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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좋아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102
사노 요코 글 그림, 김난주 옮김 / 비룡소 / 2003년 7월
평점 :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55
나도 네가 좋단다
― 아빠가 좋아
사노 요코 글·그림
김난주 옮김
비룡소 펴냄, 2003.7.18.
낮에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면소재지 우체국에 다녀옵니다. 모처럼 면소재지 빵집에 들릅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빵을 한 조각씩 고르고, 어머니 몫으로 하나 더 고릅니다. 두 아이는 자전거에 앉아 신나게 노래를 부릅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맛나게 빵을 먹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나는 집에 닿은 뒤 빵을 곧바로 내주지 않습니다. 밥을 먹고 나서 빵을 주겠노라 말합니다. 작은아이는 “밥 먹고 빵 먹어요? 알았어요.” 하고 말하더니 놀면서 기다리기로 합니다. 아니, 작은아이는 놀이에 빠져들어 밥도 빵도 잊습니다. 이와 달리 큰아이는 배가 퍽 고픈 듯합니다. 마룻바닥에 엎드려 손으로 가리면서 한참 무엇인가 쓰더니 종이를 척척 접어서 나한테 건넵니다. “자, 편지예요. 보세요.” 저녁밥을 짓느라 부산을 떨다가 살짝 겨를을 내어 큰아이 편지를 엽니다. 큰아이는 그림편지를 썼습니다. 큰아이는 ‘빵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커다란 종이에 가득가득 쓰면서 온갖 빵 그림을 신나게 그렸습니다. 그렇구나, 참말 먹고 싶구나. 기다리렴, 오늘 저녁은 아주 맛나게 차릴 테니까.
.. 아기 곰이 물었어요. “엄마, 아빠는 언제 돌아오세요?” 엄마 곰이 대답했지요. “머지않았단다. 목련꽃이 필 때쯤이면 돌아오실 거야.” .. (6쪽)
보글보글 밥이 끓습니다. 알맞게 물을 맞춘 뒤 냄비에 불을 넣으면, 냄비에 담긴 물은 천천히 끓으면서 쌀알을 익힙니다. 딱딱한 쌀알은 천천히 익으면서 살살 풀어집니다. 보드라운 밥이 됩니다. 밥이 익을 무렵 아이들은 밥내음을 맡습니다. 마루에서 놀다가 밥내음을 킁킁 맡으면서 까르르 웃습니다. 놀다가 웃는 아이들은 어느새 노래를 부릅니다. 곧 배불리 밥을 먹을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즐겁습니다. 아이들이 밥내음을 맡으면서 웃고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니, 밥을 짓는 어버이 손길은 한결 부산하고 정갈합니다. 웃음소리와 노랫소리로 밥을 짓습니다.
웃음소리와 노랫소리로 밥을 지으니, 이 밥을 먹는 아이들은 새삼스레 웃음과 노래를 받아먹습니다.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서 내주는 어버이도 아이와 함께 밥을 먹는 동안 어느새 새롭게 웃음과 밥을 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함께 먹을 밥을 차리니 즐겁습니다. 함께 먹을 밥을 지을 수 있으니 기쁩니다. 어버이 자리에 서서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북돋울 밥 한 그릇 내놓을 수 있으니 반갑습니다. 어버이로서 날마다 밥을 지어 오순도순 하루를 열 수 있으니 고맙습니다. 목숨을 잇는 밥을 손수 짓는 하루는 사랑을 짓는 삶입니다.
.. 아기 곰이 말했어요. “아빠, 산책하러 가요.” “좋지” .. (12쪽)
사노 요코 님이 빚은 그림책 《아빠가 좋아》(비룡소,2003)를 읽습니다. 이 그림책에서도 ‘가시내(어머니, 여자, 암컷)’가 집일을 도맡고, 집에서 밥을 짓습니다. 사노 요코 님은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라든지 《산타클로스는 할머니》 같은 그림책을 그리기도 했는데, 《아빠가 좋아》라는 그림책에서는 ‘어버이 구실’을 조금 더 넓게 헤아리면서 담지는 못합니다. 아무래도 한국 사회이든 일본 사회이든, 밥짓기나 집살림은 ‘사내(아버지, 남자, 수컷)’가 거의 안 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여러 나라와 사회에서 사내가 집일도 집살림도 밥짓기도 거의 안 한다 할지라도, 어린이책과 그림책에서 이 대목을 한결 슬기롭고 아름답게 다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밥을 짓고, 함께 살림을 가꾸며, 함께 아이랑 놀며 사랑을 보여주는 착한 어버이가 나올 수 있기를 바라요.
.. 아기 곰이 말했어요. “아빠, 다리가 떠내려갔어요.” “그럼, 이렇게 하면 되지.” 아빠 곰은 길죽한 나뭇가지를 뚝 꺾어 .. (20쪽)
저녁을 새로 지어 두 아이와 곁님을 먹입니다. 두 아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나게 밥을 먹고 샛밥을 먹고 주전부리를 먹고 나서 새근새근 곯아떨어집니다. 낮에 면소재지 빵집에서 장만한 빵은 두 아이가 모두 먹었습니다. 큰아이는 아주 작은 조각을 아버지한테 나누어 주었으나, 큰 조각과 큰 덩이는 두 아이가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래, 너희가 참으로 쑥쑥 크려고 이렇게 많이 먹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나도 어버이 자리 아닌 아이 자리에 있던 지난날에 이렇게 배 똥똥 나오도록 밥을 먹고 샛밥이랑 주전부리까지 알뜰히 먹었습니다.
평화는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하고 가만히 헤아립니다. 밥 한 그릇에 평화가 있고, 빵 한 조각에 사랑이 있습니다. 웃음에 평화가 있고, 노래에 사랑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평화를 낳고, 어머니는 사랑을 낳습니다. 아이들은 평화와 사랑을 골고루 물려받습니다.
얘들아, 너희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좋지? 아버지와 어머니도 너희가 좋단다. 4347.11.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