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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세티아의 전설 - 멕시코 ㅣ 비룡소 세계의 옛이야기 41
토미 드 파오라 지음, 김경미 옮김 / 비룡소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41
꽃을 사랑하던 시골지기
― 포인세티아의 전설
토미 드 파올라 글·그림
김경미 옮김
비룡소 펴냄, 2007.12.18.
시골 면사무소와 보건소에서 여러 날에 걸쳐 마을방송을 합니다. 마을 할매와 할배더러 ‘거저로 놓아 주니’까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라고 합니다. 마을 할매와 할배는 거리끼지 않고 보건소에 가서 주사를 맞습니다. 거저로 놓는다니까 맞고, 주사를 맞으면 안 아프다니까 맞습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마을마다 가을일이 마무리될 즈음, 시골에 있는 병원에서 마을마다 돌면서 ‘무료 건강검짐’을 해 주고 낮밥 한 끼니까지 대접할 뿐 아니라 병원차로 모셔 갔다가 다시 모셔다 드린다고 신나게 광고를 합니다. 마을 할매와 할배는 마을 어귀로 찾아오는 병원차를 타고 이 병원에서도 검진을 받고 저 병원에서도 검진을 받습니다. 밥 한 끼니를 얻어먹고는 기념품으로 수건 한 장을 받습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플 일이 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제 손으로 씨앗을 심어서 거둔 풀열매와 나무열매를 먹는 시골지기가 아플 일이 왜 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예전에 돌림병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 돌림병은 왜 생겼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쉬 듣는 이야기인데, 시골에 농약과 비료가 들어오기 앞서 아픈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예 없었다고까지 할 만합니다. 잘못 먹을 만한 것이 없던 시골이고, 비닐쓰레기조차 없던 시골입니다. 흙에서 나온 것을 먹는데 몸이 잘못될 수 없습니다. 농약도 비료도 안 쓰고, 비닐을 태우거나 파묻는 일도 없으니, 몸이 뒤틀릴 까닭이 없습니다. 자동차가 없어 배기가스가 없을 뿐 아니라, 아무리 멀다 하는 길도 두 다리로 걸어다니고 지게를 짊어집니다. 아궁이에 불을 때어 밥을 짓고 구들을 달굽니다. 기름을 때지 않습니다. 화학성분으로 된 옷을 입지 않고, 풀줄기에서 얻은 실로 옷을 지어서 입습니다. 참말 아플 까닭이 없습니다.
오늘날 시골은 어디에서나 농약과 비료와 비닐을 듬뿍 씁니다. 항생제도 많이 씁니다. 군청이나 도청에서 싼값으로 파는 ‘유기질’은 항생제와 사료를 먹은 돼지와 소가 눈 똥으로 만드는 ‘화학 거름’입니다. 집집마다 경운기를 몰기에 기름찌꺼기가 논과 밭으로 흘러듭니다. 경운기가 달리면서 매연이 나옵니다. 농약병이 도랑에서 뒹굴고, 비닐을 태우는 냄새가 여기저기 퍼집니다.
.. 루시다는 멕시코의 높은 산간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에 살았어요. 엄마 아빠와 파코와 루페라는 두 동생과 함께요. 아빠는 당나귀 페피토를 데리고 들판에서 일을 했어요. 루시다는 저녁마다 페피토에게 먹이와 깨끗한 물을 주고 마굿간에 새 짚을 넣어 주었지요 .. (5쪽)
예부터 시골은 어디나 꽃골이었습니다. 꽃마을이요 꽃동네이며 꽃숲이었어요. 오늘날 시골은 어디나 꽃골이 아닙니다. 시골에서 시골꽃을 만나기 몹시 어렵습니다. 쑥꽃도 고들빼기꽃도 모조리 베어넘길 뿐입니다. 감꽃이 핀들 감꽃을 올려다보지 않습니다. 깨꽃이나 고추꽃이 한들거려도 눈여겨볼 겨를이 없습니다. 돌울타리를 타고 호박꽃이 피기도 하지만, 쑥부쟁이가 마음껏 자랄 틈바구니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억새와 갈대는 뽑거나 베지 않고 그대로 둡니다. 도시에서 자가용을 타고 시골을 지나는 사람은 억새와 갈대가 한들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곱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참말 이뿐입니다. 이제 한국에서 꽃골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꽃나무도 꽃숲도 거의 모두 사라집니다.
