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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 ㅣ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41
김지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2년 6월
평점 :
시를 말하는 시 71
시와 말밥
― 花開
김지하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02.6.25.
해가 천천히 기우는 네 시 무렵, 우리 집 마당에서 홀로 날아다니는 노랑나비를 봅니다. 시월 한복판에 깨어나서 날아다니는 나비라니, 틀림없이 우리 집 나무나 풀밭에서 깨어난 아이인 듯합니다. 네 철 푸른 잎사귀를 매단 후박나무에 깃드는 나비 애벌레가 많습니다. 초피나무와 감나무와 모과나무와 매화나무와 뽕나무에도 살몃살몃 여러 애벌레가 깃듭니다. 맛나게 먹을 잎사귀가 있으면 온갖 풀벌레와 날벌레가 알을 낳아 이녁 새끼를 낳습니다.
이 가을에 새롭게 깨어난 노랑나비는 어디에서 먹이를 찾을까요. 아마, 가을날 한껏 흐드러진 고들빼기꽃을 먹을 테고, 쑥부쟁이꽃도 먹을 테며, 가을민들레나 코스모스도 먹을 테지요.
.. 주먹구구로 살아왔네 / 아직도 서투른 구구 .. (구구)
시월이 천천히 무르익으니 들빛은 샛노랗습니다. 일찌감치 볍씨를 심은 논은 기계를 불러 볏포기를 벱니다. 요즈음 시골은 옛날과 달라 손으로 벼를 베는 들은 거의 없습니다. 하나같이 기계를 부려서 벼를 벱니다. 더욱이, 요즈음 시골을 보면 ‘유전자 건드린’ 볍씨이다 보니, 사람이 손을 써서 낫으로 베기에 퍽 어렵다 할 만합니다. 옛날 벼는 줄기가 굵고 길었으나, 요즘 벼는 줄기가 가늘고 짜리몽땅입니다.
그래도 들빛은 들빛대로 가을빛입니다. 샛노랗게 잘 익은 나락으로 가득한 들길을 아이들과 걷거나 자전거로 오갑니다. 요즈막에는 아침저녁으로 날이 쌀쌀한데, 이러한 날씨가 되니, 들마다 조물조물 푸른 잎사귀가 새로 오릅니다. 날이 추울 때에 싹이 터서 올라오는 갓이며 유채입니다.
누가 따로 심지 않아도 갓과 유채는 씩씩하게 가을바람을 먹으면서 싹을 틔웁니다. 모두 깊이 겨울잠을 자는 철에 갓과 유채는 기운차게 줄기를 올리고 잎사귀를 벌립니다. 일찍 올라온 갓과 유채는 한겨울에도 노랗게 꽃송이를 벌립니다. 참으로 대견하면서 놀라운 아이들입니다.
.. 감기 들린 작은놈 콜록 소리 / 내 가슴에 천둥 치는 소리 / 손에 끼었던 담배 / 저절로 떨어지고 / 춥다 / 그리고 덥다 .. (短詩 셋)
아이들을 모두 재운 깊은 밤에 살짝 마당으로 내려섭니다. 엊그제까지 보름이던 달이 차츰 이웁니다. 이틀이나 사흘 뒤면 반달이 될 듯한데, 보름 아닌 달이면서도 하얀 빛이 무척 밝습니다. 마당이 훤하고 밤하늘 구름까지 또렷합니다.
시골마을 달빛과 별빛을 올려다보며 생각합니다. 시골에서는 밤에 등불을 안 켜도 달빛과 별빛으로 환하면서 곱습니다. 자꾸 전기를 끌어들여 등불을 켜지 않아도 됩니다. 밤길이 어두울 일은 없습니다. 그믐달이 되면 조금 어둡다 할 만하지만,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뿐 아니라, 시골에서 여러 해 지낸 사람은 밤눈을 틔웁니다. 게다가, 그믐날은 별빛이 더욱 밝으니, 별빛을 등에 지면서 다닐 수 있어요.
.. 창 너머 / 내가 늘 바라다보는 / 감나무 한 그루에 / 감꽃이 숱하게 피었다 .. (短詩 다섯)
별이 있으니 별을 봅니다. 달이 있으니 달을 봅니다. 그렇지요. 별과 달을 가리는 곳에서는 별도 달도 못 봅니다. 높직한 건물이 별과 달을 가리는 데에서는 자꾸 전기를 끌어들여 등불을 켜야 합니다. 높직한 건물에다가 자동차가 넘치는 데에서는 곳곳에 전기로 등불을 밝혀야 합니다.
등불을 켜니 달과 별을 잊습니다. 등불을 켜니 한낮에도 컴컴한 건물에서 햇볕과 햇빛을 잊은 채 지냅니다. 등불을 바라보니 도시에서는 지하상가와 높은 건물을 자꾸 늘리며, 등불로 문명과 문화를 만드니, 도시에서는 흙과 풀과 숲을 자꾸 밀어내거나 없애는 정책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별과 달과 해가 없다면, 지구에서는 아무 바람이 불 수 없습니다. 별도 달도 해도 잊는다면, 지구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습니다. 나락을 익게 하는 힘은 해입니다. 능금이나 배나 포도나 감을 익게 하는 기운은 해입니다. 그리고, 달과 별입니다. 하늘을 가득 채운 아름다운 별은 서로 보살피고 가꿉니다. 온누리를 이루는 수많은 별은 서로 돌보고 어루만집니다.
