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과 일본의 근대 살림지식총서 188
최경옥 지음 / 살림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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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한자말’을 무턱대고 쓰는 한국

― 번역과 일본의 근대

 최경옥 글

 살림 펴냄, 2005.7.15.



  최경옥 님이 쓴 《번역과 일본의 근대》(살림,2005)라는 책은 일본이라는 나라가 ‘개화기’라고 하는 때에 서양 문화와 문명을 어떻게 받아들이려 했는지 들려줍니다. 서양은 서양말을 쓰고 일본은 일본말을 쓰니, 일본에서 서양 문화와 문명을 받아들이려 한다면, 일본에서 서양말을 쓰든지 서양말을 일본말로 옮겨야 합니다. 이때에 일본에서는 ‘서양말을 그대로 쓰는 길’보다 ‘서양말을 일본말로 옮기는 길’을 걷는다고 합니다.


  곰곰이 돌아봅니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서양말을 한국말로 옮기는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예나 이제나 한국에서는 한국말을 살리는 길로 가지 않을 뿐더러, 한국말을 생각하면서 한국 사회나 문화를 가꾸는 길로 가지 않습니다.



.. 대체로 동양식 근대화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사유양식이 지니는 체제유지의 촉매제 역할로서 자본주의적 근대화를 위한 부국강병을 전제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 관점이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문명개화인 것이다 … 메이지 정변 이전의 막부 관료 출신으로서 ‘한쇼구라베죠’에 소속된 인물들이었고, 주로 외국어 중심의 신지식을 가지고 막부 정부에 참가했다 ..  (10, 24쪽)



  일본은 왜 서양말을 일본말로 옮기려 했을까요. 일본 사회와 문화가 발돋움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왜 서양말을 안 쓰고 일본말을 쓰려고 했을까요. 낯선 문화나 문명을 낯선 말로 들려주면 알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왜 한국말을 살리거나 가꾸지 않을까요. 한국 사회나 문화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개화기나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이 되고 한국사람 스스로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교육을 다스린다고 하지만, 왜 아직도 한국에서는 한국말로 가르치거나 배우는 얼거리를 세우지 않을까요.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한국말을 제대로 다루거나 바라보거나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일본 국내에서는 낭만주의, 자연주의, 사회주의와 같은 신사조가 받아들여지게 되는데 이 시기를 제2차 서양지향기라 한다. 이 시기에는 제 1차 서양지향기에 탄생된 언문일치가 정착의 단계를 맞이하며, 소학교에서 국정교과서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표준어 성립이라는 근대적 국가의 틀을 갖추어 가는 시기가 된다. 메이지 시대는 이와 같은 과정 속에서 급격한 어휘 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렇게 증가된 단어는 ‘번역한자어’가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  (30쪽)



  그런데, 《번역과 일본의 근대》라는 책을 읽으면, 이 책을 이루는 글은 온통 ‘일본 한자말’입니다. 토씨는 한국말이지만, 낱말은 거의 모두 ‘일본 한자말’입니다. 말투도 한국사람 말투가 아니라 일본 말투이거나 번역 말투입니다. 일본에서는 서양 문화와 문명을 받아들이려고 하면서 서양말을 ‘번역 한자말’을 썼다고 하지만, 한국은 왜 한국말도 못 쓰고 한국 말투도 못 쓸까요. 왜 한국은 번역 말투에다가 일본 말투가 뒤섞인 엉성한 말투를 쓸까요. 일본은 그들 나름대로 ‘번역말’을 짓고 가꾸고 손질하고 보듬으면서 그들 사회와 문화를 세웠지만, 한국은 지난날이나 오늘날이나 아직 우리 나름대로 ‘번역말’을 짓지도 못하고, ‘한국말 살리기’조차 못 합니다.


  말이 바르게 서지 않은 나라에 어떤 문화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말을 바르게 살리지 못하는 나라에서 어떤 문명을 일굴 만할까 궁금합니다.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데, 이런 바탕으로 서양말이나 한자말을 제대로 익히거나 다룰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 후쿠자와가 전혀 새로운 번역어를 만들어내지 않고 일본어에서 사용되고 있던 단어를 굳이 끄집어내어 사용한 것은 되도록이면 일본인의 일상적 언어생활에서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번역어로 사용하려 했던 그의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현실과 동떨어진 말이 아니라, 현실에 살아 있는 단어를 새로이 조작하고 조합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려는 그의 의도는 … 한국의 서구문명 수용은 사실상 일본의 경험에 의해 이미 걸러진, 다시 말해 일본에 의해 번역된 제2의 서구문명을 이식받은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33, 79쪽)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사람이 지은 ‘일본말’은 “일본인의 일상적 언어생활에서 이해할 수 있는 단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인의 일상적 언어생활에서 이해할 수 있는 단어”는 무엇일까요. 이런 말마디는 얼마나 ‘한국말’다울까요. ‘일본사람이 으레 쓰는 쉬운 말’로 ‘번역말’을 짓고, 학문을 하고 책을 옮기고 문화와 문명을 갈고닦은 일본입니다. 이와 달리, ‘한국사람이 으레 쓰는 쉬운 말’이든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쓰는 수수한 말’이든 ‘한국사람이 고장마다 즐겁게 쓰는 말’이든 ‘어른과 아이가 모두 알아듣는 쉽고 깨끗한 말’이든, 한국말이라 할 참다운 한국말로 학문을 하거나 문화나 문명을 갈고닦을 날은 언제쯤이 될까 잘 모르겠습니다.


  일본에서 서양 문화와 문명을 받아들인 까닭은 일본에 새롭게 거듭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서양 문화와 문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새롭게 거듭나고 싶기 때문이어야 합니다. 일본 뒤를 좇는다든지 미국 꽁무니를 따르려고 서양 문화와 문명을 받아들일 까닭은 없습니다.


  영어를 쓰든 일본 한자말을 쓰든, 아니면 한국말을 슬기롭고 아름다우며 사랑스럽게 갈고닦든, 아무쪼록 한국사람 스스로 제 넋과 얼을 똑똑히 찾을 수 있기를 빕니다. 4347.12.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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