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 안의 작은 행복 - 삶을 이끄는 누군가 있다는 것 박시백이 그리는 삶과 세상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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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90



오늘을 사는 기쁨

― 둥지 안의 작은 행복

 박시백 글·그림

 휴머니스트 펴냄, 2014.4.7.



  나는 아이를 낳아서 함께 살아갈 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아이를 안 낳으리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내 앞날을 헤아리지 않으면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앞날이 어떠하든 오늘 하루를 제대로 맞이해서 누리자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삶을 가꾸거나 일꿀까요? 아마 아이들 스스로 알는지 모르고 모를는지 모릅니다. 다만, 앞으로 어떤 길을 걷든 오늘 이 아이들은 씩씩하고 즐겁게 놀았습니다. 앞으로 어떤 꿈을 키우든 오늘 이 아이들은 모두 새근새근 잠들었습니다. 나는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기고 이불깃을 여밉니다. 쉬가 마렵다면 함께 일어나서 쉬를 누입니다. 큰아이가 이를 갈면 번쩍 눈을 뜨고는 얼른 손을 뻗어 토닥토닥 다독이면서 이를 그만 갈라고 이릅니다.


  아이들이 듣는 풀벌레 노랫소리는 나도 함께 듣습니다. 내가 듣는 풀벌레 노랫소리는 아이들도 함께 듣습니다. 우리는 조그마한 시골집에서 함께 삽니다. 참으로 조그마한 집입니다. 예전에는 이 작은 집에 여덟 사람이 복닥거리기도 했다는데, 어쩌면 더 많은 아이와 어른이 복닥복닥 와글와글 얼크러지기도 했으리라 느낍니다.





- ‘봄을 맞는다는 건 언제나 새로운 경험이다.’ (13쪽)

- ‘재산은 별로 없지만 큰 부채도 없고 오손도손 모두가 건강한 가족들이 있는 오늘이 좋다.’ (37쪽)



  땀으로 젖고 흙내음이 가득 묻은 옷을 벗깁니다. 따뜻한 물로 씻깁니다. 새 옷을 입힙니다. 아이들이 벗은 옷을 복복 비벼서 빨래합니다. 다 빨아서 헹구고 물을 짠 옷가지를 마당에 넙니다. 햇볕은 언제나 포근하게 내리쬐면서 옷가지를 바싹바싹 말려 줍니다. 바람은 우리 아이들 옷가지에 푸른 숲내음을 실어 날라 줍니다.


  올가을에는 무화과를 이럭저럭 즐깁니다. 지난해 가을에는 까마중을 실컷 즐겼습니다. 지지난해 가을에는 따순 바람을 듬뿍 즐겼고, 겨울부터 피어나는 동백꽃을 반갑게 즐습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뿌리를 내리는 곳에서 자랍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하는 일을 물끄러미 지켜봅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곁에서 말을 익히고 사랑을 속삭이며 꿈을 키웁니다. 어버이가 보는 것을 아이들이 봅니다. 어버이가 만지는 것을 아이들이 만집니다. 어버이가 아끼며 보살피는 것을 아이들이 아끼면서 보살핍니다.


  해가 기울어 어둑살이 내린 시골마을에서 개똥벌레를 곧잘 만납니다. 도시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을 개똥벌레이지만, 요새는 시골에서도 웬만해서는 볼 수 없습니다. 냇바닥을 시멘트로 덮으면 개똥벌레가 살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농약을 뿌려 다슬기가 모조리 죽으면 개똥벌레는 먹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개똥벌레를 만나기를 바라면, 개똥벌레가 나오는 그림책이나 사진책이나 영화를 보여줄 노릇이 아니라, 개똥벌레가 살 만한 마을에 보금자리를 마련할 노릇입니다. 아무렴, 그렇겠지요. 아이들이 착한 꿈을 참답게 키우기를 바란다면, 착한 꿈과 참다운 삶이 흐르는 동화책이나 시집이나 영화를 보여줄 노릇이 아니라, 어버이부터 스스로 착한 꿈을 가꾸고 참다운 삶을 일구면 됩니다. 아무렴, 그렇겠지요.





- “방송이 온통 미국 쪽 정보뿐이니 제대로 판단하기가 힘들잖아.” “이 책을 읽어 봐. 라덴이나 탈레반 쪽에 대한 정보들이 꽤 많아.” “이 책도 미국 측 시각에서 쓰인 책이네 뭐.” “그렇긴 하지만 정보는 풍부하니까 80년대 신문 보던 방법으로 읽으면 쓸 만해.” (75쪽)

- ‘자나 깨나 남편 생각 애들 생각으로 가득한 머리. 이렇게 늙다간 혼자 외톨이가 될 수도 있어. 나 자신에 대한 생각도 설계도 많이 해야 해. 나 자신에 대한 생각? 근데 뭘 생각하지? 아내, 엄마 말고 난 누구지?’ (101쪽)



  우리는 누구나 오늘을 삽니다. 우리는 누구나 오늘 하루를 스스로 지어서 삽니다. 기쁨도 스스로 짓고, 슬픔도 스스로 짓습니다. 아름다움도 스스로 짓고, 미움도 스스로 짓습니다.


