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532) 이름꼴(명사형)로 쓴 말 1


지어 먹을 작물이 하나씩 줄어듦과 동시에 농촌 사람들은 제 나고 자란 곳을 떠나 낯설고 물선 도시로 떠났다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현실문화연구,2006) 61쪽


 하나씩 줄어듦과 동시에

→ 하나씩 줄어들면서

→ 하나씩 줄어드는 한편

 …



  ‘살다’는 ‘삶’이나 ‘살이’나 ‘살기’처럼 씁니다. ‘살다’를 ‘삶’처럼 쓸 적에는 ‘삶터’나 ‘삶짓기’나 ‘삶말’이나 ‘삶노래’처럼 여러모로 쓰임새를 넓힙니다. ‘살다’를 ‘살이’처럼 쓸 적에는 ‘시골살이’나 ‘드난살이’나 ‘한살이’나 ‘겨우살이’처럼 차근차근 쓰임새를 넓혀요. ‘살다’를 ‘살기’처럼 쓸 적에는 ‘죽기 살기’나 ‘함께 살기’나 ‘바르게 살기’처럼 쓰임새를 새롭게 넓히지요. 한국말사전에 오르는 낱말이 아니어도 즐겁게 새 낱말로 삼아서 씁니다.


  그런데, 이 보기글처럼 “줆어듦과 동시에”처럼 적는 이름씨꼴은 얄궂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글에서는 이름꼴로 쓸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영어를 한국말로 잘못 옮기면서 이러한 말투가 자꾸 불거집니다. 한국말을 옳게 바라보지 못하기에 이러한 말투가 자꾸 나타납니다. 한국말을 옳고 바르게 익히지 못한 채 영어를 섣불리 배우니, 영어를 한국말로 옮길 적에 자꾸 얄궂게 쓰고 말아요. 4339.3.30.나무/4347.11.10.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지어 먹을 곡식과 남새가 하나씩 줄어들면서 시골사람은 제 나고 자란 곳을 떠나 낯설고 물선 도시로 갔다


‘작물(作物)’은 ‘곡식’이나 ‘곡식과 남새’로 손봅니다. ‘동시(同時)에’는 ‘함께’나 ‘한꺼번에’로 손질할 낱말인데, 이 글월에서는 덜어낼 수 있습니다. “농촌(農村) 사람들”은 “시골사람”으로 다듬습니다. 보기글 뒤쪽을 보면 “자란 곳을 떠나” “도시로 떠났다”와 같이 ‘떠나다’를 잇달아 넣습니다. 앞자리는 그대로 두고, 뒷자리는 ‘갔다’로 고쳐 줍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604) 이름꼴(명사형)로 쓴 말 2


그가 노래를 끝마쳤을 때, 이제 겨우 시작한, 많은 미숙함이 있는 그를 보면서, 그가 곧 새로운 연극의 대지에 입문해 큰 배우로서 성장하길 기대하는 박수를 보냈다

《안치운-추송웅 연구》(예니,1995) 머리말


 많은 미숙함이 있는

→ 많이 서툰

→ 많이 어리숙한

→ 여러모로 모자란

→ 아직 배울 것이 많아 보이는

 …



  ‘미숙(未熟)’은 한국말이 아닙니다.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일 따위에 익숙하지 못하여 서투름. ‘서투름’으로 순화”처럼 말풀이가 달립니다. ‘서투르다’나 ‘서툴다’로 고쳐써야 합니다. 글흐름에 따라 ‘어리숙하다’나 ‘모자라다’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때로는 ‘엉성하다’나 ‘어수룩하다’로 고쳐쓸 수 있어요.


  그런데 ‘미숙함’을 ‘서툼’이나 ‘서투름’이나 ‘모자람’이나 ‘어리숙함’으로 고쳐쓰면 도루묵입니다. “많은 모자람이 있는”처럼 고쳐써도 올바르지 않아요. 가만히 생각해 볼 노릇입니다. “많은 넉넉함이 있는”이 아니라 “많이 넉넉한”입니다. “많은 모자람이 있는”이 아닌 “많이 모자란”이에요.


  그런데, 구태여 ‘미숙’이라는 한자말을 넣고 싶다면 “많이 미숙한”으로 적어야겠지요. 4339.8.18.쇠/4347.11.10.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그가 노래를 끝마쳤을 때, 이제 겨우 첫발을 뗀, 많이 서툰 그를 보면서, 그가 곧 새로운 연극밭에 들어서서 큰 배우로 자라기를 바라면서 손뼉을 쳤다


“이제 겨우 시작(始作)한”은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디딘”이나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뗀”으로 다듬고, ‘미숙(未熟)함’은 ‘모자람’으로 다듬으며, “새로운 연극의 대지(大地)”는 “새로운 연극밭”이나 “새로운 연극 무대”로 다듬습니다. “큰 배우로서 성장(成長)하길”은 “큰 배우로 자라길”이나 “배우로 크게 자라길”이나 “훌륭한 배우로 크기를”로 손보고, ‘입문(入門)해’는 ‘들어서’로 손보며, “기대(期待)하는 박수(拍手)를 보냈다”는 “바라면서 손뼉을 쳤다”로 손봅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615) 이름꼴(명사형)로 쓴 말 3


우리네가 그동안 바쁘게 살아오느라 잊어버리고 말았던 더불어 살아나감에 있어서의 소박한 감동들이 어찌 그리 크게 느껴지는지

《우수근-캄보디아에서 한일을 보다》(월간 말,2003) 39쪽


 더불어 살아나감에 있어서의 소박한 감동

→ 더불어 사는 수수함 아름다움

→ 더불어 살며 나누는 수수한 아름다움

→ 더불어 살며 누리던 수수한 아름다움

 …



  번역 말투 한 가지가 다른 번역 말투를 불러들인 꼴입니다. 이름꼴과 ‘-에 있어서’가 섞이고, 여기에 토씨 ‘-의’까지 달라붙습니다. 아주 얄궂습니다. 이런 번역 말투를 쓰니, “크게 느끼는지”처럼 적을 대목도 “크게 느껴지는지”처럼 입음꼴로 쓰고 맙니다.


  수수하게 삶을 짓는 이웃을 만나서 수수한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이야기하는 보기글입니다. 그러면, 수수하게 짓는 삶을 수수하게 쓰는 글로 밝히면 한결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수수하게 글 한 줄 쓸 수 있어야지요. 4339.9.6.물/4347.11.10.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우리네가 그동안 바쁘게 살아오느라 잊어버리고 말았던 더불어 사는 수수한 아름다움을 어찌 그리 크게 느끼는지


‘-ㅁ에 있어서’는 우리 말투가 아닙니다. 여기에 토씨 ‘-의’까지 얄궂게 붙이면 더더구나 얄궂습니다. ‘소박(素朴)한’은 ‘수수한’이나 ‘꾸밈없는’이나 ‘거짓없는’으로 손질합니다. ‘감동(感動)’은 그대로 둘 만하지만, 이 자리에서는 ‘아름다움’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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