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책삶 헤아리기
9. 책에 담긴 이야기란


  책에는 이야기를 담습니다. 이야기를 담지 않는 책은 없습니다. 다만, 사람에 따라 이야기를 달리 받아들여요. 어느 책에 담긴 이야기는 나한테 반갑거나 즐거울 수 있고, 다른 어느 책에 담긴 이야기는 나한테 따분하거나 재미없을 수 있어요. 이와 거꾸로, 내가 반갑게 여긴 책을 내 이웃은 재미없다고 여길 수 있어요. 내가 따분하다고 여긴 책을 내 동무는 신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같은 책을 놓고 두 사람은 왜 다르게 받아들일까요? 왜냐하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태어나고, 서로 다른 곳에서 자라며, 서로 다른 곳에서 사랑을 받아 살았어요.

  나는 집에서 집일을 합니다. 집에서는 누구나 ‘집일’을 할 테지요. 그런데, 나는 아버지이자 사내로서 집일을 합니다. 밥도 하고 청소와 빨래도 하며 아이돌보기를 도맡습니다. 다만, 내 둘레에서 아버지나 사내로서 이렇게 집일을 하는 이웃을 아직 만나지 못합니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비슷합니다. 날마다 밥을 차려 아이를 먹이는 아버지는 몇이나 될까요? 아이들이 갓 태어났을 적에 손수 똥오줌 기저귀를 빨아서 햇볕에 말린 뒤 정갈하게 개서 샅에 댄 아버지는 얼마나 있을까요?

  얼마 앞서 이웃집에 나들이를 다녀왔는데, 이웃 어느 집을 가든 아버지나 사내 자리에 있는 사람이 엉덩이를 방바닥에서 떼는 일을 보기란 참 어렵습니다. 거의 모든 집에서 어머니나 가시내 자리에 있는 사람이 두 다리 쉴 틈이 없이 부산스레 움직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어느 자리에 서서 책을 읽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남녀평등을 말하거나 사회불평등을 나무라는 인문책’은 읽되, 집에서 엉덩이는 방바닥에 붙인 채 안 떼는 삶은 아닌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덜떨어지거나 낡은 정치와 사회와 경제를 꾸짖는 인문책’은 읽지만, 집에서 집일은 하나도 안 하거나 거의 안 하거나 겨우 시늉을 하듯 거드는 척하는 삶은 아닌지 되새길 노릇입니다. ‘역사와 문화와 예술을 밝히는 인문책’은 읽으면서도, 집에서 아이와 복닥이고 부대끼며 함께 노는 사람하고는 동떨어진 채 지내는 ‘가부장 권력’은 아닌지 짚을 노릇입니다.

  미국에서 1939년에 처음 나왔고, 한국말로는 1996년에 처음 나온 《마이크 멀리건과 증기 삽차》(버지니아 리 버튼 글·그림, 시공사 펴냄)라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퍽 오래되었다고 할 만한 그림책입니다. 이 그림책을 그린 분은 1909년에 태어나 1968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작은 집 이야기》라는 그림책도 선보였는데, 이 그림책은 부동산이 아닌 보금자리라 할 집 하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뿌리를 내리면서 아름답게 피어나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라는 그림책도 선보였으며, 이 그림책은 오래된 증기기관차가 새로운 길로 나들이를 가면서 겪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생명의 역사》라는 그림책도 선보였고, 이 그림책은 지구별에서 사람이 걸어온 발자국을 서양 문명 눈높이에서 보여줍니다. 아무튼, 버지니아 리 버튼이라는 분은 아이들한테 따스한 삶과 이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그림책을 그렸어요. 누구보다 이녁이 낳아 돌보는 아이한테 따스한 삶을 보여주고 포근한 사랑을 물려주며 살가운 꿈을 북돋우려고 그림책을 그렸습니다.

