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91] 살림지기



  나는 집에서 집일을 도맡습니다. 집일과 집살림을 모두 합니다. 내가 가시내였으면, 아마 내 둘레에서는 나를 두고 ‘주부(主婦)’나 ‘가정주부(家庭主婦)’라 가리켰으리라 느낍니다. 나처럼 집일과 집살림을 맡는 사람은 ‘직업’으로 ‘주부’나 ‘가정주부’라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한겨레는 예부터 가시내만 집일이나 집살림을 맡지 않았습니다. 가시내와 사내가 함께 집일과 집살림을 나누어 했습니다. 임금이나 양반이나 사대부는 종과 밥어미와 일꾼과 머슴을 두었으나, 여느 시골마을 수수한 시골집에서는 사내와 가시내가 다 같이 온갖 집일과 집살림을 맡아서 했습니다. 시골지기는 흙지기이면서 살림지기였어요. 시골사람은 흙사람이면서 살림꾼이었습니다. 이러던 우리 삶터인데, 다른 물질문명이 쏟아지듯이 파고들면서 삶과 문화와 말이 많이 바뀌었어요. 사회가 바뀌었으니 말도 바꾸어서 쓸 만하다 여길 수 있는데, 그러면 ‘주부’나 ‘가정주부’라는 이름은 얼마나 알맞거나 아름다울는지 궁금합니다. 이 같은 말을 우리가 굳이 써야 할는지, 아니면 예부터 우리 스스로 살림을 가꾸고 사랑하면서 보살피던 손길을 헤아리면서 ‘살림꾼’이나 ‘살림지기’라는 이름을 새롭게 바라보아야 할는지, 찬찬히 두 가지 말을 견주며 생각합니다. 나는 살림지기요 시골지기요 아이지기요 사랑지기요 숲지기요 책지기요 꿈지기요 이야기지기요 놀이지기로 내 삶을 가꾸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삶지기로 내 마음과 몸을 가꾸고 싶습니다. 4347.11.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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