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원전 잔혹史 - 지속 가능하고 안전한 사회를 물려주고자 고민하는 시민들에게
김성환.이승준 지음 / 철수와영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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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67



깨끗하고 아름다운 전기는 어디에?

― 한국 원전 잔혹사

 김성환·이승준 글

 철수와영희 펴냄, 2014.11.21.



  원자폭탄이나 핵폭탄 이야기를 어릴 적부터 들었습니다. 둘레 어른들은 일본 제국주의가 원자폭탄이나 핵폭탄을 맞아서 무너졌다고 우리한테 이야기했습니다. 처음에는 원자폭탄과 핵폭탄이 서로 다른 폭탄인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같은 폭탄을 다른 이름으로 가리킬 뿐인 줄 나중에 알아차렸습니다.


  1980년대 첫무렵에 국민학교를 다니는데, 학교에서는 ‘앞으로 석탄과 석유가 바닥이 나면 전기를 어떻게 얻어야 하는가?’ 하고 물으면서 ‘원자력발전’이 우리 앞날에 빛이 될 수 있다고, 지하자원이 얼마 없는 한국은 앞으로 원자력발전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때 나는 씩씩하게 담임 교사한테 여쭈었습니다. “선생님, 원자력발전은 원자폭탄을 만드는 그 ‘원자’하고 같나요?” 그때 담임 교사는 똑같은 ‘원자’이지만, 발전소는 ‘안전’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교과서에도 나오는데, 원자력발전소를 지으면 방사능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방사능을 막느라 시멘트를 아주 두껍게 겹겹이 쌓아야 하고, 방사능이 사라져서 사람이 피해를 안 받기까지 수만 해나 수십만 해가 흐른다고 했습니다. 수력과 화력과 원자력을 놓고 ‘건설비’는 원자력이 가장 적게 든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때에도 나는 참으로 궁금했습니다. 발전소가 문을 닫고 나서 ‘방사능 쓰레기’를 수만 해나 수십만 해를 시멘트더미에 꽁꽁 가두어야 하는데, 어떻게 ‘원자력발전소 건설비가 가장 싸다’고 말할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어요. 그래서, 이 대목을 담임 교사한테 다시 여쭈었지요. 이때 담임 교사는 “교과서에 나온 대로 외워! 시험에는 이대로 나온다!” 하고 윽박지르고 끝냈습니다.



.. 원전이 정지됐다는 소식을 듣고 한수원 관계자들에게 연락하면 그들은 “안전하게 자동정지됐고, 방사능 유출은 없다.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안전하다는 음성이 흘러나오는 전화기 저편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기자들이 난리 친다”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 지식경제부는 “원전 부품 납품업체 8개사 제출한 해외 품질 검증기관의 품질검증서 60건이 위조된 것을 외부 제보로 확인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수원의 품질관리 시스템 전반을 종합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8개월 전 고리원전 1호기 정전 은폐 사고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때였다 ..  (15, 33쪽)



  얼추 서른 해쯤 지난 예전 이야기를 가만히 떠올리면서 되새깁니다. 원자력발전소는 값이 적게 들지도 않고, 안전하지도 않으며, 우리한테 도움이 되거나 좋을 일이 한 가지도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가 있어요.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서 나오는 ‘핵쓰레기’를 ‘핵무기’로 만들 수 있습니다. 또는, ‘핵쓰레기’를 무기로 만들지 않더라도, 이웃나라와 전쟁을 벌일 적에 이웃나라에 ‘핵쓰레기를 갖다가 버리’면, 핵쓰레기로도 무시무시한 ‘무기 구실’을 합니다.


  열 살 안팎이던 어린 나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라에서 굳이 원자력발전소에 어마어마한 돈을 들이는 까닭은 이 나라에 군대가 있고 평화가 없으며 남북이 서로 갈라졌기 때문이로구나 싶었어요. 일본과 중국과 러시아가 군대를 자꾸 키우기만 하니 한국 정부도 군대를 키우려는 뜻으로 원자력발전소를 자꾸 늘리려는구나 하고 깨달았어요.



