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903) 것 43


“이건 내가 먼저 찾은 거야, 저리 가!” “어차피 그건 주인이 없는 건데.” …… 하지만, 개는 곧 쓰레기 봉지를 뒤지는 것만큼이나 흙에 코를 대고 킁킁대는 일이 좋다는 걸 알게 되었어

《박기범-미친개》(낮은산,2008) 8, 18쪽


 이건 내가 먼저 찾은 거야

→ 이건 내가 먼저 찾았어

→ 이 먹이는 내가 먼저 찾았어

 …



  어른문학을 읽을 적에도 ‘것’을 곧잘 봅니다. 어린이문학을 읽으면서도 ‘것’을 으레 봅니다. 하루하루 가만히 돌아보면, 나날이 ‘것’ 쓰임새가 늘어납니다. 어른문학에서도 ‘것’을 아무 자리에나 함부로 넣지만, 어린이문학에서도 ‘것’을 몹시 자주 아무렇게나 넣습니다.


  줄거리만 잘 짠다거나 줄거리에 깃들 넋만 옳게 가다듬는다고 해서 문학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줄거리와 글쓴이 넋에다가 올곧은 말마디가 어우러져야 비로소 문학입니다.


  더욱이, 어린이문학이란 아이들한테 좋은 이야기와 함께 좋은 말을 나누는 문학입니다. 아이들은 어린이문학을 읽으면서 말을 배우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저희 어버이가 쥐어 준 어린이책을 읽으면서 이 책에 담긴 말투를 입으로 굴리며 한 마디 두 마디 새롭게 익힙니다.


 그건 주인이 없는 건데

→ 그 먹이는 임자가 없는데

→ 따로 임자가 없는데


  어른문학을 하는 이들 또한 낱말 하나 토씨 하나 말투 하나 섣불리 쓸 수 없습니다. 깊이 살피고 두루 헤아리면서 말을 엮어야 합니다. 어린이문학을 하는 이들은 더더욱 낱말과 말투와 토씨를 깊고 두루 살펴야 합니다.


  우리 말과 글을 아직 잘 모른다면, 말하기와 글쓰기부터 차근차근 배워야 합니다. 나이 서른이든 나이 마흔이든 나이 쉰이나 예순이든, 문학을 하는 이들은 늘 새삼스레 말을 배우고 글을 익혀야 합니다.


  글로 이루는 문학이기에 글을 배울 노릇이고, 말로 피우는 꽃이니까 말을 익힐 노릇입니다.


 뒤지는 것만큼이나

→ 뒤질 때만큼이나

→ 뒤지기만큼이나


  이래저래 흔히 쓰는 말투 ‘것’이니, 이런 말투쯤이야 쉽게 생각할 수 있겠지요. 한두 군데쯤 슬쩍 남겨 두어도 나쁘지 않다 여길 만하겠지요. 엉뚱한 영어나 얄궂은 일본 한자말을 안 썼으니 괜찮다 볼 수 있겠지요.


  아흔아홉 가지 말투는 슬기롭게 가다듬었으나 한 가지 말투는 아직 제대로 못 가다듬었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처음부터 빈틈없이 글을 쓰거나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둘 추스르는 말투요 글투라 할 만하겠지요.


 좋다는 걸 알게 되었어

→ 좋은 줄을 알았어

→ 좋구나 하고 알았어


  딱딱하게 맞추라는 말투가 아닙니다. 아름다이 여밀 말투입니다. 틀에 박히게 꿰어맞추라는 글투가 아닙니다. 사랑스레 보듬을 글투입니다.


  ‘것’을 정 쓰고프다면 어느 자리에 어떻게 써야 알맞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것’ 한 마디는 글에 어떻게 녹아날 때에 좋을까 하고 곱씹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이러한 말투에 젖어들도록 이끄는 문학 하나란 얼마나 문학다운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4344.1.26.물/4347.11.2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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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먹이는 내가 먼저 찾았어, 저리 가!” “어차피 그 먹이는 임자가 없는데.” … 그렇지만, 개는 곧 쓰레기 봉지를 뒤질 때만큼이나 흙에 코를 대고 킁킁대는 일이 좋은 줄 알았어


‘주인(主人)’은 ‘임자’로 다듬습니다. ‘하지만’은 ‘그렇지만’이나 ‘그러나’나 ‘그런데’로 고쳐씁니다. “알게 되었어”는 “알았어”로 손질해 줍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907) 것 45


하지만 그렇게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당시에는 ‘미국인이라서 갖는 특권’이란 게 있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던 것도 들 수 있습니다

《C.더글러스 러미스,쓰지 신이치/김경인 옮김-에콜로지와 평화의 교차점》(녹색평론사,2010) 47쪽


 특권이란 게 있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던 것도

→ 특권이 있는 줄 느끼지 못한 탓도

→ 특권이 있다고 깨닫지 못한 까닭도

→ 특권이 있음을 알아채지 못한 대목도

→ 특권을 생각하지 못한 (내) 모습도

 …



  짧은 글 한 줄에 ‘것’이 세 마디 깃듭니다. 아마 이 글을 옮긴 분이나 이 글을 엮어 책으로 낸 분이나 한국말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탓이지 싶습니다.


  이 보기글에서는, ‘것’만 던다 해서 다 되지 않습니다. ‘것’은 덜 수 있으나 글월을 글월다이 여미지 못하면 도루묵입니다. 말투가 한국 말투여야 하고 글투는 한국 글투여야 합니다. 여느 자리 여느 낱말은 한국 낱말이어야 해요. 하나하나 따지고, 차근차근 톺아보며, 곰곰이 되새길 때라야 바야흐로 참말을 한다 이야기합니다. 참글을 쓰자면 예쁘장하거나 멋스럽거나 지식이 흘러넘치는 글이 아니라, 생각과 삶과 사랑과 꿈을 고이 모시면서 둘레 사람한테 즐거이 나누는 글이 되도록 힘을 쏟아야 합니다.


