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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숲 24 - 신장판
이시키 마코토 지음, 양여명 옮김 / 삼양출판사(만화)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406
피아노가 자란 숲
― 피아노의 숲 24
이시키 마코토 글·그림
양여명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4.9.27.
피아노라고 하는 악기는 나무로 만듭니다. 나무가 없다면 피아노도 없습니다. 요즈음은 전자건반이 나오기도 하는데, 전자건반은 건반만 똑같이 틀을 잡아서 만들기에 전자건반이기는 하지만 피아노는 아닙니다.
그런데, 피아노를 치면서 ‘나무를 친다’고 느끼는 사람은 아주 드물지 싶어요. 노래를 치고 이야기를 친다는 데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많을 테지만, 숲에서 자란 나무를 얻어서 새로운 소리로 태어나도록 손질한다는 대목을 헤아리는 사람은 퍽 드물지 싶습니다.
-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너무나도 따스하게 감싸 주는 듯해서, 피아노를, 피아노를 따르자! 이 피아노가 우릴 이끌어 줄 거야! 우린 하던 대로 최고의 연주만 하면 돼!’ (9∼11쪽)
- ‘아, 그렇구나. 이곳은, 이곳은 별빛 가득한 밤하늘 아래야!’ (18∼19쪽)
피아노라는 악기를 처음 만든 날부터 얼마 앞서까지, 사람들은 손수 숲에서 나무를 베고, 손수 나무를 알맞게 손질하고, 손수 나무를 알맞게 말린 뒤에 비로소 악기로 쓸 틀을 짰습니다. 오늘날에는 피아노라는 악기도 공장에서 만들기 일쑤이지만, 제아무리 공장에서 피아노를 만든다 하더라도 숲이 있어야 나무를 얻고, 제대로 말려야 나무를 쓸 수 있으며, 마지막 소리 하나까지 나무결을 살려야 이 악기를 다룰 수 있습니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보면, 겨울에 추위를 떠는 아이를 따뜻하게 하려고 피아노를 도끼로 찍어서 장작으로 쓰는 대목이 나옵니다. 너무 추운 나머지 피아노를 그만 도끼로 쩍쩍 찍는데, 막상 피아노를 찍어서 장작으로 쓰려고 해도 나무가 얼마 안 돼요. 피아노는 커다란 덩치와는 달리 ‘장작으로 삼을 만큼’ 나무가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그야말로 손이 많이 가도록 나무를 많이 자르고 베고 켜고 손질해서 만드는 피아노이지만, 피아노를 다른 데에는 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추우면 장작으로라도 쓸밖에 없을는지 모르나, 고작 하루나 한나절 땔감으로 쓰면 사라집니다.
추운 겨울날 덜덜 떨면서 살 수 없겠지요. 추운 겨울날 피아노로 노래를 친다고 해서 추위기 사라지지 않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추워도 집을 뜯어서 장작으로 삼지 않습니다. 기둥도 지붕도 그대로 둡니다. 장작을 얻으려면 다른 데에서 얻어야 합니다.
- ‘바람이, 풀 향기를 몰고 왔어.’ ‘아니, 이건 나무의 향기다.’ ‘카이, 이곳은 숲이구나. 그리운 피아노의 숲이야.’ (31쪽)
- ‘그렇구나. 일일이 숲으로 되돌아가지 않아도, 숲의 피아노는 항상 내 마음속에 있어.’ (111쪽)
이시키 마코토 님이 빚는 만화책 《피아노의 숲》(삼양출판사,2014) 스물넷째 권을 읽습니다. 스물넷째 권에서 드디어 ‘이치노세 카이’가 피아노를 칩니다. 어린이에서 씩씩한 푸름이로 자란 카이가, 곧 어른이 될 카이가, ‘숲 피아노’를 칩니다.
다만, 카이는 이제 ‘숲 피아노’에만 매이지 않습니다. 카이가 치는 피아노는 숲에서 태어났지만, 숲에서 자란 나무가 피아노로 바뀌어 여러 나라 골골샅샅으로 퍼지듯이, 숲에서 자란 나무가 걸상도 되고 책상도 되어 온갖 나라 구석구석으로 퍼지듯이, 숲에서 자란 나무가 종이로 바뀌고 책으로 다시 태어나서 지구별 이곳저곳으로 퍼져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숲 피아노’는 카이를 비롯해서 모든 사람들한테 새로운 숨결로 퍼집니다.
- ‘그때 되선 선생님도 나도 불편한 감정을 품은 채 서로 대치하는 걸 그만두고, 현재 가장 우선시해야 할 일을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57쪽)
- “그러니까 난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할 거야! 그래서 그걸 매일 반복할 거야!” (66쪽)
카이는 ‘쇼팽 대회’에 가서 ‘쇼팽’을 피아노로 칩니다. 대회에 나갔으니 1등을 하려는 생각이 있을 수 있으나, 카이는 오직 피아노를 치려고 대회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대회에 나갔다기보다는 ‘피아노 치는 사람’으로 이웃들한테 인사를 하려고 그 자리에 섭니다.
카이가 마음을 쓰는 대목은 오직 하나입니다. 숲에서 나고 자란 피아노가 카이를 비롯한 이웃들한테 아름다운 노래로 스며들어서 꿈과 사랑을 들려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이 하나를 생각하면서 피아노를 칩니다.
숲에서 부는 바람을 피아노로 칩니다. 숲에서 자라는 푸릇푸릇 새싹과 봄꽃을 피아노로 칩니다. 숲에 깃들어 살아가는 새와 벌레와 온갖 짐승들 살림살이를 피아노로 칩니다. 숲에서 올려다보는 구름과 무지개를 피아노로 칩니다. 숲에서 밤마다 흐르는 고즈넉하고 고요한 별빛을 피아노로 칩니다. 숲에서 솟아 들을 가로지른 뒤 바다로 나아가는 냇물을 피아노로 칩니다.
- ‘정신을 차리니, 내 곁을 지켜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깨닫고 보니, 마음 따뜻한 사람들에게 항상, 항상 둘러싸여 있었다.’ (140∼142쪽)
숲에서 들리는 피아노 노랫소리를 듣는 사람은 저마다 생각에 젖습니다. 저마다 그리운 생각에 젖습니다. 천천히 눈을 뜨고 천천히 웃음꽃을 피웁니다. 그래요. 숲은 모두를 따사로이 보듬습니다. 숲은 푸른 바람을 일으켜 모두한테 고운 숨결을 베풉니다. 너와 내가 하나요, 네가 나와 함께 있어 즐거운 삶을 이야기해요.
피아노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어떤 마음일까 하고 생각합니다. 책으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어떤 마음일까 하고 돌아봅니다. 걸상이나 책상으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옷장이나 책꽂이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빗자루나 젓가락으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부챗살이나 연살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연필이나 붓으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호밋자루나 삽자루로 다시 태어난 나무는, 모두들 우리 곁에서 어떤 숲노래를 들려줄까요? 귀를 기울이면 모든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기울이면 우리 몸을 타고 흐르는 푸른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4347.10.30.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