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의 거리 문학동네 동시집 3
곽해룡 지음, 이량덕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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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37



꿈과 사랑이 흐르는 삶

― 맛의 거리

 곽해룡 글

 이량덕 그림

 문학동네 펴냄, 2008.11.24.



  아이들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이 아이들이 돈을 잘 벌어서 돈을 잘 쓰는 어른이 되기보다는, 삶을 즐겁게 가꾸면서 사랑을 기쁘게 나눌 숨결로 자랄 때에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언제나 가슴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어 사랑이라는 열매를 가꾸고, 다시 사랑이라는 씨앗을 거두어 새롭게 심을 줄 알 때에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 아이들이 / 바닷물을 끌어당긴다 ..  (밀물)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됩니다. 어른은 모두 아기로 태어나 아이로 자랐습니다.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는 동안 삶을 익히고 삶을 가꾸며 삶을 사랑합니다. 어른은 모두 아기로 태어나 사랑을 받았고 꿈을 키웠으며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 시골 할머니 집에서 / 받아 온 꽃씨 / 우리 집 담장 밑에서 / 나팔꽃으로 피었습니다 ..  (나팔꽃)



  씨앗이 뿌리를 내립니다. 씨앗에서 줄기가 오릅니다. 처음 오르는 줄기는 아주 가냘픕니다. 아기가 손가락으로 톡 건드려도 끊어질 만합니다. 나무씨이든 풀씨이든 첫 줄기는 아주 가녀립니다.


  가녀린 줄기에서 가녀린 잎이 돋습니다. 이 첫 잎을 ‘싹’이라고 합니다. 새싹이 돋은 씨앗은 햇볕과 빗물과 바람을 먹으면서 흙 품에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이윽고 줄기가 단단하게 굵고 잎은 넓어집니다. 줄기와 잎과 뿌리가 알맞게 자라면서 어느 만큼 따사로운 기운을 머금을 무렵 가만히 꽃송이를 터뜨립니다. 꽃송이는 벌과 나비와 개미를 부릅니다. 게다가 사람까지 부르지요. 벌과 나비와 개미는 먹이를 찾아 꽃송이한테 다가갑니다. 사람은 아름다운 숨결을 받고 싶어서 꽃송이한테 다가섭니다.



.. 사람들이 모를 심듯 / 새들은 나무를 심는다 ..  (똥 누러 가는 새)



  아름다운 꽃송이는 여러 날 바람에 한들거리면서 즐겁게 한삶을 누리다가 사르르 집니다. 꽃송이가 지면서 씨방이 굵습니다. 씨방은 차츰 여물고, 어느새 새로운 목숨을 안은 씨앗이 태어납니다.


  씨앗이 씨앗을 낳습니다. 씨앗은 씨앗으로 이어집니다. 사랑을 베푸는 씨앗은 새로운 사랑을 베풀 씨앗으로 이어집니다. 사랑을 노래하는 씨앗은 앞으로 새롭게 사랑을 노래할 씨앗으로 숨결을 잇습니다.


  꽃이 진 모습을 바라보던 사람은 살짝 서운하지만, 씨앗이 맺은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부풉니다. 그래, 올해가 지나고 새로운 해가 찾아오면 다시 꽃잔치를 누릴 수 있어. 이 씨앗을 보면서 다시금 기운을 차려야지.



.. 꽃길 걷다 보면 / 나도 모르게 / 찐―짠 찐짠 찐짠 / 노래가 나온다 ..  (꽃길)



  곽해룡 님이 빚은 동시를 그러모은 《맛의 거리》(문학동네,2008)를 읽습니다. 아이한테 들려주려고 쓴 동시가 이 작은 책에 깃듭니다. 곽해룡 님이 어린 날부터 어른이 된 오늘까지 스스로 사랑하며 살던 이야기가 작은 동시에 조촐히 깃듭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사랑이란 사랑입니다. 꿈이란 무엇일까요. 꿈이란 꿈입니다. 사랑은 돈이 아닙니다. 꿈은 대학교가 아닙니다. 사랑은 아파트가 아닙니다. 꿈은 서울살이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어른들은 꿈을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물려받아야 합니다. 어른들은 꿈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 “학교 다녀왔습니다!” / “그래.” / 연속극에 붙들린 엄마 / 방에서 나와 보지도 않고 대답한다 ..  (엄마를 구하다)



  동시집 《맛의 거리》는 애틋하면서 살갑습니다. 다만, 조금 더 헤아려서 ‘사랑과 꿈을 노래하는 숨결’이 될 수 있으면 한결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놓은 사회 얼거리를 보여주는 동시도 나쁘지 않고, 어른들이 만든 슬픈 울타리를 건드리는 동시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동시로는 노래를 부르기 어려워요.


  아이들이 부르고 어른들도 함께 즐길 노래는 우리가 다 함께 나아갈 사랑과 꿈이 어우러진 이야기여야지 싶습니다. 이를테면 〈엄마를 구하다〉 같은 작품은 재미있고 어떤 상징을 보여준다고 할 만하지만, 이 동시를 노래로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살며시 나무라는 재미난 이야기인데, 여기에서 끝이에요.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내 동생〉 같은 작품도 아름답다 할 만하지만, 여기에서 끝이에요. 더 뻗지 못해요. 아이와 어른이 함께 지을 꿈과 사랑이 흐르지 못합니다.



.. 어제는 벽에 / 달을 그려 / 엄마한테 혼나고 // 오늘은 풍선을 그려 / 혼나고 / 울다 잠든 / 내 동생 ..  (내 동생)



  함께 지을 사랑을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씨앗을 심는 삶을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누릴 꿈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씨앗이 꽃이 되고 다시 씨앗이 되는 이야기를 어깨동무하면서 주고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을 짓듯이 동시를 짓기를 바랍니다. 재미난 몇 가지 이야기를 조각조각 맞추기보다, 꿈꾸는 삶과 사랑하는 삶을 따사롭게 노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10.1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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