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113) 규칙적 1


나는 나의 여자친구가 오는 것으로만 알았다. 흔히 여자친구는 저녁식사 전에 거의 규칙적으로 나를 찾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안녕이라고 소리지르고는 곧 그 친구가 언제나 하는 말을 기대하였다

《오리아나 팔라치/박동욱 옮김-사과를 따지 않은 이브》(새벽,1978) 118쪽


 거의 규칙적으로 나를 찾아왔던

→ 거의 꾸준히 나를 찾아왔던

→ 거의 빠지지 않고 찾아왔던

→ 거의 날마다 나를 찾아왔던

→ 바지런히 나를 찾아왔던

→ 거의 틈만 나면 나를 찾아왔던

 …



  나한테 ‘자주’ 찾아오는 사람은 ‘꾸준히’ 얼굴을 내밉니다. ‘한결같이’ 나한테 찾아오고, ‘줄기차게’ 내 둘레에 있습니다. 자주 볼 수 있는 사이인 만큼, ‘날마다’ 보거나 ‘거의 날마다’ 볼 테지요. ‘틈만 나면’ 찾아와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규칙적 변화 → 꾸준한 변화

 규칙적인 생활 → 꾸준한 삶

 벨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리다 → 딸랑 소리가 꾸준히 울리다


  한자말 ‘규칙’에 ‘-的’을 붙이면 ‘규칙적(規則的)’이 되고, 이 낱말은 “일정한 질서가 있거나 규칙을 따르는”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한자말은 ‘꾸준히’나 ‘자꾸’나 ‘잇달아’를 밀어내면서 쓰임새를 넓힙니다. ‘규칙’이라는 낱말은 알맞게 받아들여서 쓰면 될 텐데, 이 낱말에 굳이 ‘-的’을 붙여서 여러 가지 한국말을 밀어내야 할는지 곰곰이 돌아볼 노릇입니다. 4336.2.26.물/4347.11.2.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나는 내 여자친구가 오는 줄로만 알았다. 흔히 여자친구는 저녁 먹기 앞서 거의 꾸준히 나를 찾왔다. 그래서 나는 반가워 하고 소리지르고는 곧 그 아이가 언제나 하는 말을 기다렸다


‘나의’는 ‘내’로 바로잡고, “오는 것으로만”은 “오는 줄로만”으로 손봅니다. “저녁식사(-食事) 전(前)에”는 “저녁 먹기 앞서”로 손질하고, “찾아왔던 것이다”는 “찾아왔다”나 “찾아오고는 했다”로 손질하며, “안녕(安寧)이라고 소리지르고는”은 “반가워 하고 소리지르고는”이나 “잘 왔어 하고 소리지르고는”으로 손질합니다. ‘기대(期待)하였다’는 ‘기다렸다’로 다듬습니다.



규칙적(規則的) : 일정한 질서가 있거나 규칙을 따르는

   - 규칙적 변화 / 규칙적인 생활 / 벨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리다

규칙(規則)

1. 여러 사람이 다 같이 지키기로 한 법칙이나 질서

2. 헌법이나 법률에 입각하여 세우는 제정법의 한 형식 


..



 '-적' 없애야 말 된다

 (837) 규칙적 2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지 못한데다 공부에 열중하느라 몸도 많이 쇠약해 있었던 탓이다

《정운현-임종국 평전》(시대의창,2006) 107쪽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지 못한데다

→ 때맞춰 밥을 먹지 못한데다

→ 제때 밥을 못 먹은데다

→ 끼니를 못 챙긴데다

→ 끼니를 흔히 거른데다

 …



  군대에서는 으레 “규칙적인 식사와 훈련”이라고 말합니다. 한국 사회 구석구석에는 군대 질서와 말투가 박힙니다. 일제강점기뿐 아니라 군사독재가 퍽 길었던 탓에, 군대에 깊이 박힌 일제강점기 군대 말투가 사회 곳곳으로 퍼지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제강점기 군대 질서 찌꺼기를 씻어내려는 움직임은 찾아보기 매우 어렵습니다. 일제강점기 찌꺼기도 씻어내지 못하고, 군대 질서 찌꺼기도 씻어내지 못하는 셈입니다.


