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92. 보고 그리듯이 보고 찍다
본 것이 있기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본 것이 없으면 글을 못 쓰고 그림을 못 그립니다. 본 것이 있기에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본 것이 없으면 사진을 못 찍습니다.
본 것이 있기에 이야기가 자랍니다. 본 것이 없으면 서로 나눌 이야기가 없습니다. 들은 것이 있어도 얼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하지만, 들은 것만으로는 사진을 못 찍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눈으로 바라보면서 눈으로 찍어서 눈으로 읽기 때문입니다.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켜면서 하루를 엽니다. 나는 내가 사는 곳에서 하루를 열고, 이웃은 이웃이 사는 곳에서 하루를 엽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기에 다 다른 고장에서 살고, 다 다른 집에서 삽니다. 그런데, 다 다른 우리가 다 같은 집에서 산다면, 하루를 열 적에 어떤 마음이 될까요. 고장은 다르지만 모두 똑같은 아파트에서 하루를 연다면, 고장은 다르되 모두 똑같은 일터(회사나 공장이나 학교)로 모두 똑같은 자가용을 몰면서 모두 똑같이 길이 막히는 아침을 맞이한다면, 우리는 어떤 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열까요.
아침에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켜는 사람은 모두 똑같은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아침에 신문을 펴는 사람은 모두 똑같은 생각에 젖어듭니다. 우리는 틀림없이 다 다른 사람이지만, 아침마다 모두 똑같은 마음에 똑같은 생각에 똑같은 틀에 갇힙니다. 아침마다 다르게 찾아오는 햇살이나 바람이나 구름이나 풀내음을 느끼지 않고, 아침마다 으레 똑같은 바깥 이야기(라디오·텔레비전·신문·인터넷)에 휩쓸립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같은 마음과 생각과 이야기가 되면, 우리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다 다른 사람이 다 같은 눈길이나 눈썰미가 되면, 우리는 무엇을 글로 쓰고 그림으로 그리며 사진으로 찍을까 궁금합니다.
씨앗 한 톨을 심으면 날마다 새롭게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들풀 한 포기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아도 날마다 새로운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무 한 그루도 날마다 모양새가 달라집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다 다른 넋이나 마음을 잃고 다 같은 굴레나 쳇바퀴나 틀에 갇힌다면, 어떤 것을 보고 어떤 것을 헤아려 어떤 것을 사진으로 찍을까요.
내 사진을 찍으려면 내 삶을 보아야 합니다. 내 사진을 이루려면 내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내 사진을 누리려면 내 삶을 일구어야 합니다. 내 삶이 아직 없다면, 내 삶을 아직 못 찾거나 못 느낀다면, 내 삶을 아직 못 깨닫거나 모른다면, 아직 내 사진도 내 그림도 내 글도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4347.11.2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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