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도시사람도 흙을 짓기를



  나무가 한 그루도 없는 도시를 그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서울이나 부산처럼 커다란 도시에 나무가 한 그루조차 없다면, 서울사람이나 부산사람 모두 미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서울에서는 해마다 큰돈을 들여 ‘인공 냇물’인 청계천을 전기로 물을 퍼서 돌립니다. 이런 ‘인공 냇물’조차 없으면 서울사람은 그예 숨이 막혀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옥에 갇힌 사람이 괴로운 까닭은 온통 시멘트와 쇠창살로 둘러싸인 곳에 갇히기 때문이 아닙니다. 풀 한 포기 없고 나무 한 그루 없으며 흙 한 줌 만질 수 없는 데에서 하루 내내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옥에서는 하루에 다문 한 시간이든 십 분이든 재소자를 밖으로 내보내서 햇볕을 쬐게 하고 흙땅을 밟게 합니다. 이렇게 안 하면 재소자는 모두 미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보면, 학교마다 아스콘을 깔거나 인조잔디를 깔기 일쑤입니다. 아직 ‘흙 운동장’인 곳이 더러 있으나, 흙땅을 운동장으로 두는 학교는 아주 빠르게 사라집니다. 시골 면소재지에서조차 흙 운동장에 아스콘을 붓거나 인조잔디를 깝니다. 이렇게 하면, 학교에서 아이와 어른 모두 흙을 보거나 만지거나 밟을 일이 거의 사라집니다. 그나마 도시는 길바닥이 온통 아스팔트나 시멘트인데, 학교에서조차 흙을 못 보고 못 만지면, 그만 마음이 메마르거나 거칠거나 팍팍해지고 말아요. 지난날 학교는 콩나물시루 같았어도 10분 쉬거나 낮밥을 먹을 적에는 모두 흙 운동장으로 뛰쳐나가 뛰놀면서 땀을 흘릴 수 있었습니다. 지난날 학교는 얼차려와 매질 따위로 아이들을 들볶았지만, 아이들은 틈틈이 바람을 쐬고 햇볕을 먹고 흙을 만지면서 다시금 기운을 차릴 수 있었어요.


  박창근 님과 이원영 님이 주고받은 이야기로 엮은 《4대강 사업과 토건 마피아》(철수와영희 펴냄,2014)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제 ‘4대강 사업’은 아주 끔찍한 짓이었다고 너나 모두 알아차립니다. 예전 이명박 대통령이 자그마치 22조 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돈을 엉터리로 쏟아부었다고 모든 신문과 방송이 한목소리로 꾸짖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러한 사업을 벌이거나 밀어붙이던 지난날에는 이를 꾸짖는 목소리가 신문이나 방송을 타기 어려웠고, 공무원이나 건설회사뿐 아니라 숱한 지식인과 교수와 학자는 이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또다시 일본에서 대형 핵 재난이 발생했는데, 바로 옆 나라의 원전 전문가들은 탈핵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들이 마치 사이비종교의 신자처럼 느껴진 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7쪽).” 같은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참말 한국에서는 ‘핵발전소를 멈추자’는 이야기가 잘 안 나옵니다. 핵발전소를 하루 빨리 멈추고, 제대로 된 깨끗하고 아름다운 전기를 쓰는 길을 열자는 이야기가 터지지 않습니다. 송전탑을 둘러싼 아픔과 슬픔도 가시지 않을 뿐 아니라, 송전탑을 안 박으면서 도시사람이 도시에서 손수 전기를 빚어서 쓰는 길을 찾는 일도 없습니다.


