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투데이 2014.10
월간 해피투데이 편집부 엮음 / 혜인식품(월간지)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책읽기 삶읽기 173



깜짝 놀란 재미난 잡지

― 해피투데이 2014.10. (50호)

 혜인식품 펴냄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을 읽고서 서울에서 고흥으로 찾아온 손님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사진책도서관을 둘러보며 그 책을 쓴 바탕을 헤아리고 싶다고 합니다. 먼길을 마다 않고 찾아오는 손님은 반갑습니다. 왜냐하면, 멀다고 해 본들 그리 멀지 않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멀다고 느낀다면 마음이 멀기 때문에 멀 뿐입니다. 마음이 가까울 적에는 언제 어디에 있어도 언제나 한마음입니다. 몇 해 만에 얼굴을 보아도 언제나처럼 반가운 사람이 있고, 자주 부대끼거나 날마다 스치더라도 안 반가운 사람이 있습니다. 서로 마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행작가로 일하는 박상준 님이 기차와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서 고흥으로 찾아옵니다. 고흥에서 살며 돌아보면, 다른 고장에서 고흥으로 오기란 참 힘든 노릇입니다. 거꾸로 보면, 고흥에서 다른 고장으로 가는 길도 참 힘듭니다. 섬이 아닌 뭍 가운데 이렇게 오가기 힘든 곳은 고흥이 으뜸이리라 느낍니다. 기찻길도 고속도로도 없는 꼭 하나뿐인 고장이니까요.


  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으나, 어릴 적부터 시골살이를 마음에 담으며 자랐습니다. 언젠가 시골로 갈 줄 알았습니다. 언제 갈는지 몰라도 도시에서 내 삶을 더 이을 수는 없다고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내 몸이 그리 단단하지 않아 도시에서 버틸 재주가 없었어요. 곁님도 곁님이지만 ‘군면제를 받을 만큼 안 좋은 코(그러나 줄을 잘못 서서 군면제는 못 받은)’로는 도시에서 숨을 쉬기도 아주 힘들었어요.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이라는 책은 열 살 어린이가 스스로 읽어서 스스로 말을 깨닫도록 도우려고 썼습니다. 그래서 어느 어른(어버이나 교사)한테는 아주 쉬울 수 있고, 한국말을 깊이 살피지 않는 어른이라면 너무 어렵거나 뜬금없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아무튼, 나는 이 책을 시골에서 아이들과 살면서 썼습니다. 시골에서 사는 동안 ‘모든 말과 삶은 시골에서 태어났다’는 대목을 깨달았기에, 이러한 이야기를 이웃과 나누고 아이들한테 들려주려고 이런 책을 썼어요.


  〈해피투데이〉라는 잡지에 ‘시골에서 사는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를 쓴다는 박상준 님이 이 책을 알아보았다고 하니 여러모로 반갑습니다. 아무래도 ‘시골 이야기’를 찾는 마음이기에 내 책을 만날 수 있었구나 싶고, 무엇보다 잡지에 ‘시골사람 이야기’를 쓰려는 마음이 예쁩니다.


  그런데, 〈해피투데이〉라는 잡지를 펴낸 곳 이름은 ‘혜인식품’입니다. 무슨 식품회사에서 잡지를 내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살피니, 곳곳에 ‘네네치킨’ 광고가 나옵니다. 튀김닭집에서 잡지를 크게 밀어주려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간기를 보고는 깜짝 놀랍니다. 이 잡지는 튀김닭집을 하는 식품회사에서 돈을 대어 내는 얼거리입니다.


  튀김닭을 팔아서 버는 돈으로 잡지를 만드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재미있습니다. 어여쁜 모습입니다. 즐겁게 벌어서 즐겁게 쓸 줄 아는 마음이 있구나 싶습니다.


  다달이 내놓는 잡지 하나 만드는 돈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손꼽히는 연예인을 불러서 광고 한 번 찍은 뒤 방송에 내보내는 돈보다 훨씬 적게 듭니다. 아니, 방송광고를 한 번만 안 해도 한 해 동안 이러한 잡지를 펴낼 수 있습니다.


  〈해피투데이〉 2014년 10월치에 실린 황안나 님 이야기를 읽습니다. 황안나 님이 두 다리로 뚜벅뚜벅 걸어다닌 이야기를 ‘샨티’라는 출판사에서 2005년에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이름을 붙여 선보인 적 있습니다. 어느덧 열 해가 흐릅니다. 잡지에 실린 황안나 님 얼굴에 주름이 더 많이 보이는데, 낯빛이나 몸빛은 외려 열 해 앞서보다 단출하고 정갈해 보입니다. 그동안 참 많이 걷고 조용히 생각하며 삶을 돌아보셨겠구나 싶습니다.


  110쪽 안팎 되는 조그마한 잡지에 실은 글과 사진은 튀거나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조용하고 수수합니다. 서울 누하동에 있던 헌책방 〈대오서점〉 사진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이제 〈대오서점〉은 헌책방이 아닌 ‘헌책방 자국을 살린 북카페’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잘되었습니다. 〈대오서점〉은 그야말로 소리도 소문도 없이 사라지겠다 싶은 헌책방이었습니다. 참말 아무도 이 작은 헌책방을 들여다보지 않던 때, 아마 2002년인가 2001년이지 싶은데, 그무렵에 서울 시내 골목에 조용히 깃든 헌책방을 찾으려고 날마다 서너 시간, 때로는 예닐곱 시간을 걸어다니며 지냈습니다. 이러면서 〈대오서점〉을 보았고, 이 이야기를 어느 누리신문에 썼는데, 이때부터 다른 매체에서 이곳을 꾸준하게 취재했어요. 조용히 지내던 헌책방 할머님을 아주 귀찮게 하고 만 셈인데, 할머니는 늘 서글서글 여러 취재 손님을 맞아 주신 듯합니다. 예전에는 이곳을 아끼거나 돌아보는 사람이 드물었지만, 이제는 이곳을 찾아가는 사람이 많으니, 앞으로도 긋곳에 잘 있으리라 믿습니다.



.. 재료에 따라 변화무쌍해지는 맛! 김밥은 완벽한 동그라미다. ‘평생 한 가지 음식만 먹는다면 뭘 먹을 거야’라는 어려운 질문에 망설임없이 감밥을 떠올린 것은 아마 가장 가까이서 큰 위로를 주는 음식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  (83쪽/최진영)



  마음을 살찌우는 밥이 언제나 가장 맛있으리라 느낍니다. 나한테도 저렇게 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니까 ‘한 가지만 먹어야 한다면 무엇을 먹겠어요?’ 하고 묻는다면, 나는 빙그레 웃으며 한 마디 할 생각입니다.


  “나는 바람을 먹겠어요.” 또는 “나는 햇볕을 먹겠어요.” 지구별에서 산다면 바람을 먹고, 우주에서 산다면 햇볕을 먹으면서 살고 싶습니다. 작은 잡지를 살그마니 덮습니다. 재미있습니다. 4347.9.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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