.. 집에 와서 엄마는 털실을 무지갯빛으로 물들였어요. 루시다가 옆에서 도왔지요. 아빠는 루시다와 엄마가 베틀에 털실을 한 가닥씩 끼우는 걸 바라보며 말했어요. “색이 참 곱군. 교회가 환해지겠는걸.” .. (13쪽)
토미 드 파올라 님이 빚은 그림책 《포인세티아의 전설》(비룡소,2007)을 읽습니다. 찬찬히 읽습니다. 멕시코에서 예부터 내려오는 이야기를 담은 이쁘장한 그림책을 곰곰이 읽습니다.
멕시코라는 나라에는 예방주사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깊디깊은 두멧자락에 예방주사가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아마 병원이나 약국도 없겠지요. 편의점이나 술집도 없겠지요. 그러나, 깊은 두멧자락에는 조그맣게 마을이 있고, 사랑스러운 보금자리가 있습니다. 두멧자락 마을에서는 걱정하는 일이 없습니다. 사랑스러운 보금자리에서는 근심하는 일이 없습니다.
누가 아파서 몸져누울까 걱정하지 않습니다. 누가 잘못될까 근심하지 않습니다. 모두 씩씩하게 튼튼하게 삽니다. 저마다 아끼고 돌보면서 살가이 지냅니다. 때때로 몸살이 나거나 고뿔이 들더라도 며칠 뒤면 말끔히 털고 일어납니다. 시골지기한테 찾아드는 몸살이나 고뿔이란, 몸을 너무 많이 부렸으니 며칠쯤 느긋하게 누워서 쉬라는 뜻입니다. 쉬면 낫는 몸살이요 고뿔입니다. 쉬면서 잘 먹고 싱그러운 바람 듬뿍 마시면 누구나 낫는 몸살이고 고뿔입니다.
.. “오, 루시다. 선물은 주는 사람의 마음 때문에 아름다운 거란다. 네가 뭘 가져가든지 아기 예수님은 좋아할 거야. 마음으로 주는 선물이니까.” 루시다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어요. “하지만 전 지금 가져갈 게 아무것도 없어요.” .. (25쪽)
그림책 《포인세티아의 전설》은 멕시코 들꽃 가운데 하나인 ‘포인세티아’와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러니까, ‘꽃 이야기 그림책’입니다. 꽃 한 송이로 마을을 곱게 가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꽃골이 어떻게 태어났고, 사람들 가슴에 꽃마음이 어떻게 뿌리내릴 수 있었는가 하는 대목을 가만히 짚습니다.
어떻게 꽃마음이 자랄까요? 어떻게 꽃골이 될까요? 아주 쉽습니다. 꽃씨를 심으면 돼요. 꽃씨를 심으면서 아름다운 꿈과 사랑을 즐겁게 지으면 돼요. 웃으면서 꿈을 짓고, 노래하면서 사랑을 짓습니다. 함께 어깨동무를 하면서 꿈을 짓고, 서로 손을 맞잡고 춤을 추면서 사랑을 지어요.
멕시코 시골자락에서는 ‘포인세티아’라는 들꽃과 얽혀 아름다운 이야기가 사람들 입에서 입을 거쳐 흐릅니다. 그러면, 한국 시골자락에서는 어떤 들꽃과 얽혀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요? 오늘날 우리들은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한테서 어떤 ‘꽃 이야기’를 들을 수 있나요? 오늘날 시골에서나 도시에서나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이들한테 어떤 ‘꽃골’ 이야기를 물려줄 만한가요?
권정생 님은 민들레 한 송이로 이야기를 지었습니다. 씀바귀꽃이나 냉이꽃이나 봄까지꽃이나 꽃마리꽃과 얽힌 이야기를 누가 지을 만한지, 맨드라미나 갓꽃이나 모과꽃과 얽힌 이야기를 누가 길어올릴 만한지 궁금합니다. 4347.10.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