  앞으로는 어디에서나 “제때 먹는 밥”을 이야기하면서 “때맞춰 먹는 밥”을 말할 수 있기를 빕니다. “세 끼 밥”이든 “두 끼니 밥”이든 누구나 알맞고 즐겁게 누릴 수 있기를 빕니다. “끼니를 거르지 않기”와 “끼니를 챙기기”로 나아가면서 우리 둘레에 있는 배고픈 사람들 마음을 헤아릴 수 있기를 빌어요. 4340.2.23.쇠/4347.11.2.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때맞춰 밥을 먹지 못한데다 공부에 매달리느라 몸도 기운을 많이 잃었던 탓이다


“식사(食事)를 하지 못한데다”는 “밥을 먹지 못한데다”로 다듬고, ‘열중(熱中)하느라’는 ‘매달리느라’로 다듬으며, “많이 쇠약(衰弱)해 있었던”은 “많이 나빠진”이나 “힘이 많이 빠진”이나 “기운을 많이 잃은”으로 다듬습니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999) 규칙적 3


할아버지의 생활은 규칙적이었다.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동네 뒷산의 약수터를 돌고 아침 먹기 전에 돌아왔다

《이준호-할아버지의 뒤주》(사계절,2007) 19쪽


 할아버지의 생활은 규칙적이었다

→ 할아버지는 짜임새 있게 사셨다

→ 할아버지는 바지런히 사셨다

→ 할아버지는 반듯하게 사셨다

→ 할아버지는 바지런하셨다

 …



  규칙을 잘 지키며 산다고 하면 ‘짜임새 있게’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짜임새 있게 사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반듯하구나’ 싶어요. 이렇게 사는 분은 작은 틈조차 허투루 쓰지 않습니다. 빈틈이 없어요. 하루 한때 허술하게 흘려보내지 않습니다.


 부지런하다

 바지런하다


  지난날 독재정권을 떠올립니다. 그무렵 학교 어귀나 교실이나 길가 알림판에는 ‘근면’과 ‘성실’을 내걸었습니다. 사람들은 나라에서 윽박지르는 푯말에 맞추어 기계나 군인처럼 척척 따르기만 해야 했습니다. 삶을 스스로 알차게 가꾸는 모습이 아니라, 누군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착착 따라야 했어요.


  이러한 틀이나 흐름 때문에 ‘규칙 + 적’ 얼거리로 짠 한자말을 자꾸 쓰는구나 싶습니다. 아직 이 나라에 민주와 평화와 평등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탓에 ‘규칙적’ 같은 낱말이 두루 퍼지기만 하고, 좀처럼 사라지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서로 아끼면서 부지런히 삶을 가꾸면 아름답습니다.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바지런히 삶을 일구면 사랑스럽습니다.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사랑스러움을 꿈꿉니다. 4340.11.8.나무/4347.11.2.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할아버지는 바지런히 사셨다. 내가 일어나기 앞서 동네 뒷산 약수터를 돌고 아침 먹기 앞서 돌아왔다


‘생활(生活)’은 ‘삶’으로 고치면 되는데, 이 글월에서는 뒷말과 묶어 “바지런히 사셨다”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동네 뒷산의 약수터”는 “동네 뒷산 약수터”로 손보고, “아침 먹기 전(前)에”는 “아침 먹기 앞서”로 손봅니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1691) 규칙적 4


정말 수염 위에는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빨래집게 자국이 나 있었어요

《잔니 로다리/이현경 옮김-치폴리노의 모험》(비룡소,2007) 40쪽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 똑같은 간격을 두고

→ 똑같은 틈을 두고

 …



  빨래집게 자국이 있는데, 이 자국부터 저 자국까지, 또 저 자국부터 그 자국까지, 똑같이 벌어집니다. 자국은 똑같은 틈을 두고 차근차근 있습니다. 그래요, 똑같은 틈입니다.


  한편, 보기글은 통째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참말 나룻에는 빨래집게 자국이 가지런히 있어요”라든지 “참말 나룻에는 빨래집게 자국이 나란히 있어요”처럼. 4347.11.2.해.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참말 나룻에는 빨래집게 자국이 나란히 있어요


‘정(正)말’은 ‘참말’로 다듬고, “수염(鬚髥) 위에는”은 “수염에는”이나 “나룻에는”으로 다듬으며, ‘간격(間隔)’은 ‘틈’이나 ‘사이’로 다듬습니다. “자국이 나 있었어요”는 “자국이 있었어요”로 손질합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