  무엇을 짓고 싶은지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뿐 아니라, 이 땅 모든 이웃과 함께 어떤 삶과 사랑과 꿈을 짓고 싶은지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박시백 님이 한참 예전에 그린 만화를 그러모은 《둥지 안의 작은 행복》(휴머니스트,2014)을 읽습니다. 박시백 님은 〈한겨레〉에 만화를 그린 일보다 《조선왕조실록》 스무 권을 만화로 그린 일로 이름을 널리 알렸습니다. 만화로 그린 《조선왕조실록》은 초등학생뿐 아니라 여느 어른한테도 널리 사랑받습니다. 마치 《삼국지》가 많이 팔리고 읽히듯이 만화책 《조선왕조실록》도 불티나게 팔리면서 읽힙니다.





- “할 게 뭐 있어야지.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눈싸움·숨바꼭질·고무줄놀이·땅따먹기, 이런 걸 하며 온종일 보내고, 저녁엔 방구석에 이불 덮고 앉아 수다 떠는 게 고작이었지. 그에 비하면 요즘 니들은 …….” “너무너무 불쌍해. 피아노 학원·수학 학원·영어 학원·한자 공부·학습지·숙제…… 이런 걸로 하루가 다 가잖아.” (187쪽)

- ‘사랑하는 사람끼린 닮아 갑니다.’ (210쪽)



  ‘조선왕조실록’에는 어떤 이야기가 흐를까요? 오백 해를 이었다고 하는 조선 나라 임금님 이야기가 흐르겠지요. 《둥지 안의 작은 행복》이라는 만화책에는 어떤 이야기가 흐를까요? 도시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수수한 여느 이웃들 이야기가 흐르겠지요.


  두 가지 만화책이 우리 앞에 있다면, 오늘날 한국사람은 어느 만화책을 고를까요? 《조선왕조실록》을 고를까요, 《둥지 안의 작은 행복》을 고를까요? 대학입시에서는 어떤 책을 다룰까요? 초·중·고등학교 도서관이나 국공립 여러 도서관에서 만화책을 갖춘다면 어느 책을 장만해서 갖출까요?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책에는 정치와 역사와 사회와 경제 같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학문과 사상과 철학과 문학과 문화 같은 이야기도 흐릅니다. 《둥지 안의 작은 행복》이라는 만화책에는 수수한 여느 이웃이 호호 하하 히히 웃는 조그마한 즐거움이 흐릅니다.


  다만, 학교 교과서에서는 ‘조선왕조실록’ 이야기를 다룰 테지만, 수많은 사람들 조촐한 삶 이야기를 다루지는 않습니다. 집살림 맡은 어버이가 빨래하고 밥하고 청소하고 아기 돌보는 삶을 다루는 교과서는 없습니다. 아기를 낳아 아끼고 사랑하면서 보살피는 삶자락을 묻는 시험문제는 없습니다. 내 보금자리를 아름답게 일구면서 시골에서 흙을 만져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얻으려고 힘쓰는 수수한 시골지기 이야기를 가르치는 학교나 행정이나 문화단체나 인문책은 없습니다.





- “내게 엄마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되어 주고 싶어.” (214쪽)

- ‘자율학습 시간은 말 그대로 자율학습 시간이다. 필요한 정보들이 강물처럼 흐르는!!’ (267쪽)



  박시백 님이 《둥지 안의 작은 행복》이라는 만화책에서 ‘도시 소시민’을 다루었다면, 이 다음으로는 ‘작은 시골지기’를 다룰 수 있었으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도시에서 오순도순 아기자기하게 사랑을 속삭이는 수수한 사람들 이야기를 작은 만화책으로 선보인 뒤에는, 시골에서 씩씩하고 아름답게 사랑을 일구며 숲을 지키는 사람들 이야기를 ‘더 작은’ 만화책으로 선보일 수 있었으면 얼마나 놀라웠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릴 수 있겠지요. 이제 ‘조선왕조실록’ 만화책을 스무 권으로 끝내셨으니, 참말로 작고 수수한 자리로 돌아와서 작고 수수한 이웃과 동무를 살피는 따사롭고 예쁜 만화를 그릴 수 있겠지요. 큰 이야기 아닌 작은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기를 바랍니다. 정치 이야기 아닌 삶 이야기를 그리고, 경제나 역사 이야기 아닌 사랑과 꿈 이야기를 그리며, 지식인과 학자 이야기가 아닌 아이들 이야기를 그리는 만화가 태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10.7.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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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4-10-07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감사히 담아갑니다~~*^^*

숲노래 2014-10-08 07:21   좋아요 0 | URL
저는 신문과 잡지에서 거의 다 오려서 모았기에 새삼스럽지 않았는데,
이와 같은 수수한 만화가 책으로 나오면서
만화를 바라보는 문화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