.. 원전이 대표적인 혐오시설이 된 오늘날 소외 지역에만 들어서는 원전을 바라보며 해당 지역 주민들은 “차라리 서울 한복판에 원전을 지어라.” 하고 말한다. 전기는 도시에서 쓰면서 왜 자기들에게 위험을 전가하느냐는 얘기다 … 한수원이 국회에 제출한 2010∼2012년 사이에 집행한 마을발전기금 지급 내역을 보면, 원전 주변지역에 지급했어야 할 지원금 가운데 약 250억 원을 외부 업체에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  (72, 146쪽)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된 뒤에는 ‘원자력발전소’ 이야기를 물을 만한 교사도 어른도 없습니다. 그저 입시지옥으로 내달리기만 해야 합니다. 이때에도 궁금한 이야기를 한 가지 품었습니다. ‘원자력발전소를 지을 돈 + 핵쓰레기를 건사해야 하는 돈 + 송전탑을 세워야 하는 돈 +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선 마을에 주어야 하는 보상비’를 헤아리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돈이 되겠구나 싶더군요. 그러면, 이러한 돈으로 ‘공해가 안 생기고 쓰레기가 안 나오는 가장 깨끗한 전기’를 만드는 일에 힘을 쏟으면 될 노릇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어요.


  학교에서 전기와 자원과 경제를 교과서로 가르칠 적에 ‘대안 미래 에너지’로 ‘햇볕·햇빛’ 두 가지를 살리는 길도 다루었습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햇볕·햇빛’ 두 가지 힘을 받아들이도록 집집마다 집열판이나 집광판을 두면, 발전소를 짓지 않아도 되고 송전탑을 세우지 않아도 되며 보상비를 물어야 하지 않아요. 발전소와 송전탑을 세우지 않아도 되니 ‘강제수용’을 하느라 땅값에 돈을 들일 일도 없습니다. 발전소도 송전탑도 세우지 않으면, 이러한 것을 짓고 건사할 일꾼을 안 두어도 되니 인건비도 안 듭니다. 집집마다 집열판이나 집광판을 두면, 집집마다 손수 이러한 시설을 건사하면 됩니다.


  돈을 가장 적게 들이면서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우면서 좋은 전기를 쓰는 길은, 집집마다 스스로 전기를 만들어서 스스로 쓰고, 남은 전기는 이웃한테 나누어 주는 길입니다.



.. 원자력계 안에서는 특정 대학 출신 인사들이 원전 정책을 좌지우지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한양대 출신은 한수원에, 서울대 출신은 학계, 원자력 연구기관, 감시기관에 많은 수가 진출해 주요 보직을 맡고 있다 … “원전 업무를 설명할 때 중앙제어실에서 모니터를 보는 장면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전력업체 직원이 일한다. 그러나 원자로에 직접 들어가서 하는 작업은 하청업체 몫이다. 피폭량 차이도 엄청나다”며 “당장 먹을 게 없는 사람들이 5∼10년 뒤 피폭 후유증을 감수한 채 일에 뛰어든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원전은 기본적으로 빈곤, 차별 구조 아래 존재한다”고 말했다 ..  (97, 130쪽)



  신문사 기자 두 사람 김성환·이승준 님이 쓴 《한국 원전 잔혹사》(철수와영희,2014)를 읽습니다. 신문사 기자가 아니라면 취재를 하기 어려웠을 이야기를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모로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한수원이나 정부 관계자를 여느 사람이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원자력발전소와 얽힌 공문서나 실타래를 여느 사람이 알아보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꽁꽁 감추니까요. 신문사 기자 두 사람은 ‘기자 자리’를 알뜰히 살려서 ‘한국 원자력잘전 발자취’를 차근차근 짚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 원자력발전 발자취를 짚으면서 붙이는 이름은 ‘잔혹사’입니다.


  한자말 ‘잔혹’은 “끔찍함”을 뜻합니다. 한국말로는 “끔찍함”이니까, 말 그대로 한국 원자력발전은 끔찍하거나 무시무시하거나 무서운 길을 걸어왔다는 소리입니다.



