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85] 처마물



  전라남도에서는 ‘집시랑’이라는 낱말로 ‘기스락’을 가리킵니다. ‘기스락’은 “처마 끝”을 가리킵니다. 도시에 흔한 아파트나 빌라에는 지붕이나 처마가 따로 없기 일쑤이지만, 시골집에는 어디에나 처마가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처마를 따라 빗물이 흐르다가 졸졸졸 떨어지거나 똑똑똑 떨어집니다. 그래서, 전라남도에서는 이 물을 가리켜 ‘집시랑물’이라 합니다. 경상도에서는 그냥 ‘처마물’이라고 흔히 쓴다고 합니다. 경기도와 서울 언저리에서는 한자를 빌어 ‘낙숫물(落水-)’이라 씁니다. 그런데, ‘낙숫물’은 말이 안 됩니다. ‘낙수(落水)’가 바로 ‘떨물(떨어지는 물)’이기 때문입니다. 전라도에서는 ‘집시랑’이라 하지만, ‘처마’라는 낱말도 함께 씁니다. 요즈음은 교통과 통신이 널리 퍼졌기에 여러 고장 낱말을 섞어서 쓴다고 할 만해요. 시골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거의 다 도시로 빠져나간 탓에, 이 아이들이 도시로 가서 지내며 ‘도시사람 말씨’에 젖어서 시골로 돌아오기도 해요. 여러모로 살핀다면, 우리가 쓸 낱말은 ‘처마물’을 바탕으로 ‘기스락물·집시랑물·추녀물·비낸물’ 들이지 싶어요. 가을비 그친 한밤에 처마에서 똑똑똑 떨어지는 빗물소리를 들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4347.1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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