  핵발전소는 백 해나 이백 해 동안 돌리지 못합니다. 고작 쉰 해를 돌리지도 못합니다. 게다가, 핵발전소가 목숨을 다하면, 자그마치 십만 해이든 백만 해이든 방사능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야 합니다. 고작 쉰 해조차 못 돌리는 발전소를 앞으로 십만 해 동안 ‘쓰레기더미’로 고이 지켜야 한다면, 이러한 일을 하느라 얼마나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어야 할까 궁금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제대로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끔찍한 전기를 만들고 끔찍한 돈을 쓰면서 우리 삶터까지 끔찍하게 더럽히고 맙니다. 핵발전소와 맞물려 4대강 사업을 돌아보면 더 슬픕니다. 우리 정부에서는 4대강 사업만 하지 않았습니다. 《4대강 사업과 토건 마피아》를 읽으면, “부처별로 살펴보면 현재 국토부가 한 해에 1조 5000억 원, 환경부가 1조 원가량, 소방방재청이 8000억 정도를 하천사업에 씁니다. 국토부는 ‘고향의 강’ 사업, 생태하천 조성·복원 사업을 해요. 환경부는 생태하천 복원사업이고요(24쪽).”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4대강 사업이 아니어도 해마다 몇 조에 이르는 돈을 ‘시골 냇물을 시멘트로 덮었다가 다시 시멘트를 걷어내는 짓’을 되풀이하는 데에 씁니다. 마치 도시에서 길바닥 돌, 그러니까 보도블럭을 갈아치우느라 돈을 꽤 많이 쓰는 일하고 같아요. 서울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도심지를 가로지르는 냇물’을 둘러싸고 냇바닥과 냇둑에 시멘트를 들이부었다가, 이제 이 시멘트를 걷어내면서 ‘친환경 생태하천’을 만든다고 법석이에요. 간추려 말하자면, 시멘트를 부으면서 토목회사와 공공기관이 돈을 벌고, 시멘트를 걷어내면서 토목회사와 공공기관이 다시 돈을 법니다.


  처음부터 냇물을 그대로 살리면 돈이 들어갈 일이 없습니다. 아니, 돈을 쓰더라도 제대로 올바르게 아름다운 자리에 쓸 수 있습니다. 냇바닥에 시멘트를 붓거나 시멘트를 걷어내느라 해마다 쓰는 돈이면,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대학교까지 누구나 돈을 안 내고 다닐 수 있습니다. 가난한 이웃이 살림돈에 쪼들리지 않도록 멋진 복지정책을 꾸릴 수 있습니다. 전국 도서관에서 책을 알차고 넉넉하게 갖추면서 멋진 책문화를 일굴 수 있습니다. 도시로 떠난 사람들이 다시 시골로 돌아가서 흙을 가꾸며 지내도록 넉넉히 도울 수 있습니다.


  도시에 사람들이 자꾸 몰리기에 더 전기를 많이 써야 하고, 더 자원을 많이 써야 하며, 더 시설투자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굳이 도시로 몰리지 않고 시골에서 지낼 수 있다면, 도시에서도 텃밭뿐 아니라 논을 지어서 밥을 손수 길러서 먹을 수 있다면, 외국에서 쌀이든 열매이든 남새이든 하나도 안 사들이면서 우리가 스스로 길러서 먹을 수 있다면, 이러한 사회에서 새롭게 빚는 ‘재산 값어치나 생산성이나 보람’은 참으로 높고 훌륭하리라 느낍니다.


  《4대강 사업과 토건 마피아》는 “우리가 현대 문명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개개인의 삶 자체가 좀더 생태적이고 순환적인 형태로 변화해야 해요. 삶의 양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직접 농사를 짓는 일도 한 방법입니다. 농사는 생명을 기르고 키운다는 측면뿐만 아니라 자급자족의 삶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합니다(87쪽).”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전문 농사꾼’만 농사를 짓는 길이 아니라, 밥을 먹는 우리 누구나 텃밭과 논을 조금씩 마련해서 밥을 손수 길러서 먹는 길을 밝힙니다. 우리가 어디에서나 논밭을 가꾸면서 밥을 지어서 먹으면, 유기농 곡식을 찾느라 목돈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즐겁게 삶을 지으니 언제나 기쁘게 웃으며, 도시와 시골 모두 푸른 바람이 흘러 삶터와 보금자리가 아름답게 거듭납니다. 우리가 스스로 짓는 논밭이 바로 ‘공원’ 구실을 합니다. 우리가 가꾸는 흙이 푸른 바람을 일으키는 숲 노릇을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다 함께 눈을 다시 떠야지 싶습니다. 4347.11.19.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책읽기)


blog.aladin.co.kr/hbooks/7208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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