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평전 - 조선 중기 최고의 경세가이자 위대한 스승
한영우 지음 / 민음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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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90



우두머리 곁에 누가 있을까

― 율곡 이이 평전

 한영우 글

 민음사 펴냄, 2013.2.15.



  일본은 한국으로 쳐들어와서 이 나라를 식민지로 삼기도 했으나, 이에 앞서 1500년대 끝무렵에 한국으로 군대를 엄청나게 이끌고 들어와서 끔찍하게 짓밟기도 했습니다. 백 해 앞서나 오백 해 앞서나 한국사람은 일본 군대 때문에 아주 고단한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나 이제나 우리가 생각할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이웃나라에서 한국으로 쳐들어와서 이 나라를 짓밟을 적에는, 언제나 여느 시골자락 사람들이 고단했습니다. 정치 권력을 거머쥔 이들이 힘들지 않았어요. 여느 시골자락 사람들이 온갖 부역을 짊어져야 했고, 여느 시골마을 사람들이 더 높은 세금을 짊어지느라 등허리가 휘었으며, 여느 시골 아재들이 군인으로 끌려가서 수없이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 이항복의 《백사집》을 보면, 율곡은 처가인 해주에 은퇴하여 머물 때 대장간을 차리고 호미를 만들어 팔아서 생활했다고 한다. 의리상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면 율곡은 부끄러워 하지 않고 실행했다는 것이다 … 율곡이 다섯 살 때 사임당이 병이 나서 식구들이 허둥지둥하는 사이 어린 율곡이 몰래 외할아버지의 사당에 들어가 기도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놀라 위로하고 안고 돌아온 일이 있었다 ..  (57, 59쪽)



  임진왜란이라고 하는 일이 터졌을 적에 죽은 사람이 누구인지 우리는 알 길이 없습니다. 이름이 있는 몇몇 장수는 알 수 있을 테지만, 병졸로 끌려가서 죽은 사람은 알 길이 없습니다. 더욱이, 바다에서 배를 몰다가 죽은 여느 일꾼들 이름은 알 길조차 없어요.


  일제강점기에 참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고달픈 나날을 보냈을 텐데, 수천만에 이르는 여느 사람들이 어떤 삶을 보내야 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뭅니다. 우두머리 몇몇 사람이 아닌, 이 나라를 이루는 수많은 사람들 삶자락을 제대로 헤아리거나 읽는 사람이 드물어요.


  왜 그럴까요? 역사책은 나오고 역사를 살피는 학자는 있는데, 왜 이 나라를 이루는 거의 모든 사람과 얽힌 삶과 뿌리와 이야기를 돌아보거나 갈무리하는 학자는 없을까요?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책이 있어, 조선이라는 중앙권력이 서던 때에 임금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몸가짐이나 몸짓 하나까지 적바림을 하면서, 정작 그무렵 여느 사람들 여느 삶을 적바림하는 이는 왜 아무도 없었을까요?


  오늘날도 그렇지요.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를 둘러싸고 온갖 사건과 사고를 적바림하는 기자나 지식인이나 학자는 있지만, 막상 이 나라 사람들을 먹여살리는 시골사람 이야기를 듣거나 살피면서 시골에서 삶을 가꾸는 기자나 지식인이나 학자는 거의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 서모와의 갈등으로 가정생활에 더욱 회의를 느끼게 되고, 집안에 불경이 있어 쉽게 불교에 접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는 데다, 기를 길러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산수가 아름다운 금강산에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 불교는 삶과 죽음을 대립으로 보지 않으며 죽은 이를 극락으로 이끌 수 있다는 믿음 … 율곡 자신은 과거 제도를 별로 좋은 제도로 여기지 않았고 벼슬에 큰 뜻을 두지도 않았기 때문에 율곡의 말에는 어느 정도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가 일생 동안 벼슬을 쉽게 던져 버리고 은거 생활을 반복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  (72, 79쪽)



  한영우 님이 쓴 《율곡 이이 평전》(민음사,2013)을 읽습니다. 한영우 님은 ‘5000원짜리 종이돈’에 얼굴을 새긴 율곡 이이라는 분이 지난날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삶을 일구었는가 하는 대목을 곰곰이 짚습니다. 율곡 이이라는 분을 나라에서 세조라는 임금이 수없이 불러서 일을 맡길 적에, 율곡 이이 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랏일을 모조리 뜯어고쳐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합니다. 이때에 세조라는 임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녁이 하는 말은 옳지만, 나는 그런 일을 할 만한 그릇이 못 된다’고 하면서 하나도 안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율곡 이이 평전》을 읽는 내내 참으로 답답합니다. 어째 세조라는 임금은 ‘신하 한 사람’을 가없이 믿고 일을 맡기겠노라 하면서 정작 이녁이 아낀다는 신하가 들려주는 정책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적조차 없을 수 있을까 하고.



.. 율곡이 수시로 벼슬을 버리고 파주, 해주의 석담 등지로 은거한 것은 선조가 율곡의 말을 옳게 받아들이면서도 실천을 게을리하고 개혁을 두려워하여 율곡을 실망시켰기 때문이었다 … 선조는 율곡의 경장 이론 가운데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던 세금 문제, 곧 공안과 선상의 민생 문제는 끝까지 실천하지 않았다 … 율곡은 조종의 구법을 모두 고치자는 것이 아니라 때에 맞추어 변통하는 것이라고 설득했다. 우유부단한 선조를 움직여 경장을 이끌어 내어 토붕와해의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율곡의 진심 어린 노력이 열매를 맺지 못하자 율곡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을 잃었다 ..  (84, 85, 98쪽)



  그런데 밑을 더 파고들면 세조라는 임금만 율곡 이이 님 뜻을 못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세조라는 임금을 둘러싼 다른 신하들이 율곡 이이 님처럼 ‘나랏일을 뜯어고치자’는 말을 거들지 않으니,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더 헤아린다면, 율곡 이이 님이 서울에서 물러나 시골로 돌아간 뒤, 서울에 남아 나랏일을 돌본다고 하는 다른 신하들이 옳고 아름다운 정책을 펼쳐야 마땅하지만, 정작 이러한 정책이나 일은 거의 안 이루어졌지 싶어요.


