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전쟁무기와 ‘성 노리개’
사이좋게 노는 아이들은 싸우거나 다투지 않습니다. 사이좋기 때문입니다. 사이좋게 노는 아이들은 총이나 칼을 손에 쥐지 않습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이좋게 노는 아이들은 거친 말을 안 쓰고, 윽박지르거나 괴롭히거나 따돌리는 짓을 일삼지 않습니다. 서로 믿으며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서로 사이좋게 지낸다고 한다면, 서로한테 총을 겨누거나 칼을 휘두르지 않습니다. 사이좋게 지내는 사람들은 뒤에서 해코지를 하거나 거짓말을 퍼뜨리거나 괴롭히지 않아요.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은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스러운 곳에는 평화가 감돕니다. 사랑스러워서 평화가 감도는 곳에는 민주와 평등이 함께 있습니다. 그러니까, 평화와 민주와 평등이 있는 곳에는 싸움이나 다툼이 없습니다. 평화와 민주와 평등이 있는 곳에는 사랑만 있으니, 싸움이나 다툼이 들어설 일이 없어요.
전쟁무기를 갖추면 평화가 찾아올까요? 아닙니다. 경찰이나 군인이 많아야 평등이나 민주를 이룰까요? 아닙니다. 전쟁무기와 경찰과 군인은 평화·민주·평등에 등돌립니다. 전쟁무기는 전쟁을 부릅니다. 전쟁무기를 앞에 내밀어 보셔요. 누구나 벌벌 떨며 무섭습니다. 전쟁무기를 든 사람 앞에서 다른 전쟁무기를 들고야 맙니다. 전쟁무기는 전쟁무기를 부르고, 전쟁무기로는 오직 전쟁을 할 뿐입니다.
한반도 남녘이나 북녘 모두 전쟁무기를 키워서는 어떠한 평화도 못 이룹니다. 일본이나 중국도 전쟁무기를 자꾸 늘려서는 아무런 평화를 부르지 못합니다. 미국과 러시아도 전쟁무기를 멈추지 않고서야 지구에 평화를 심을 수 없습니다. 이 나라에서 핵무기를 만드니 저 나라도 핵무기를 만들어요. 핵무기가 핵무기를 막아 주지 않아요. 핵무기는 자꾸 새로운 핵무기를 부를 뿐이에요.
가는 말이 고울 때에 오는 말이 곱다는 옛말처럼, 우리 손에 사랑을 들었으면 우리와 마주선 사람도 두 손에 사랑을 듭니다. 우리가 두 손에 총칼을 들었으면 우리와 마주선 사람도 두 손에 총칼을 들어요. 그러면, 우리 앞에 누군가 총칼을 들고 찾아올 적에 어떡해야 할까요? 이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시카와 이쓰코 님이 쓴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삼천리 펴냄,2014)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일제강점기 ‘성노예’와 얽힌 이야기를 일본사람이 스스로 낱낱이 밝혀서 썼습니다. 이 책을 쓴 일본사람은 머리말에서 “유엔의 기관들이 수차례 권고와 제언을 했지만 일본 정부는 일관되게 무시해 오고 있습니다. 교과서 검정을 통해 ‘위안부’에 관한 기술을 완전히 삭제해 버린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소녀들에게만큼은 진실을 알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6∼7쪽).” 하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위안부’라고 하는 ‘성노예’ 이야기를 학교에서 어느 만큼 가르칠는지 궁금합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왜 ‘위안부’라는 이름을 붙여서 ‘성노예’가 된 가녀린 여자를 짓밟았는가 하는 대목을 어느 만큼 꼼꼼히 밝혀서 가르칠는지 궁금합니다.
역사를 더듬으면, 일본 제국주의만 이웃나라 여자를 강간하거나 학살하지 않았습니다. 지구별에 있는 모든 나라가 이웃나라로 쳐들어가면 어김없이 이웃나라 여자를 강간하거나 학살했습니다. 한국(예전에는 고려나 조선)으로 쳐들어온 중국이나 몽고도 이 나라 여자를 강간하거나 학살했습니다. 임진왜란이라고 일컫던 때에는 어떠했을까요? 더 앞선 역사를 살펴,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가 서로 다투던 때에는 어떠했을까요? 고구려가 만주로 땅을 넓히던 때에는 어떠했을까요? 이웃나라로 쳐들어가서 땅을 넓히던 이들은 이웃나라 여자를 어떻게 ‘다루었’을까요?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이라는 책은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정복당한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직 정복할 땅과 자원, 훈장과 명예, 그리고 여자의 몸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을 쟁취하기 위해 사기와 폭력, 살인을 아랑곳하지 않고 저질렀는데, 여기에 국가권력이 개입하면 이 모든 행위는 ‘성전’으로 둔갑해 버렸다. 이러한 미사여구로 국민들을 교육하고 선전하고 속여 정신까지 관리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저항하는 자들은 체포하여 처형하거나 ‘비애국자’로 낙인찍어 규탄하였다(141쪽).”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전쟁이 하는 일이란 이웃나라 자원과 땅을 빼앗는 짓인 한편, 이웃나라 여자를 짓밟으면서 괴롭히는 짓입니다. 티벳을 식민지로 삼은 중국도 이 짓을 똑같이 저질렀어요.
책을 덮고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요즈음 한국 사회에서 군대 이야기가 퍽 자주 불거집니다. 사단장이 누군가를 성추행한 이야기가 불거지고, 후임병을 성추행하다가 주먹과 발로 두들겨패서 죽인 이야기가 불거지며, 하사관이나 장교와 선임병이 저지른 폭력과 학대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야기가 불거집니다.
예나 이제나 군대는 비슷합니다. 군대가 있는 마을 둘레에는 술집과 ‘여자 파는 집’이 있습니다. 주한미군 부대가 있던 곳마다 술집과 ‘여자 파는 집’으로 커다란 장삿마을을 이루곤 했습니다. 군인옷을 입은 사내가 서울역이나 용산역이나 강변역 같은 데에서 기차나 버스를 내리면 어김없이 누군가 달라붙어서 ‘여자를 돈으로 사지 않겠느냐?’면서 추근댑니다. 군부대 내무반에는 옷을 홀딱 벗은 여자 사진을 붙이는데다가, ‘여자를 노리개로 삼는 비디오’를 문화생활(?)이라면서 보여주기 일쑤입니다.
군대가 참말 평화를 지키는 곳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군대에서 여자를 ‘성 노리개’로 삼도록 길들이는 얼거리를 똑바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일본 군국주의자는 ‘위안소’를 만들었고, 한국 군대는 ‘창녀촌’을 만들었습니다. 4347.10.1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