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56. 같이 걷는 길에서



  하늘이 새파랗게 열린 날에는 새파란 하늘빛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나서 사진기를 들면 내 사진에 새파란 하늘빛이 고스란히 스며듭니다. 구름이 잔뜩 낀 날에는 잔뜩 낀 구름을 가만히 바라보고 나서 사진기를 들면 내 사진에 구름빛이 하나하나 젖어듭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빗소리를 조용히 듣고 나서 사진기를 들면 내 사진에 빗소리가 넌지시 물결을 치듯 노래하면서 감겨듭니다.


  무엇을 찍고 싶은가요? 찍고 싶은 무엇을 생각해 봅니다. 찍고 싶은 어느 한 가지를 생각했다면, 이 한 가지하고 나란히 길을 걷습니다. 같이 길을 걸어가면서 바라봅니다. 같이 길을 걸어가면서 생각합니다. 같이 길을 걸어가면서 사랑을 속삭입니다.


  사진은 언제 어떻게 우리한테 찾아올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진은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한테 찾아오기 때문에, 언제 어디에서나 기쁘게 맞아들이면 됩니다.


  어느 날에는 열 시간 즈음 기다려서 사진 한 장 얻습니다. 어느 날에는 1초마다 재미나고 예쁜 사진을 얻습니다. 어느 날에는 딱히 사진을 얻지 못하면서 지나가는데, 열흘이나 보름 만에, 또는 석 달이나 세 해 만에 마음을 사로잡는 사진을 얻습니다.


  1분에 사진 한 장 얻어서 더 기쁘지 않습니다. 10분에 사진 한 장 얻어서 덜 기쁘지 않습니다. 마음을 사로잡는 사진을 얻으면 언제나 기쁩니다. 사진을 얻기까지 천천히 기다리는 나날이 기쁩니다. 사진을 얻고 나서 온누리를 새삼스레 돌아보는 나날이 기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을 찍기에 기쁘고 따로 사진을 찍지 않으면서 기쁩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노래를 부르기에 기쁘고 따로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서 기쁩니다. 왜냐하면, 언제 어디에서나 기쁘기 때문입니다. 기쁜 사람은 이러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밥을 지어 아이한테 차려 주거나, 곱게 바느질을 해서 뜨개옷을 선물하거나, 언제나 스스럼없이 홀가분합니다.


  먼저 이 길을 같이 걸어요. 같이 걸으면서 마음에 아름답게 그림을 그려요. 그림을 기쁘게 그리고 나서, 이 아름다운 그림을 사진 한 장으로 옮겨요.


  사진기만 들 적에는 사진을 찍지 못해요. 찍고 싶은 모습을 마음으로 환하게 그리고 난 뒤라야 비로소 사진을 찍어요. 아름답게 살고 싶은 하루를 마음으로 그려야 날마다 아침을 새롭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사랑을 품는 사람이 사랑을 속삭일 수 있습니다. 4347.10.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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