  옳고 바르며 아름다운 정책은 몇몇 사람 머리에서만 나올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옳고 바르며 아름다운 정책을 그려서 펼쳐야 합니다. 나랏일을 맡겠노라 한다면, 나랏일을 옳고 바르며 아름답게 할 노릇입니다.


  굳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 같은 어려운 말을 들지 않더라도, 집부터 옳고 바르며 아름답게 건사하고, 마을살이가 옳고 바르며 아름답도록 보듬으며, 우리 고장뿐 아니라 이웃 고장 모두 옳고 바르며 아름다운 길을 갈 수 있어야, 나랏일도 옳고 바르며 아름답습니다.



.. 수령 문제는 백성이 줄어들어 고을이 텅 비었는데도 수령을 파견하여 빈 자리만 차지하고 있으므로 인근 고을을 합치면 수령의 수를 3분의 1쯤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백성의 부역도 3분의 1쯤 줄어들게 된다 … 이런 폐단으로 몇 년이 못 가서 백성들의 기력이 떨어져 평일에 숨쉬기도 어려워지고 있는데, 만약에 남과 북에서 전쟁이라도 일어난다면 질풍에 낙엽이 쓸려 가는 꼴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  (135, 173쪽)



  율곡 이이 님과 세조라는 임금이 있던 지난날에도 ‘고을이 텅 비어 수령이 없어도 된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 시골은 젊은이가 죄 도시로 빠져나가 텅 빕니다. 우리 식구가 지내는 전남 고흥은 6만 안팎에서 오락가락합니다. 서울이나 부산으로 치면 작은 동 하나조차도 안 될 만큼 조그마한 지자체입니다. 이웃 다른 군을 보면 4만이니 3만이니 2만이니 하는 데가 많습니다. 이런 조그마한 군마다 군수가 따로 있고, 군청 공무원이 수백 사람입니다. 군수도 군청 공무원도 죄 줄일 노릇이지 싶어요. 국회의원 숫자도 크게 줄이거나 아예 없애야지 싶어요.


  정치나 행정을 맡는 공무원은 줄이고 또 줄이면서, 스스로 보금자리와 땅을 짓고 가꾸는 사람이 늘어나는 길을 열어야지 싶습니다. ‘일자리 만들기’는 그만두고, ‘시골에서 흙짓기’를 하는 길을 마련해야지 싶습니다. 뚝딱뚝딱 건물을 시멘트로 때려짓는 짓은 그치고, 그러니까 4대강사업 따위로 시멘트 들이붓는 ‘일자리 만들기’는 뚝 그치면서, 몽땅 도시로만 몰려서 아둥바둥거리는 사회 얼거리를 바로잡게끔 시골에서 ‘내 땅’을 누리면서 즐겁게 삶과 밥과 집을 짓는 길을 넓혀야지 싶습니다.



.. 율곡은 독서하는 방법으로서 다독보다는 정독과 숙독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으며, 의문 나는 점을 그냥 넘기지 말라고 충고한다 … 율곡이 향약을 시행함에 있어 교화보다 양민을 우선으로 보아 경제적 환난상휼에 큰 비중을 둔 것이나, 민생을 위한 경장에 역점을 둔 것이나, 신분 계급 구조하에서 하인이나 노비 또는 서얼 등 천하게 취급되는 사람들에 대해 매우 관용적이고 포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그의 따뜻하고 적극적인 성선설의 인성론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186, 281쪽)



  똑똑하거나 훌륭한 사람이 곁에 있더라도, 똑똑한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알아들을 귀가 없으면 덧없고, 훌륭한 사람이 알려주는 슬기를 알아챌 마음이 없으면 부질없습니다. 내 둘레에 똑똑한 이웃이나 훌륭한 동무가 꼭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똑똑해야 하고, 나 스스로 훌륭해야 합니다. 내가 이웃한테 똑똑한 말을 들려줄 수 있어야 하며, 내가 동무한테 훌륭한 슬기를 일깨울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똑똑하고 훌륭하게 삶을 가꾸거나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깊이 읽어야 합니다. 두루 살펴야 합니다.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두루 헤아려야 합니다. 우리 삶을 이루는 바탕을 제대로 읽고 살피면서, 이웃과 동무가 어우러지는 얼거리를 또렷이 바라보면서 마주해야 합니다.


  《율곡 이이 평전》을 읽고 보니, 율곡 이이라는 분은 서울에서 나랏일을 돌보던 때에 그리 즐겁지 않았구나 싶습니다. 세조라는 임금이 자꾸 불러서 서울에서 나랏일을 돌보아야 했던 때에 그만 마음이 괴롭고 힘들어서 몸이 아파서 일찍 숨을 거두었구나 싶습니다. 즐거움이 없으니까요. 오직 막히기만 하는 울타리만 높으니까요. 스스로 몸을 살리고 마음을 가다듬고 싶어 자꾸자꾸 서울을 떠나 시골로 가서 조용히 살던 율곡 이이 님 모습을 그립니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를 떠나 시골로 씩씩하게 가려는 젊은이가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몸을 건사하고 마음을 돌보려고 시골에서 삶짓기를 하겠노라 당차게 외칠 줄 아는 젊은이는 어디에서 나타날 만할까 궁금합니다. 4347.11.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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