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시간 1
세이케 유키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410



내 삶과 네 죽음

― 성실한 시간 1

 세이케 유키코 글·그림

 오경화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4.8.30.



  난데없이 목숨을 잃으면 어떤 마음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야말로 아무런 잘못이 없이 목숨을 잃어 삶을 더 이을 수 없으면 어떤 마음이 될까 곱씹어 봅니다. 아직 꿈을 꾸지 못한 젊음을 어처구니없이 잃어야 한다면 어떤 마음일까 헤아려 봅니다.


  세이케 유키코 님이 빚은 만화책 《성실한 시간》(대원씨아이,2014) 첫째 권을 읽습니다. 만화책 첫머리에, 갑작스레 자동차에 치여 목숨을 잃은 고등학생이 나옵니다. 이 아이는 목숨을 잃을 까닭이 없습니다. 길을 가다가 그냥 차에 치입니다. 이 아이는 목숨을 잃을 짓을 한 적이 없습니다. 누군가를 해코지하거나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동차에 치여 목숨을 잃습니다. 갑작스레 몸을 잃은 넋은 하늘로 붕 떠올라 ‘넋이 깃들던 몸이 목숨을 잃고 난 뒤 일어나는 일’을 고스란히 지켜봅니다.



- “저 사람이 날 죽인 거잖아요. 근데 저 사람은 이미 죽어 있었다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 죄 같은 건.” “뭐, 무죄겠지.” “그럼 그냥 단순하게 내가 더럽게 재수가 없었다. 그게 다네요?” (15쪽)

- “어휴. 의미를 모르겠네. 친구 장례식 날 노래방이니 게임이니, 정녕 이래도 되는 거야?” (31쪽)





  목숨을 잃어야 한 아이도 어처구니없지만, 아이를 잃은 어버이도 어처구니없습니다. 아이를 잃은 어버이뿐 아니라, 누나를 잃은 동생도, 동무를 잃은 동무도 어처구니없습니다. 다들 무엇을 해야 할는지 모릅니다. 다들 어떻게 해야 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몸에서 빠져나온 넋은 왜 하늘나라로 가지 않고 이 땅에 남아 ‘뒷일’을 지켜보아야 할까요. 몸에서 빠져나온 넋은 무엇이 아쉽거나 안타깝기에 이 땅에 남아 ‘다른 사람’을 멀거니 지켜보아야 할까요.



- “넌 외가도, 친가도 둘 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멀쩡히 살아 계시잖아. 니이가타에 계신 외삼촌도, 도쿄에 있는 고모도, 말하자면 엄마도 아빠도 같이 살던 부모형제를 잃어 본 경험이 없는 거야. 그런데 갑자기 자식을 잃은 거지.” (66∼67쪽)

- “너 뭐 하는 거니? 귀신 같은 짓 하지 마!” “그럼, 어떡해요. 열 받는걸.” “열 받긴 뭘 열 받아.” “열 받아요! 죽고 싶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죽고! 다들 잠깐 슬퍼하더니 벌써 잊어버리고 평범하게 잘만 살고!” (78∼79쪽)





  지구별 곳곳에서 전쟁이 터집니다. 갑작스레 죽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착하게 조용히 살던 마을에 갑자기 폭탄이 떨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총도 칼도 탱크도 비행기도 없는 외딴 마을에 탱크를 밀어붙여 수십 수백 사람을 끔찍하게 죽이는 짓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다른 나라 아닌 한국을 들여다봅니다. 아이들은 그저 티없이 태어나지만 입시지옥에 휘말립니다. 한국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제대로 뛰놀지도 못한 채 학원에 얽매이고 입시공부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픕니다. 한국에서 태어나는 수많은 다른 목숨, 이를테면 풀벌레나 숲짐승은 온갖 개발과 공사 때문에 끙끙 앓으며 삶터를 빼앗깁니다. 멧돼지와 고라니는 먹을것이 없어, 마을 밭에까지 내려와야 합니다. 멧새는 나무열매와 애벌레를 찾을 길이 없으니, 마을 밭에 심은 콩알을 죄 파먹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지저분한 물이나 매캐한 바람을 마시려고 이 나라에 태어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풀벌레와 숲짐승과 새는 사람한테서 미움을 받거나 난데없이 떼죽음으로 사라지도록 이 땅에 태어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체르노빌에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이 죽었습니다. 후쿠시마에서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슬프게 죽었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지은 잿더미 때문에 사람이 스스로 죽습니다.