  글이란, 쓰는 사람 마음에 따라 쓰지만, 읽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써야 합니다. 말이란, 하는 사람 뜻에 따라 하지만, 듣는 사람을 헤아리는 뜻을 되새기며 해야 합니다. 


  글 한 줄이기에 사랑을 담아서 씁니다. 글 한 줄이니 사랑을 실어서 나눕니다. 글 한 줄부터 온 사랑을 바칠 수 있을 때에, 글 한 줄 두 줄 엮이고 모이며 아름다운 이야기 한 자락이나 어여쁜 책 하나 태어납니다. 4344.2.5.흙/4347.11.2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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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게 즐거울 수 있던 까닭으로, 그무렵에는 ‘미국사람 특권’이 있는 줄 느끼지 못한 대목도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무렵에는 ‘미국사람이라서 갖는 특권’이 있는 줄 깨닫지 못해서 그렇게 즐거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은 ‘그러하지만’이나 ‘그렇지만’이나 ‘그러나’나 ‘그런데’로 고쳐씁니다. ‘행복(幸福)할’은 ‘즐거울’로 다듬고, ‘이유(理由)’는 ‘까닭’으로 다듬으며, ‘당시(當時)’는 ‘그때’나 ‘그무렵’으로 다듬습니다. ‘미국인(-人)’은 ‘미국사람’으로 손질하고, ‘의식(意識)하지’는 ‘느끼지’나 ‘알지’나 ‘깨닫지’로 손질해 줍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898) 것 41


소리질러 대는 게 자주 들리거든 … 인제 알에서 모두 잘 깨어 나온 거거든 … 그럴 때마다 입에 침이 가득 고여. 침 삼키는 것도 조심하면서 아버지한테 갖다 드리고 얼른 돌아서야 돼

《박선미-달걀 한 개》(보리,2006) 6, 14, 29쪽


 소리질러 대는 게 자주 들리거든

→ 소리질러 대는 모습이 자주 보이거든

→ 질러대는 소리가 자주 들리거든

 인제 알에서 모두 잘 깨어 나온 거거든

→ 인제 알에서 모두 잘 깨어 나왔거든

→ 인제 알에서 모두 잘 깨어 나온 셈이거든

 …



  글쓴이가 조금 더 마음을 쏟으며 글 한 줄을 적바림했다면 “소리질러 대는 게”처럼 적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글쓴이 스스로 이와 같은 말투에 익숙하니까 이처럼 글을 쓸 테지요. 글쓴이한테 익숙한 이 말투를 듣는 아이들은 이 말투에 젖어들며 이 말투를 고스란히 따라합니다. 살가운 말투이거나 얄궂은 말투이거나 아이들은 깊이 헤아리지 못합니다. 둘레 어른들이나 또래 아이들이 하는 말에 쉽게 젖어들어요.


  초등학교 교사라면, 또 중학교나 고등학교 교사라면 아이들 앞에서 말 한 마디 하면서 몸가짐을 매우 잘 추슬러야 합니다. 아이들은 말씨 하나 말투 하나 말결 하나 쏙쏙 받아먹기 때문입니다.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도 이와 매한가지예요. 아이들은 책으로만 배우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책으로는 하나도 안 배울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늘 삶으로 배웁니다. 날마다 부대끼거나 만나는 사람들과 어우르는 삶으로 배웁니다.


 침 삼키는 것도 조심하면서

→ 침 삼키기도 잘 살피면서

→ 침이 나오지 않도록 꾹 참으면서

→ 침을 꾹 참으면서


  말은 말대로 잘 가누어야 하는데, 말마디만 가누려 한들 말마디조차 가누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삶을 알뜰히 가누려 할 적에 비로소 말을 알뜰히 가눌 수 있습니다. 글만 번듯하게 쓸 수 없습니다. 삶을 번듯하게 일굴 적에 글을 번듯하게 추스를 수 있습니다. 빈틈없이 글을 쓰고 싶다면 빈틈없이 살아갈 노릇이고, 아름다이 글을 쓰고 싶으면 아름다이 살아갈 노릇입니다.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착하다고 느낄 글을 씁니다. 재미나게 살아가는 사람은 재미나다고 느낄 글을 씁니다. 이런 글은 이런 글대로 이런 삶을 읽으니 반갑고, 저런 글은 저런 글대로 저런 삶을 읽어서 반갑습니다. 그러나, 온갖 삶을 만나서 반갑기만 하지는 않아요. 삶다운 삶이어야 반갑고, 고우며 참답고 착한 삶일 때에 즐겁습니다. 마땅한 소리인데, 겉발린 글이나 번드레하게 보이는 글은 하나도 안 반갑습니다. 속이 깊고 고우며 참다우면서 착한 글일 때에 반갑습니다. 4343.11.2.불/4347.11.2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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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러대는 소리가 자주 들리거든 … 인제 알에서 모두 잘 깨어 나왔거든 … 그럴 때마다 입에 침이 가득 고여. 침 삼키기도 꾹 참으면서 아버지한테 갖다 드리고 얼른 돌아서야 돼


‘조심(操心)하면서’는 그대로 둘 수 있으나 ‘잘 살피면서’나 ‘꾹 참으면서’로 다듬으면 한결 낫습니다. 익히 쓰는 대로 쓰는 말투란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조금 더 살필 수 있는 말투라면 훨씬 낫고, 더욱 마음을 쓰면서 가눌 수 있는 말투라면 참으로 좋아요.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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