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443) 만들다 1


이 말은 어떤 식물이든 지금 그 자리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의문을 가져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소로우/이한중 옮김-씨앗의 희망》(갈라파고스,2004) 135쪽


 의문을 가져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 궁금해 하도록 이끈다

→ 궁금하다는 생각으로 이끈다

→ 생각해 보도록 이끈다

 …



  ‘만들다’라는 한국말은 아무 자리에나 못 씁니다. 이 낱말은 처음에는 한 가지만 뜻했습니다. 어떤 것을 손이나 연장으로 다루어 새로운 것으로 이룬다고 할 적에 ‘만들다’를 썼어요. “나무를 잘라 걸상을 만든다”라든지 “싸리나무를 꺾어 싸리비를 만든다”처럼 쓰는 낱말이었습니다. 사회가 여러모로 크고 넓게 달라지면서 ‘만들다’라는 낱말도 차츰 쓰임새를 넓히는데, 영어 번역 말투처럼 아무 데에나 쓰면 안 됩니다.


  오늘날 번역을 하는 적잖은 이들은 영어 ‘make’를 섣불리 ‘만들다’로 옮기고 말아요. 말썽이나 어떤 일을 일으킨다고 할 적에는 ‘일으키다’로 옮겨야 하는데, 그만 ‘만들다’로 옮깁니다. 어떤 일이 생길 적에는 ‘생기다’로 옮겨야 하지만, 그만 ‘만들다’로 옮겨요. “The news made him very happy” 같은 영어는 “즐겁게 해 주었다”로 옮겨야 하지만 “즐겁게 만들었다”로 잘못 옮깁니다. 이리하여, 이 보기글처럼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같은 번역 말투가 퍼지고 맙니다. 이 자리에서는 생각을 하도록 ‘이끈다’고 옮겨야 올바릅니다.


  그런데, 이 보기글에서는 “의문을 가져”라고 적은 대목도 번역 말투입니다. 궁금함(의문)은 ‘가질(have, get)’ 수 없습니다. 그저 ‘궁금하다’라 해야 올바릅니다.


  외국책을 한국말로 옮겨 주니 고맙지만, 한국말이 아닌 어설픈 말로 자꾸 뒤틀어 놓으면, 한국말은 한국말 아닌 말이 됩니다. 4338.10.9.한글날/4347.11.1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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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어떤 풀이든 오늘 이 자리에 어떻게 왔는지 궁금하게 여기도록 이끈다


‘식물(植物)’은 ‘풀’로 다듬고, ‘지금(只今)’은 ‘오늘’로 다듬습니다. “오게 되었는지”는 “왔는지”로 손보며, “의문(疑問)을 가져 볼 수 있다는”은 “궁금해 할 수 있다는”으로 손봅니다.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하게 이끈다”나 “생각으로 이끈다”나 “이끈다”로 손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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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629) 만들다 2


할머니는 봄이면 산나물, 여름이면 밭에서 거둔 채소, 가을에는 산에서 손수 주운 도토리로 가루를 내어 만든 묵을 팔았다

《블루시아의 가위바위보》(국가인권위원회,2004) 20쪽


 도토리로 가루를 내어 만든 묵

→ 도토리로 가루를 내어 쑨 묵

→ 도토리가루로 쑨 묵

→ 도토리묵

 …



  나날이 쓰임새를 넓히는 ‘만들다’입니다. 그만큼 쓸 자리가 늘어나는 셈이라 할 수 있지만, 그만큼 ‘만들다’가 다른 한국말을 밀어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보기글에서는 “묵을 만든다”처럼 나옵니다. 요즈음 할머니는 이렇게 말할는지 모릅니다만, 묵은 ‘쑤는’ 먹을거리입니다. 엿은 고고 나물은 무칩니다. 송편은 빚고 누룩은 띄웁니다. 먹을거리마다 다 다른 말로 가리킵니다.


  쌀을 빻아 체에 일어 돌을 고르고 물을 맞춰 밥을 짓던 일이 이제는 사라졌기 때문에 ‘일다’라는 낱말도 거의 잊힙니다. 어쩌면, 집마다 손수 묵을 쑤는 사람이 거의 없고, 공장에서 척척 찍는 묵을 사다 먹으니 ‘쑤다’라는 말도 사라지면서 ‘만들다’가 널리 쓰일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보기글을 보면, 할머니가 손수 도토리를 주워 가루를 빻은 뒤 묵을 쑨다고 해요. 그러면, ‘쑨다’고 적어야지요. 더군다나 아이들이 읽을 동화에 쓴 글인걸요. 4339.10.14.흙/4347.11.1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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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봄이면 멧나물, 여름이면 밭에서 거둔 남새, 가을에는 멧골서 손수 주운 도토리로 가루를 내어 쑨 묵을 팔았다


‘야채(野菜)가 아닌 ‘채소(菜蔬)’를 쓰니 반갑지만, ‘남새’로 고쳐쓰면 더 반갑습니다. ‘산(山)나물’은 ‘멧나물’로 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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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19) 만들다 3


밀가루가 미국의 원조 물자로 들어오면서 국수나 빵이 만들어졌고, 가정에서는 수제비나 칼국수 따위를 만들어 먹었지

《이임하-10대와 통하는 문화로 읽는 한국 현대사》(철수와영희,2014) 14쪽


 국수나 빵이 만들어졌고

→ 공장에서 국수나 빵을 만들었고

→ 국수나 빵이 나왔고

→ 국수나 빵이 공장에서 나왔고

 칼국수 따위를 만들어 먹었지

→ 칼국수 따위를 끓여 먹었지

→ 칼국수 따위를 삶아 먹었지

→ 칼국수 따위를 해서 먹었지

→ 칼국수 따위를 먹었지

 …



  이 보기글은 ‘공장’과 ‘집’을 나누어 말하려고 ‘만들다’라는 낱말을 썼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 보기글 앞쪽에서 ‘공장’이라는 낱말을 넣지 않고 “국수나 빵이 만들어졌고”로 적으니 좀 뚱딴지 같습니다. 국수는 ‘삶는다’고 하고, 빵은 ‘굽는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손으로 지어서 먹을 적에 쓸 낱말은 ‘삶다’와 ‘굽다’이니, ‘만들다’를 함부로 넣을 수 없습니다.


  공장이라면 기계로 척척 찍습니다. 그래서, 기계로 척척 찍는 모습을 살펴 “국수공장에서 국수를 만들고, 빵공장에서 빵을 만든다”처럼 말할 수 있어요. 다만, 이렇게 공장에서 ‘만든다’고 해도 어딘가 얄궂습니다. 아무래도, 먹을거리를 ‘만든다’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보기글은 “국수나 빵이 공장에서 나왔고”로 손질할 때가 가장 나으리라 느낍니다.


  이 다음으로 집에서 수제비나 칼국수를 먹는 대목입니다. 이때에는 집에서 먹는 수제비나 칼국수이니, 이러한 먹을거리를 ‘만든다’고 할 수 없습니다. 집에서는 ‘끓여’ 먹는다거나 ‘삶아’ 먹는다고 적어야 올바릅니다. 또는 ‘하다’를 넣어 “칼국수를 해서 먹었지”처럼 적습니다. 이도 저도 모두 털어낸 뒤 “수제비나 칼국수를 먹었지”처럼 적어도 됩니다. 4347.11.10.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밀가루가 미국 원조 물자로 들어오면서 국수나 빵이 공장에서 나왔고, 집에서는 수제비나 칼국수를 끓여 먹었지


“미국의 원조 물자”는 “미국 원조 물자”로 손봅니다. ‘가정(家庭)’은 ‘집’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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