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555) -들 3


복음과 신앙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자기네 실천들에서 복음과 신앙을 생활화하는 그리스도 신자들은 가장 어려운 길을 선택하고 있다

《보프/김수복 옮김-해방신학 입문》(한마당,1987) 22쪽


 자기네 실천들에서 생활화하는

→ 제 삶에서 펼치는

→ 제 삶에서 보여주는

→ 저희 삶에서 누리는

→ 저희 삶에서 나누는

 그리스도 신자들은

→ 그리스도 신자는

→ 교인은

→ 사람은

 …



  한자말 ‘실천(實踐)’은 “생각한 바를 실제로 행함”을 뜻합니다. 움직임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나 서양말에서는 ‘실천’이라는 낱말도 겹셈으로 적을는지 모르나, 한국말에서는 ‘실천’이든 ‘움직임’이든 모두 홑셈으로 적습니다. 그러니까, “하기로 했으면 실천을 해야지”처럼 적을 뿐, “하기로 했으면 실천들을 해야지”처럼 적지 않습니다. “그것도 실천이라고 했느냐”처럼 말할 뿐, “그것도 실천들이라고 했느냐”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보기글 뒤쪽에 나오는 “그리스도 신자들”은 그대로 둘 만합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도 “그리스도 신자”로 적을 수 있고, ‘-들’을 덜어야 한결 매끄럽습니다. 그리스도 신자라 한다면 ‘천주교인’이나 ‘개신교인’입니다. ‘교인’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종교를 이야기하는 보기글이니 굳이 ‘교인’으로 안 적고 ‘사람’으로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4339.5.22.달/4347.11.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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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말씀과 믿음에서 새 숨을 받고 날마다 제 삶에서 기쁜 말씀과 믿음을 펼치는 사람은 가장 어려운 길을 고른다


“복음(福音)과 신앙(信仰)으로부터”는 “복음과 신앙에서”나 “기쁜 말씀과 믿음에서”로 손보고, “영감(靈感)을 얻고”는 “새 숨을 받고”나 “새 넋이 되고”나 “새 기운을 받고”로 손봅니다. “자기(自己)네 실천(實踐)들에서 복음과 신앙을 생활화(生活化)하는 그리스도(Kristos) 신자(信者)”는 “저희 삶에서 기쁜 말씀과 믿음을 펼치는”이나 “제 삶에서 기쁜 말씀과 믿음을 누리는”으로 손질합니다. “선택(選擇)하고 있다”는 “고른다”나 “걷는다”로 다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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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672) -들 4


여름이면 마당 가득 풀들이 우거지고 칡덩굴이며 산머루덩굴이 지붕을 덮어 내렸다. 그 방안에 누워 아주 가끔은 나를 떠나간 세상의 얼굴들을 떠올렸고, 그때 혹여 뜨거운 것들이 누선을 타고 흐르기도 했던가

《박남준-나비가 날아간 자리》(광개토,2001) 53쪽


 마당 가득 풀들이 우거지고

→ 마당 가득 풀이 우거지고

 나를 떠나간 세상의 얼굴들

→ 나를 떠나간 이 세상 얼굴

→ 나를 떠나간 세상

→ 나를 떠나간 얼굴

→ 나를 떠나간 이웃 얼굴

→ 나를 떠나간 여러 얼굴

 뜨거운 것들이 누선을 타고

→ 뜨거운 것이 눈물샘을 타고

→ 뜨거운 기운이 눈물샘을 타고

→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



  우거진 ‘풀’은 ‘풀들’이라 하고 지붕을 덮은 ‘칡덩굴’과 ‘산머루덩굴’은 ‘-들’을 안 붙이는군요. 두 자리 모두 ‘-들’ 없이 “마당 가득 풀이 우거지고”처럼 적어야 올바릅니다. 우리는 “산과 들에 꽃이 많이 피었다”고 말하지, “산들과 들들에 꽃들이 많이 피었다”처럼 말하지 않아요.


  “나를 떠나간 세상의 얼굴”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이 세상”을 가리킬는지, 아니면 “이웃이나 동무”를 가리킬는지 아리송합니다. 어느 것을 가리키거나 누구를 가리키는지 또렷이 적어야지 싶습니다.


  ‘눈물’을 “뜨거운 것”이라 적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뜨거운 것들이 흐르”지는 않습니다. 눈물이 흐른다고 할 적에는 “눈물이 흐른다”고 할 뿐, “눈물들이 흐른다”고 하지 않아요. 비가 내린다고 할 적에는 “비가 내린다”고 할 뿐, “비들이 내린다”고 하지 않습니다. 아무 자리에나 ‘-들’을 붙인들 문학이 되지 않습니다. 4339.12.28.나무/4347.11.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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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마당 가득 풀이 우거지고 칡덩굴이며 산머루덩굴이 지붕을 덮어 내렸다. 그 방에 누워 아주 가끔은 나를 떠나간 얼굴을 떠올렸고, 그때 뜨거운 것이 눈물샘을 타고 흐르기도 했던가


“방안에 누워”는 “방에 누워”로 손보고, “세상(世上)의 얼굴”은 “이웃 얼굴”로 손봅니다. ‘혹여(或如)’는 ‘어쩌면’이나 ‘어쩌다가’로 손질하거나 덜어냅니다. ‘누선(淚腺)’은 ‘눈물샘’으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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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34) -들 5


옆집 할머니 호미질에 게들이 야단이 났어

《도토리 엮음-야 미역 좀 봐》(보리,2004) 8쪽


 게들이 야단이 났어

→ 게가 큰일이 났어

→ 게한테 큰일이 났어

→ 게가 아주 바빠

→ 게가 시끌벅적해

 …



  이 글월에서는 “게들”로 적을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그러나 “게”라고만 적어도 됩니다. 찬찬히 헤아려 보면, “게”라고 적을 때에 한결 잘 어울립니다. 왜냐하면, 이 글월은 바닷가에서 할머니‘들’이 갯벌에 나와서 콕콕 뻘흙을 쪼면서 일하는 모습을 그립니다. ‘옆집 할머니’는 한 분일 수 있어서 ‘할머니’라고만 적었다고 할 수 있으나, 갯벌에서 호미질을 하는 할머니는 여럿 있거나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글로 적으면서 “할머니들이 호미질을 할 적에 게들한테 큰일이 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할머니가 호미질을 할 적에 게한테 큰일이 났다”고 할 때에 글흐름이 매끄럽습니다. 4347.11.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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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할머니 호미질에 게한테 큰일이 났어


“야단(惹端)이 났어”는 “큰일이 났어”나 “시끌벅적해”나 “시끄러워”나 “아주 바빠”나 “왁자지껄해”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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