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608) 거칠게 말하다 1
지극히 거칠은 대로 문학 일반에 대한 고찰은 이쯤 해 두고, 이번에는 전래동화가 무엇인가를 알아보자
《이오덕-삶·문학·교육》(종로서적,1987) 132쪽
거칠은 대로
→ 모자란 대로
→ 모자라나마
→ 어설픈 대로
→ 엉성한 대로
→ 살짝이나마
→ 수박 겉핥기 같지만
…
이오덕 님은 1990년대 끝무렵부터 ‘우리 글 바로쓰기’ 이야기를 펼칩니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에 스며든 일본 말투와 일본 한자말을 낱낱이 살피고 캐내어 옳게 가다듬는 길을 밝힙니다. 그러나 이오덕 님이 1980년대 끝무렵까지 쓴 글에서도 얄궂거나 어설픈 말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직 이녁 글투와 말투까지 찬찬히 가다듬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나중에는 이 얄궂거나 어설픈 말투를 바로잡으셨지만, 1980년대 첫무렵까지 쓰신 글에서는 “거칠게 말하다”처럼 쓴 말투도 나타납니다.
거칠은 대로 (x)
거친 대로 (o)
‘거칠다’라는 낱말은 “거칠은 대로”가 아니라 “거친 대로”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그리고, 한국말 ‘거칠다’는 “살갗이 거칠다”나 “옷감이 거칠다”나 “땅이 거칠다”나 “일솜씨가 거칠다”나 “거친 물살”이나 “거친 세상”이나 “거친 말”처럼 써요. 이 보기글에 나오듯이 ‘가볍게 다루거나 살짝 짚는다’고 하는 자리에는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학문을 밝히는 자리라든지, 어떤 사상이나 철학을 펼치는 자리에서 ‘거칠게 말하다’ 같은 말투를 곧잘 씁니다. 거칠게 하는 말이 있다면 부드럽게 하는 말도 있을 텐데, 문학 일반을 ‘거칠게’ 말하는 일과 ‘부드럽게’ 말하는 일은 어떻게 다를까요?
찬찬히 시간과 품을 들여서 깊고 또렷하게 말하고 싶으나, 이렇게 할 만한 틈이 없고 자리가 모자라서 하는 말이 ‘거칠게 하는 말’일까요? 그런데, 이러한 뜻으로 쓰려는 말이라면 ‘어설프나마’나 ‘모자라나마’나 ‘살짝이나마’ 같은 말을 넣어야 알맞습니다. 깊이 살피지 못하는 말이라면 ‘수박 겉핥기’ 같은 말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거칠게 말하다”는 마구잡이로 하는 말을 가리킵니다. “거칠게 말하다”는 다른 사람을 나쁘게 깎아내리려는 말을 가리킵니다. 4339.9.1.쇠/4347.11.2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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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라나마 여느 문학은 이쯤 살펴보고, 이제는 전래동화가 무엇인가를 알아보자
‘지극(至極)히’는 ‘몹시’나 ‘아주’나 ‘매우’로 다듬습니다. ‘이번(-番)’은 그대로 두어도 되고, ‘이제’로 손볼 수 있습니다. “문학 일반(一般)에 대(對)한 고찰(考察)은 이쯤 해 두고”는 “문학 일반은 이쯤 살펴보고”나 “여느 문학은 이쯤 살펴보고”나 “문학은 이쯤 살펴보고”로 손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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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도 익혀야지
(624) 거칠게 말하다 2
사실 얼마나 거칠은 편견들이 우리들의 눈을 가리고 있고, 또 얼마나 많은 파당적 견해에 스스로 눈을 감곤 하던가
《김명철-아름다운 소풍》(눈빛,2002) 15쪽
얼마나 거칠은 편견들이
→ 얼마나 엉성한 생각이
→ 얼마나 어설픈 생각이
→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생각이
→ 얼마나 터무니없는 생각이
→ 얼마나 어이없는 생각이
→ 얼마나 바보스런 생각이
…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은 ‘거칠’ 수 있을까요? 생각이 ‘거칠다’고 말하려 한다면, 생각이 ‘어설프다’는 뜻은 될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그러나, “거칠게 말하다” 꼴로 적는 글투는 영어 ‘tough’나 ‘rough’를 어설피 옮겨서 잘못 퍼진다고 여길 만합니다. 새롭게 쓰는 한국말이 아니라 엉성하게 잘못 쓰는 말투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보기글에서 말하는 “거칠은 편견”이란 “엉성한 생각”입니다. 제대로 짜지 못한 생각이기에 엉성합니다. 올바로 헤아리지 못하는 생각이기에 엉성합니다. 엉성하다 보니 터무니없거나 어이없습니다. 터무니없거나 어이없기에 바보스럽거나 말이 안 됩니다. 4339.10.10.불/4347.11.29.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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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얼마나 엉성한 생각이 우리 눈을 가리고, 또 얼마나 많은 치우친 생각에 스스로 눈을 감곤 하던가
‘사실(事實)’은 ‘알고 보면’으로 다듬고, ‘편견(偏見)’은 ‘치우친 생각’으로 다듬습니다. “우리들의 눈을 가리고 있고”는 “우리 눈을 가리고”로 손보고, “파당적(派黨的) 견해(見解)”는 “치우친 생각”이나 “한쪽에 얽매인 생각”으로 손봅니다. ‘파당’이란 ‘파벌’입니다. 그러니 어느 한쪽 사람이나 모임에 얽매이는 치우친 생각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보면, 앞과 뒤 모두 “치우친 생각”을 말하는 셈입니다. 앞쪽에서는 ‘거칠다’라는 낱말을 넣었으니 앞쪽에 있는 “거칠은 편견”은 “엉성한 생각”이나 “터무니없는 생각”이나 “어설픈 생각”이나 “말도 안 되는 생각”으로 손질하고, 뒤쪽은 “치우친 생각”으로 손질해 줍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