은 ‘자체’ 같은 낱말을 안 쓰고 ‘바로’나 ‘그대로’ 같은 낱말을 썼습니다. ‘-부터’나 ‘-조차’나 ‘-마저’ 같은 토씨를 붙였습니다. 때와 곳에 따라 알맞게 여러 가지 말을 썼습니다. 흐름과 느낌에 따라 온갖 말을 골고루 썼습니다. “네가 하는 그 말 자체가 문제야”가 아닌 “네가 하는 그 말이 바로 잘못이야”나 “네가 그렇게 하는 말이 바로 잘못이야”처럼 말했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쓰는 교과서에서 ‘자체’라는 낱말을 씁니다. 인문책이나 문학책에서 ‘자체’라는 낱말을 거리끼지 않고 씁니다. 신문과 방송에서도 이 낱말을 두루 씁니다. 이러는 사이 한국말은 빛을 잃습니다. 골고루 쓰던 온갖 한국말이 차츰 설 자리를 빼앗깁니다.


 일에 몰두해 있는 모습 자체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 일에 온마음을 쏟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 일에 모두를 바치는 모습 그대로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의 발상 자체는 특이한 것이었지만

→ 그가 내놓은 생각은 퍽 남다르지만

→ 그이 생각은 무척 새롭지만

→ 그 사람 생각은 꽤 새롭지만


  ‘자체’라는 낱말을 넣으면서 뜻이나 느낌을 한결 힘주어 나타낸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니까, 뜻이나 느낌을 한결 힘주어 나타내도록 여러 가지 꾸밈말을 알맞게 넣으면 될 노릇입니다. “모습 자체가 얼마나 아름다운가”가 아닌 “모습이 참으로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든지 “모습이 참말 얼마나 아름다운가”처럼 적으면 됩니다. “발상 자체는 특이한”이 아닌 “생각은 참으로 남다른”이나 “생각은 무척 새로운”처럼 적으면 돼요. 4339.3.5.해/4342.12.16.물/4347.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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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말투가 나쁠 까닭은 없다

“나쁠 것은 없다”는“나쁠 까닭은 없다”나 “나쁘지는 않다”로 다듬습니다. ‘조심(操心)스런’은 그대로 두어도 됩니다. 다만, 조금 더 마음을 쓸 수 있다면 ‘조용한 말투’나 ‘다소곳한 말투’나 ‘나즈막한 말투’쯤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자체(自體)

1. (다른 명사나 ‘그’ 뒤에 쓰여) 바로 그 본래의 바탕

   - 살아 있는 육체 그 자체의 아름다움 / 

     죽음이란 말 자체도 우습게 여겨졌다 /

     그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은 그 자체가 기적이다 /

     일에 몰두해 있는 모습 자체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

     그의 발상 자체는 특이한 것이었지만 현실성이 없었다

2. (주로 명사 앞에 쓰이거나 ‘자체의’ 꼴로 쓰여) 다른 것을 제외한 사물 본래의 몸체

   - 자체 점검 / 새로운 기술의 자체 개발에 성공하다 / 자체의 무게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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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527) 자체 2


이 일에 나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고, 그 점을 잘 알고 있지만, 나는 나의 노력 자체가 기쁘다

《웬델 베리/박경미 옮김-삶은 기적이다》(녹색평론사,2006) 71쪽


 나의 노력 자체가 기쁘다

→ 내가 애썼다는 대목이 기쁘다

→ 내가 애썼기 때문에 기쁘다

→ 내가 참으로 애썼기에 기쁘다

→ 내가 흘린 땀이 있기에 기쁘다

→ 바로 내 땀방울이 기쁘다

→ 무엇보다 내 땀방울이 기쁘다

→ 참말 내 땀방울이 기쁘다

→ 내가 애쓴 모습이 무엇보다 기쁘다

→ 내가 애썼기에 더없이 기쁘다

 …



  이 보기글에서는 ‘자체’를 ‘바로’로 고쳐써도 잘 어울립니다. 이를테면, “나는 바로 내 노력이 기쁘다”처럼 적을 수 있어요. 한자말 ‘노력’을 손질해서 “나는 바로 내 땀방울이 기쁘다”처럼 적어도 되고, 글투를 더 손질해서 “나는 바로 내가 흘린 땀이 기쁘다”라든지 “나는 바로 내가 애썼기에 기쁘다”처럼 적을 수 있어요. ‘바로’ 말고 ‘무엇보다’나 ‘참말’을 넣을 수도 있습니다. 4339.3.20.달/4342.12.16.물/4347.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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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일을 썩 잘하지 못했고, 이를 잘 알지만, 나는 바로 내가 애썼기 때문에 기쁘다


“이 일에 나는 그다지 성공(成功)하지 못했고”는 “나는 이 일을 썩 잘하지 못했고”나 “나는 이 일을 그다지 제대로 하지 못했고”나 “나는 이 일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로 다듬고, “그 점(點)을”은 “이를”이나 “그 대목을”이나 “그러한 줄”로 다듬으며, “알고 있지만”은 “알지만”으로 다듬습니다. “나의 노력(努力)”은 “내 땀방울”이나 “내가 한 일”이나 “내가 애쓴 일”로 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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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718) 자체 8


어느 정도 생존 그 자체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혹독한 생활이었다

《가지무라 히데키(梶村秀樹)/이현무 옮김-한국사입문》(백산서당,1985) 131쪽


 생존 그 자체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 살아남을지조차 알 수 없는

→ 살아남을 수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 살는지 죽을는지 알 길이 없는

→ 살아남기조차 어려운

→ 살아갈 수조차 없는

 …



  한자말 ‘생존’을 그대로 두려 한다면 “생존조차”로 적으면 됩니다. “그 자체”는 군더더기입니다. 왜냐하면 ‘-조차’라는 토씨를 붙이거든요. 한국말에서는 ‘-조차’나 ‘-마저’ 같은 토씨를 써서 뜻이나 느낌을 살립니다. 4340.3.25.해/4347.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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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살아남을 수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모진 나날이었다


‘어느 정도(程度)’는 ‘얼마나’나 ‘어떻게’나 ‘어느 만큼’으로 다듬고, ‘생존(生存)’은 ‘살아남다’로 다듬으며, ‘혹독(酷毒)한’은 ‘모진’이나 ‘고달픈’이나 ‘괴로운’으로 다듬습니다. “보장(保障)받지 못하는”은 “알 수 없는”으로 손질하고, ‘생활(生活)’은 ‘나날’이나 ‘하루’나 ‘삶’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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