.. 내 귓속에 / 한 사람 / 얼굴 없는 사람이 앉아 / 귀 기울이고 있다 .. (그때)
김지하 님이 쓴 시를 그러모은 《花開》(실천문학사,2002)를 읽습니다. 김지하 님은 학문도 하고 문학도 하니, 글멋을 부려서 ‘花開’와 같은 이름을 붙입니다. 시집 《花開》에는 ‘短詩’라는 이름을 붙인 시도 있고, 이밖에 한자로 이름을 붙인 시가 제법 많습니다.
고려나 조선이나 일제강점기도 아닌 오늘날 한국에서 한자로 시집 이름을 삼거나 한자를 빌어 시를 쓰는 분을 볼 때면 살짝 궁금합니다. 누가 읽으라고 쓰는 시일까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할매나 할배더러 읽으라고 하는 시는 아니겠지요? 어린이가 푸름이가 읽으라고 하는 시는 아니겠지요? 학교 문턱을 밟지 않은 사람들더러 읽으라고 하는 시는 아니겠지요?
꽃이 핍니다. 꽃길이 열립니다. 꽃내음이 퍼집니다. 꽃송이가 터집니다. 사람이 먹는 밥이란, 벼라고 하는 풀이 맺은 열매인 ‘벼알’인데, 벼알이 맺으려면 벼꽃이 피어야 합니다. 감알을 먹으려 해도 감꽃이 피어야 하고, 포도알을 먹으려 해도 포도꽃이 피어야 합니다. 우리가 먹는 모든 남새와 열매는 꽃이 피고 나서 곱게 진 뒤에라야 얻습니다.
.. 나는 / 아파트에다 / 토담집을 짓는다 // 아파트 사이사이로 / 돌아 나가는 강물이 있어 / 산책길에 / 내 발을 적신다 .. (아파트 꿈)
씨앗과 꽃과 열매입니다. 뿌리와 줄기와 잎입니다. 풀과 나무요, 숲과 들입니다. 하늘과 땅이며, 냇물과 바다이고, 뭍과 섬입니다. 너와 내가 있고,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누구나 알던 이야기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한자나 한문이나 책이 없었어도 누구나 알던 이야기입니다. 먼먼 옛날부터 임금이나 양반이나 사대부나 지식인이나 권력자나 종교지도자나 싸울아비나 이것이나 저것이나 없었어도, 시골에서 흙을 만지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던 이야기입니다.
.. 꽃 터질 때마다 / 울리는 쇠북 소리 // 바람 / 잎가에 서성거리고 // 대낮에도 / 별들이 반짝인다 // 다시 태어나고 싶다 // 이 봄에 / 스며들듯 / 죽고 싶다 .. (부끄러움)
시를 써야 시를 알지 않습니다. 시를 읽어야 시를 알지 않습니다. 삶을 누리면 시를 압니다. 삶을 가꾸면 시를 알아요.
시는 문학에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시는 이론으로 쓰지 않습니다. 시는 비평이나 평론으로 읽지 않으며, 시는 학문도 예술도 문화도 교육도 아닌, 오직 삶입니다. 김지하 님이 빚은 시집 《花開》는 바로 김지하 님 삶입니다.
그러면, 시를 쓴 김지하 님은 어떤 삶을 스스로 가꾸는가요? 시커멓고 까마득하던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무렵에는 옥살이를 하거나 숨어서 살던 대로 시를 썼을 테지요. ‘시체장사꾼’이라는 말을 읊다가 박근혜 대통령을 바라던 엊그제에는 엊그제대로 시를 쓸 테지요. 지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때 받은 쓰라린 생채기를 법원에서 ‘15억 원 국가배상 판결’을 받은 이즈음에는 이즈음대로 시를 쓸 테지요.
.. 돋보기를 써도 / 앞이 부옇다 // 아마 / 데리다는 영영 / 못 읽을 것이다 .. (쉰둘)
김지하 님은 데리다를 안 읽어도 됩니다. 읽고 싶으면 읽어도 됩니다. 스스로 종이책을 펼쳐서 읽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 사람을 불러서 소리내어 읊어 달라 하면 됩니다.
그런데, 왜 데리다를 읽고 싶을까요. 수없이 많은 사람 가운데 왜 데리다일까요. 그리고, 수없이 많은 이웃 가운데 왜 데리다일까요. 수없이 많은 목숨과 숨결 가운데 왜 데리다일까요.
동백꽃을 읽어 보셔요. 사광이풀을 읽어 보셔요. 코딱지나물꽃을 읽어 보셔요. 모과나무를 읽어 보셔요. 모과나무 모과꽃을 읽어 보고, 수세미꽃을 읽어 보셔요. 하늘타리꽃과 여뀌꽃을 읽어 보셔요. 억새꽃과 갈대꽃을 읽어 보셔요. 흙내음을 읽고 바람결을 읽어 보셔요. 우리 곁에 있는 살가운 이웃이 흘리는 눈물을 읽고, 우리 둘레에 있는 사랑스러운 동무가 짓는 웃음을 읽어 보셔요.
.. 병으로 / 오래 외롭다 보니 // 사람이 사람에게 / 한울님인 걸 알겠다 .. (한울)
꽃은 들에서 들꽃입니다. 들꽃은 열매를 맺고 씨앗을 터뜨립니다.
꽃은 사람한테서 사람꽃입니다. 사람은 노래꽃과 웃음꽃과 눈물꽃과 이야기꽃을 낳습니다.
김지하 님이 나아갈 길은 김지하 님이 스스로 가꿀 텐데, 아무쪼록, 말밥을 일으키는 삶길이 아니라, 사랑밥을 나누는 삶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꿈밥을 지어서 노래밥을 이웃하고 오순도순 나누다가, 삶밥 한 그릇 넉넉히 자시기를 바랍니다. 4347.10.11.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시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