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83. 이름 없는 사진



  우리가 찍는 사진은 다른 사람이 찍는 사진감(소재)이거나 아니거나 크게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가 찍는 사진을 다른 사람이 아직 찍은 적이 없든, 앞으로도 찍을 사람이 없든,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가 찍으려는 사진을 그동안 아주 많은 사람들이 찍었든, 또 아주 많구나 싶도록 사진책이 많이 나왔든 조금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진에는 ‘우리 이야기’를 담기 때문입니다. 사진에는 ‘우리 삶’을 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사진감을 다룬다고 할 적에도, 나와 네가 찍는 사진이 다릅니다. 바라보는 곳은 같아도, 바라보는 눈길과 생각과 마음과 사랑이 모두 다릅니다. 바라보는 눈길과 생각과 마음과 사랑이 모두 다르니, 우리가 찍는 사진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감돕니다.


  나무 한 그루를 찍든, 풀 한 포기를 찍든, 꽃 한 송이를 찍든, 우리는 늘 다 다른 사진을 찍습니다. 다 다른 이야기를 실어 다 다른 꿈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야기’와 ‘삶’을 보여주려 하지 않고, 더 멋있게 찍으려 하거나 더 남다르게 찍으려 할 적에는 이야기와 삶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때에는 누가 찍어도 거의 똑같아 보이거나 아주 닮은 사진만 나옵니다.


  사진은 ‘표현 기법’이 아닙니다. 사진은 ‘표현 방법’이 아닙니다. 기법이나 방법에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사진하고 동떨어집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에도 이와 같아요. 자꾸 기법이나 방법에 기울면 기울수록 글이나 그림이 아닌 겉치레나 겉짓이 되고 맙니다. 이야기가 없이 기법과 방법에 매달리는 사진이 있으면, 우리는 이 사진에서 무엇을 읽을까요? 바로 기법과 방법을 읽습니다. 기법과 방법만 읽는다면, 자꾸 새로운 기법과 방법만 좇기 마련입니다.


  밥 한 그릇을 지을 적에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무쇠솥으로 지을 수 있습니다. 아파트에서 전기밥솥으로 지을 수 있습니다. 가스불에 냄비밥으로 지을 수 있습니다. 편의점에서 장만한 ‘공장에서 지은 밥’을 물을 끓여서 덥혀 먹을 수 있습니다. 밥짓기도 여러 갈래로 살필 수 있습니다. 다 다른 밥짓기는 ‘기법과 방법’일 뿐입니다. 무쇠솥으로 지은 밥은 그야말로 맛있습니다만, 편의점에서 산 ‘공장에서 지은 밥’으로도 우리 사랑과 꿈을 따순 손길로 어루만져서 아주 맛있는 밥상을 차릴 수 있습니다. 사진에 담는 이야기란 바로 ‘사랑과 꿈’입니다. 사진에 담는 삶이란 바로 ‘따순 손길’입니다.


  우리가 찍을 사진에는 ‘우리 이야기와 삶’을 어느 만큼 담느냐 하는 대목이 대수롭습니다. 어떤 장비를 쓰든, 어떤 기법이나 방법을 쓰든, 언제 어디에서 찍든, 누구를 찍거나 무엇을 찍든,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으려는 우리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늘 ‘이야기’를 살피면서 가꾸고, ‘삶’을 노래하면서 즐길 수 있는 넋이면 됩니다.


  이름이 있는 사진도 없고, 이름이 없는 사진도 없습니다. 이름이 있는 작가도 없고, 이름이 없는 작가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만 있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사진이냐, 이야기가 없는 사진이냐, 이렇게 가를 수만 있습니다. 삶이 깃든 사진이냐, 삶이 안 깃든 사진이냐, 이렇게 가르기만 합니다. 4347.1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