  온갖 전쟁을 일으킨 이들은 바로 사람입니다. 이웃을 종으로 부리며 괴롭힌 이도 바로 사람입니다. 인종차별과 계급차별을 저지르는 이도 바로 사람입니다. 내 삶이 대단하다면 내 이웃 삶도 대단할 텐데, 지구별 곳곳에서 아픈 일이 자꾸 불거집니다.




- “하지만 죽은 인간한테까지 이래라, 저래라. 아저씨가 결정할 권리나 있나요? 원령이 되면 되는 거지. 그거야 사람 맘이죠.” (84쪽)

- “원령이라는 건 이성을 잃고 원한을 사방에 뿌리고 다니는 존재야. 아프다 괴롭다 밉다 원망스럽다,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에 끝도 없이 계속 영혼이 배배 꼬이는 거지. 난 자신의 잘못으로 생전에 집사람을 고통에 빠트린 것도 모자라, 사후에도 그런 존재로 만들어 버린 거야.” (98쪽)



  전쟁무기가 아니라 호미와 낫과 삽을 만들면 지구별 어디에나 평화가 흐르리라 생각합니다. 핵무기나 핵발전소를 만든다면서 지구별 여러 나라에서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돈을 쏟아붓는데, 작은 마을과 작은 살림집마다 에너지와 전기를 스스로 지어서 쓰도록 한다면, 얼마 안 되는 돈으로도 지구별에 평화를 이룰 만합니다.


  작은 마을과 작은 살림집마다 에너지와 전기를 손수 지어서 즐겁게 누릴 수 있다면, 우리들은 굳이 입시지옥이나 취업지옥에 휘둘리지 않아도 됩니다. 밥과 옷과 집을 손수 지어서 누리면, 애써 도시로 가서 돈을 벌어야 하지 않습니다. 경제개발이나 경제성장이 아닌, 삶짓기와 사랑짓기로 나아가면, 애먼 데에 돈을 안 쓸 뿐 아니라, 돈 때문에 터지는 사건·사고는 모조리 사라질 테며, 차별도 계급도 신분도 모두 자취를 감추리라 생각합니다.




- “못된 마음이 커지면 연기가 나는구나. 알아보기 쉽네.” (115쪽)

- “내가 이기적인 건가? 저렇게 노래하고 그리워해 주는 게 너무 고마운 일이라는 건 아는데, 자꾸만 부족하단 생각이 들어요. 평범하게 밥 먹고 웃고 얘기하는 걸 보고 있으면, 내 죽음 따위 그 정도 영향밖에 안 주는구나, 라고. 좀더 온몸으로 슬퍼해 줬으면 하고 바라게 돼요.” (118∼119쪽)

- ‘엄마가 평범한 상태로 돌아가면 어떡하지? 엄마도 날 잊어버리면 어떡하지?’ (126쪽)



  그래요. 즐거운 웃음과 노래가 있는 곳에서는 ‘자동차 사고’란 없습니다. 기쁜 웃음과 노래가 있는 곳에서는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을 즐겁게 힘껏 누릴 노릇입니다. 착한 마음을 가꾸고 참다운 길을 걸을 노릇입니다. 즐겁게 하루를 누릴 노릇이요, 기쁘게 삶을 지을 노릇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한결같이 노래할 하루이고, 나와 네가 한마음이 되어 어깨동무를 할 삶입니다. 4347.11.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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