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90. 두 손에 꼭 쥐는



  서리가 내린 늦가을 이른 아침에 네 살 아이가 밥그릇을 두 손으로 꼭 쥐며 섭니다. 아버지가 훑는 까마중알을 밥그릇으로 받습니다. 네 살 아이는 손이 시리다고 하면서도 밥그릇을 건네지 않습니다. 끝까지 제 두 손으로 꼭 쥐어 까마중알을 받아서 집으로 들어가겠다고 합니다.


  아이는 두 손에 주전부리를 쥡니다. 아이는 두 손에 밥그릇을 쥡니다. 아이는 두 손에 뒷밭을 쥡니다. 아이는 두 손에 풀내음을 쥡니다. 아이는 두 손에 햇살을 쥡니다. 아이는 두 손에 기쁨을 쥡니다. 아이는 두 손에 아침을 쥡니다. 아이는 두 손에 찬바람을 쥐고, 재미난 놀이와 즐거운 사랑을 쥡니다.


  밥 한 그릇에 무엇이 있을까요. 밥 한 그릇에 웃음이 있습니다. 밥 두 그릇에 무엇이 있을까. 밥 두 그릇에 노래가 있습니다. 밥 세 그릇에 무엇이 있을까요. 밥 세 그릇에 이야기가 있습니다. 밥 네 그릇에 무엇이 있을까요. 밥 네 그릇에 사랑이 있습니다. 밥 다섯 그릇에 무엇이 있을까요. 밥 다섯 그릇에 삶이 있습니다.


  네 살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열네 살이 될 테고, 스물네 살이 됩니다. 서른네 살이 되고 마흔네 살이 됩니다. 앞으로 이 아이는 두 손에 사진기를 쥘 수 있습니다. 어린 날 밥그릇을 쥐고, 풀포기를 쥐며, 꽃송이를 쥐고, 자전거 손잡이를 쥐던 아이는, 사진기를 쥘 적에 그동안 온몸과 온마음으로 담은 웃음과 노래와 이야기와 사랑과 삶을 고스란히 녹여서 사진꽃 한 송이 피울 수 있습니다. 4347.11.16.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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