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손가락의 자립 신생시선 36
이은주 지음 / 신생(전망)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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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72



시와 컴퓨터

― 긴 손가락의 자립

 이은주 글

 신생 펴냄, 2013.12.20.



  혼자 먹을 밥을 한 그릇 끓일 때하고 곁님과 함께 먹을 밥 두 그릇 끓일 때하고 아이들과 함께 먹을 밥 네 그릇 끓일 때는 얼마나 다른가 하고 헤아립니다. 다를까요? 다르다면 다릅니다. 그렇지만, 같다면 같습니다.


  다르다면, 혼자 먹을 적하고 넷이 먹을 적에는 밥이나 국을 끓이는 부피가 다릅니다. 혼자 먹을 적하고 여럿이 먹을 적에는 밥상에 올리는 접시 갯수와 수저 숫자가 다릅니다. 여럿이 먹기에 한결 넉넉히 찬거리를 마련하고, 여럿이 먹는 만큼 건더기 푸짐하게 넣고 국을 끓이기도 합니다.



.. 흐린 날 / 흐린 우산을 쓰고 / 흐린 케이크 가게를 찾는다 ..  (우울한 케이크 가게)



  가게에서 푸성귀를 사다가 찬거리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마당이나 뒤꼍이나 옆밭에서 풀을 뜯어서 찬거리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마련하든 모두 내 몸으로 들어와서 즐거운 기운으로 거듭납니다.


  다만, 집에서 뜯는 풀은 풀내음이 한결 짙습니다. 가게에서 사다가 쓰는 푸성귀는 풀내음이 무척 옅습니다. 집에서 뜯는 풀은 아침에 뜯어도 낮이면 시들시들하기에 곧바로 손질해서 그 자리에서 다 먹어야 합니다. 가게에서 사다가 쓰는 푸성귀는 아침에 손질해 놓아도 저녁까지 시들지 않고, 이튿날에도 마르지 않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가게에 놓인 푸성귀는 어느 비닐집에서 가게까지 오는 동안 하루나 이틀은 걸리기 마련이고, 가게에서 더 손질해서 놓기까지 제법 긴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여러 날, 때로는 이레 즈음 시들지 않도록 여러모로 손을 쓰고 품을 들여야 합니다.


  집에서 뜯는 풀은 그때그때 먹으니, 가장 맛나게 먹을 수 있으면서, 그 자리에서 다 안 먹으면 시들고 말아 다시 흙으로 돌려줍니다.



.. 그 깨알만한 알들의 버무림, 내 손을 잡으시던 따뜻한 부고가 섬뜩하다 외할머니는 내 가슴에 그리움의 지문 하나 남기고 떠나신다 ..  (게알)



  이은주 님이 쓴 시집 《긴 손가락의 자립》(신생,2013)을 읽습니다. 긴 손가락은 스스로 선다고 합니다. 긴 손가락은 씩씩하게 제 길을 걷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섭니다. 우리는 누구나 제 길을 걷습니다. 저마다 스스로 서서 다 함께 어우러집니다. 스스로 제 길을 걷다가 빙그레 웃음을 지으면서 어깨동무를 합니다.


  이곳에서도 서로 만나고, 저곳에서도 어깨동무를 합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저마다 만나고, 함께 어우러집니다. 내 이야기를 네가 듣고, 네 이야기를 내가 듣습니다.



.. 마흔 즈음 혼자가 되고 나니 언제쯤 정말 혼자였던가, 혼미해진다 술 취한 애인이, 사람은 누구나 다 혼자야, 라고 잠꼬대를 한다 더 혼미해진다 따귀를 날리고 싶었지만 참기로 한다 손바닥이 애인의 얼굴에 닿는 순간 혼자가 아니라고 착각할까봐 두려워진다 ..  (마흔 즈음에)



  읍내 가게에 가서 장만한 큰파를 손질합니다. 뿌리 쪽을 조금 크게 자릅니다. 자른 뿌리는 그릇에 담아 물을 살짝 붓습니다. 파뿌리가 하루나 이틀쯤 물을 빨아들이도록 한 뒤 마당 둘레에 옮겨심을 생각입니다. 옮겨심은 파뿌리를 보면 이내 죽는 아이가 있지만, 기운차게 푸른 잎을 쑥쑥 올리는 아이가 있습니다. 기운차게 푸른 잎을 올리는 아이가 있으면 고맙게 푸른 숨결을 얻습니다. 파뿌리 아이들은 잎을 한 번 두 번 내주어도 다시금 쑥쑥 올라옵니다.


  비가 그친 아침에 뒤꼍으로 가서 감을 넉 알 줍습니다. 엊그제 비가 한 차례 훑고 지나갔으니 틀림없이 감이 떨어졌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제 바깥마실을 갔다가 엊저녁에 돌아왔어요. 오늘 아침에 기쁘게 뒤꼍으로 갔지요. 고맙게 넉 알을 주으면서 감나무를 올려다봅니다. 아직 두어 알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까치밥이 될 수 있고, 톡 떨어져 우리 아이들 밥이 될 수 있습니다. 어른 주먹보다 조금 큰 묵직하고 커다란 감알을 일곱 살 네 살 아이들이 한 알씩 날름날름 먹습니다. 곁님도 한 알 먹고 나도 한 알 먹으려 합니다.



.. 남자는 씨를 품고 태어났다 씨는 낡은 어둠을 갉아먹으며 자란다 길을 거부한 뿌리만을 뻗어 얽히고설켜 한 덩어리로 숨쉰다 뿌리가 자랄수록 남자의 옹알이가 부서진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말이 되지 못한 소리의 조각들이 동글어져 봉분이 된다 ..  (붉은 혹―과지모도에게 2)



  오늘날은 컴퓨터로 글을 만지면서 책을 내놓습니다. 오늘날은 시나 소설이나 수필이나 사진 모두 컴퓨터로 만져서 책으로 엮습니다. 오늘날은 그림도 그냥 컴퓨터로 그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정작 ‘책’은 손으로 읽습니다. 전자책을 읽더라도 손으로 움직여서 읽습니다.


  컴퓨터를 만질 적에도 손으로 만집니다. ‘컴퓨터로 만드는 책’이라 하더라도, 알고 보면, 언제나 우리 손으로 만드는 셈입니다.


  컴퓨터도 사람들이 손으로 만들어요. 기계가 만든다고 할 수도 있지만, 컴퓨터를 만드는 기계는 사람이 만들지요. 우리가 쓰는 모든 것에는 우리 손길이 깃듭니다.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컴퓨터도, 자판도 모두 손으로 만져서 이루지만, 연필을 손에 쥐어 종이에 찬찬히 적는 시가 된다면, 우리가 손수 씨앗을 흙에 심어서 손으로 거두어들인 뒤 밥을 짓는다면, 전기밥솥에 맡기는 밥이 아니라, 솥이나 냄비에 불을 알맞게 맞추어 스스로 끓이는 밥을 먹는다면, 시도 이야기도 삶도 책도 달라지리라 봅니다.


  책을 읽으려면 컴퓨터를 꺼야 하듯이, 시를 쓰는 사람과 노래를 읽는 사람 모두 컴퓨터를 한쪽에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을 짓는 사람과 사랑을 가꾸는 사람 모두 컴퓨터며 텔레비전이며 신문이며 모두 한쪽에 치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10.21.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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