.. ‘세계 일류국가’들에서는 지금 탈핵의 바람이 불고 있다 … 원자력의 경제성에 핵연료 폐기물 처리 비용, 폐로 비용 등 ‘드러나지 않는 비용’이 적절히 반영돼 있지 않다는 문제도 있다. 원전의 전기를 실어 나를 대규모 송전선·송전탑이 번번이 지역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히며 막대한 사회적 갈등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 원전 1기를 건설하는 데 드는 비용은 대략 2조 5000억∼3조 원이다 … 사용후 핵연료 처리도 원전에 잠복해 있는 비용이다. 일본원자력위원회는 사용후 핵연료 처리 비용을 185조 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의 처분 비용을 추정하면 약 72조 원 수준이다 ..  (156, 170, 202쪽)



  원자력발전소를 한 기 짓는 데에 3조 원이 든다고 하지만, 원자력발전소를 건사하려면 해마다 아주 어마어마한 돈이 듭니다. 원자력발전소를 돌리면서 나오는 핵쓰레기를 건사해야 하는 돈도 아주 어마어마합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끔찍하게 돈을 써야 하는 원자력발전소입니다.


  아주 쉽게 생각해 보고 싶어요. 딱 1조 원을 들여서 ‘무한동력 전기’를 만들려고 한다면 ‘무한동력 전기’를 만들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한국에는 ‘테슬러’ 같은 과학자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양자물리학 원리를 살리는 길뿐 아니라, ‘우리 앞날을 밝힐 깨끗하고 아름다우며 좋은 전기’를 만드는 길은 있을까요, 없을까요.


  전쟁무기를 모두 없앨 수 있기를 빕니다. 서울과 부산을 비롯한 커다란 도시에서 전기를 아주 많이 씁니다만, ‘여느 사람 눈에 안 보이는’ 곳에서도 전기를 아주 많이 씁니다. 이를테면, 군대에서 전기를 아주 엄청나게 많이 씁니다. 2015년 국방예산은 37조 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군대는 전기만 많이 쓰지 않고, 전쟁무기를 만들고 돌보는 일이나 석유 때문에 돈을 어마어마하게 씁니다. 원자력발전, 그러니까 핵발전을 하려는 까닭도 전쟁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쟁이 아닌 평화를 바란다면, 우리가 이웃나라를 미워하는 길이 아니라 이웃나라와 어깨동무하는 길을 찾으려 한다면, 전쟁무기와 군대와 핵발전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전쟁무기와 군대와 핵발전에 쏟아붓는, 아마 해마다 100조 원은 거뜬히 넘을 이 ‘끔찍하고 무시무시하고 무서운’ 돈을 아주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우며 기쁘게 쓸 수 있습니다. 한 해 100조 원은 전쟁과 전쟁무기 따위에 쓸 일이 아니라, 평화와 평등과 인권과 복지와 교육과 문화에 써야 올바릅니다.


  전쟁무기와 군대가 없으면 ‘평화를 못 지킨다’고 말하는 사람이 제법 있습니다만, 전쟁무기와 군대가 없는 나라는 이웃나라에서 함부로 쳐들어오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전쟁은 이웃나라 자원과 사람을 빼앗으려고 일으킵니다. 전쟁무기로 서로 잿더미가 된다면, 이웃나라로 쳐들어왔어도 ‘빼앗을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이웃나라가 ‘전쟁무기 없는 아름다운 나라’로 쳐들어올 적에 아무도 대꾸하지 않고, 사랑으로 받아들이면, 전쟁무기를 든 바보들은 얼이 빠지고 넋이 나가면서 스스로 전쟁무기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능금밭을 돌보는 착한 사람을 죽이면, 군인은 능금밭을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모르니 그저 굶어야 합니다. 논을 가꾸는 착한 사람을 죽이면, 군인은 논을 어떻게 가꾸어야 하는지 모르니 그저 굶어야 합니다. 고기를 낚는 바닷사람을 죽이면, 군인은 배를 어떻게 몰고 고기낚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니 그저 굶어야 합니다.


  전쟁무기 없대서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게다가 시골에는 군인도 경찰도 없어요. 그러나 시골에는 전쟁 걱정이 없지요. 탱크나 군인이 논밭을 짓밟고 지나가면 군인 스스로 밥을 굶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나라는 그 어떤 바보스러운 전쟁 미치광이라 하더라도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 한국 정부가 부디 슬기로운 길을 제대로 깨달아 올바른 삶을 북돋우는 정책을 마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11.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환경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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