  “커다란 배가 지나다닐 수 있도록 널따란 운하를 판 이들이 누구겠니? 바로 마이크 멀리건 아저씨와 메리 앤이야. 물론 다른 사람들도 함께 일을 거들었지(5쪽).”와 같은 이야기라든지, “이 위에다 새 시청을 지을 건데 뭐하러 메리 앤을 끌어 내요? 메리 앤은 새 시청에 쓸 난방 기구가 되면 되고, 마이크 멀리건 아저씨는 수위 아저씨가 되면 되잖아요. 그러면 우린 새 난방 기가룰 살 필요도 없고, 아저씨한테 하루 만에 지하 공사를 끝낸 돈도 드릴 수 있어요(39쪽).”와 같은 이야기를 살가운 그림과 함께 읽습니다. 여러모로 멋이 있고 뜻이 있습니다. 새로운 삽차가 나오면서 ‘증기 삽차’는 낡은 것으로 밀리는 사회 흐름을 잘 보여주는 그림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나는 이 그림책이 그닥 재미있지 않습니다. 애틋하고 아름다운 빛과 무늬가 흐르는 그림책인 《마이크 멀리건과 증기 삽차》이지만, 삽차로 숲을 밀어 도시를 만들고, 이 도시에서 다시 더 큰 건물을 짓는 이야기만 흐르니, 도리어 심심하거나 따분하네 하고 느낍니다.

  스웨덴에서 1874년에 태어나 1953년에 숨을 거둔 엘사 베스코브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1912년에 스웨덴에 처음 선보이고, 한국에서는 2002년에 처음 나온 《펠레의 새 옷》(2002년 지양사 옮김,2003년 비룡소 옮김)이라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자그마치 백 해가 넘는 그림책입니다. 이 그림책을 보면, 글이 아주 짤막하게 한두 줄만 나오면서 시원하게 큼지막한 그림이 하나씩 나옵니다. 짤막하게 넣은 글은 “펠레는 할머니의 당근밭에서 잡초를 뽑았습니다. 그동안 할머니는 펠레의 양털을 빗어서 솜처럼 부풀렸습니다(8쪽).”라든지 “펠레는 할머니의 암소를 돌보고, 할머니는 양털을 물레로 자아 실을 뽑았습니다(12쪽).”라든지 “펠레는 어머니한테 갔습니다. ‘어머니, 이 실로 옷감을 짜 주세요.’ ‘그러구 말구. 그동안 네 여동생을 돌보아 주겠니?’ 펠레가 여동생을 보살피는 동안, 어머니는 베틀에 앉아 옷감을 짰습니다(20쪽).”라든지 “그리고 일요일 아침, 펠레는 새 옷을 입고 아기 양을 찾아갔습니다. ‘아기 양아, 고맙다. 너의 털로 새 옷을 지을 수 있었어.’ ‘음매애-애-애.’(28쪽)”와 같이 흐릅니다. 백 살이 넘은 스웨덴 그림책에 나오는 어린 펠레는 옷 한 벌을 얻고 싶어서 퍽 오랫동안 ‘일’을 하고 ‘심부름’을 합니다. 그러고는 기다리지요. 그리고 손수 물을 들입니다. 나이로 치면 아마 열 살 즈음 되었지 싶은데, 이 아이는 온갖 일을 거들거나 스스로 한 끝에 새 옷을 얻어요.

  그림책 《펠레의 새 옷》에 나오는 아이는 옷을 돈으로 사지 않습니다. 이 아이는 돈이 없기도 할 테지만, 돈을 벌거나 쓰지도 않습니다. 이 아이와 이웃에 있는 사람들도 이 아이한테서 돈을 받지 않습니다. 서로 품을 팔아요. 이른바 품앗이라고도 할 만합니다.

  오래된 그림책 두 가지인데, 하나는 도시와 문명과 사회를 보여줍니다. 다른 하나는 시골과 삶과 사랑을 보여줍니다. 어느 쪽이 더 낫거나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도시보다 시골이 끌리고, 문명보다 삶이 반가우며, 사회보다 사랑이 즐겁습니다.

  책에는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 있습니다. 도시나 문명이나 사회를 책에 담았다고 해서 나쁠 까닭이 없습니다. 도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얼마든지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엮을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시골 이야기를 다루지만 정작 안 사랑스럽거나 안 아름다울 수도 있어요.

  책에 담는 이야기란, 책을 짓는 사람이 스스로 가꾸는 삶입니다. 미국에서 그림책을 그린 버지니아 리 버튼이라는 분은 이분 나름대로 아이와 함께 지내면서 물려주고 싶은 사랑을 그림책에 담습니다. 스웨덴에서 그림책을 그린 엘사 베스코브 님은 이분 나름대로 아이와 함께 살면서 물려주고 싶은 사랑을 그림책에 실었습니다.

  책을 짓는 사람뿐 아니라 책을 읽는 사람도, 책 한 권을 앞에 놓고 삶을 생각하거나 그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책 한 권에서 감도는 사랑과 꿈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10.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푸른 책과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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