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여덟 1
타케모토 유지 지음, 고현진 옮김 / 시공사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84



재미있는 만화와 씁쓸한 만화

― 여덟 1

 타케모토 유지 글·그림

 고현진 옮김

 시공사 펴냄, 2013.7.15.



  타케모토 유지 님이 빚은 만화책 《여덟》(시공사,2013) 첫째 권을 읽습니다. 이 만화책은 ‘재미있는’ 만화라는 이름이 붙기도 합니다. 어떤 만화일 때에 ‘재미있는’ 만화가 될는지 궁금한테, 《여덟》을 찬찬히 읽으니, 이 만화책은 ‘재미있는’ 만화라기보다 ‘사회 풍자’ 만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이든 한국이든 사회가 엇나가거나 엉뚱하거나 어설프기 때문에, 이렇게 엇나가거나 엉뚱하거나 어설픈 사회를 살며시 비꼬면서 웃음을 자아내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여덟》이라고 할 만해요. 스스로 재미있게 살면서 웃음이 쏟아지는 만화가 아니라, 뒤틀린 사회를 다시 뒤틀어 보여주면서 씁쓸하게 웃도록 이끄는 만화라 한다면 ‘사회 풍자’라고 느낍니다.



- “우와, 엄마. 이게 인간 전자레인지구나!” “응, 이게 음식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인간 전자레인지야.” (5쪽)

- “바로 그거야! 이유는 그거라고! 어째서 내 이름만 그렇게 이상한 거냐고!” “왜 이상하다고 생각해? 엄마는 좋기만 한걸.” “그럼 엄마가 나랑 이름 바꿀래?” (40∼41쪽)




  만화책 《여덟》 첫째 권 첫머리에는 ‘마음이 따뜻하지 않은 사람’이 들어가서 ‘마음이 따뜻해진 뒤 나오는’ 전자레인지가 나옵니다. 놀랍지요. 사람은 이런 기계를 따로 만들어서 써야 할 만큼 마음이 차갑다는 뜻이니까요.


  그런데, 전자레인지가 어떤 기계인지 안다면 느낄 테지만, 전자레인지로 따스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하더라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얼마 뒤에 다시 식습니다. 게다가, 같은 밥을 자꾸 전자레인지로 돌리면 맛이 없어지지요. 식었다고 해서 자꾸 전자레인지로 돌릴 수 없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마음을 따뜻하게 덥히는 전자레인지’는 1회용품입니다. 밑바탕을 고치거나 바꾸지 못합니다. 겉모습만 살짝 한동안 가려 줄 뿐입니다.


  우리 사회를 생각해 봐요. 우리 사회에서 ‘감정노동’을 하는 사람이 아주 많아요. 마음을 숨겨야 합니다. 거짓스러운 마음을 앞에 내세워야 합니다. 참다운 마음이 자리잡을 곳이 없습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라, 돈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마음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닦달합니다.



- ‘바보처럼 완고하고, 바보처럼 멋있다. 나는 그런 그들이 정말 좋다. 잠깐, 나는 지킬 수 있을까. 자신의 생명이 위험에 빠졌을 때, 모든 것을 던지며 프라이드를 지킬 용기가 나에게 과연 있을까?’ (47쪽)

- “그대들은 대체 어쩔 셈인가?” “나는 유카리를 행복하게 해 줄 거다.” “응?” “앞으로는 열심히 일해서 돈도 많이 모을 거야. 그래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할게.” (79쪽)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사람다울까요? 자존심을 지키면 사람다울까요? 자존심은 지키면서 사랑은 못 지킨다면 어떠한가요? 자존심은 지키지만, 평화와 꿈을 지키지 못한다면 어떠한가요?


  지구별 모든 나라에 있는 전쟁무기는 무엇을 지킬까 궁금합니다. 지구별 모든 나라에서 갖춘 전쟁무기는 참말 그 나라에 평화를 지켜 줄까요? 전쟁무기가 있기 때문에 자꾸 전쟁이 터지고 폭력이 불거지면서 평등과 평화가 짓밟히지 않나요?


  전쟁무기가 있기 때문에 쳐들어갑니다. 전쟁무기가 있기 때문에 서로 괴롭히거나 죽입니다. 전쟁무기가 있기 때문에 전쟁무기 만들고 건사하느라 엄청난 돈을 쏟아붓습니다. 전쟁무기 때문에 사람들이 배를 곯고, 전쟁무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프며 슬픕니다.



- ‘나는 출연자가 아니더냐. 왜 시청률까지 신경 써야 하는 거냐고. 그래, 우리는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 그런데 TV 앞에서는 빵조각이나 씹어대면서 희희낙락 시청하는 녀석들이 있다. 시청률은 개뿔! 까불지 말라고.’ (100쪽)

- “그런데, 할아버지.” “뭐냐?” “그 말이에요, 하느님이.” “또 뭐야? 하느님이 어떻다고? 어서 말해 봐!” “부, 분명히, 모두의 마음속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왠지 눈물이 났다.’ (141∼142쪽)





  하느님이 우리 마음속에 있다는 생각은 참이라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러한 참을 참으로 느끼지 못하기에 마음이 가난하거나 야위지 싶습니다. 내 마음에도 네 마음에도, 그러니까 우리 모두 마음속에 하느님이 있으면, 서로서로 아주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숨결이라는 뜻입니다. 서로서로 아끼고 돌보면서 삶을 가꿀 때에 즐겁다는 뜻입니다.


  내가 너를 밟고 올라설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너한테 이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깨동무를 할 때에 즐겁습니다. 우리는 두레와 품앗이로 서로 돕고 아낄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예배당이 늘어나고 커지지만, 지구별에 평화와 사랑과 꿈이 퍼지지는 못합니다. 커다란 예배당은 더욱더 커지지만, 정작 지구별에 아름다운 숨결과 사랑스러운 노래가 퍼지지는 못합니다. 예배당이 커지면 커질수록 ‘아직 예배당 신도가 아닌 사람’을 예배당에 데려가려는 움직임만 커집니다.


  종교란 무엇일까요. 사회란 무엇일까요. 정치와 교육이란 무엇일까요. 모두 제자리를 잃고 어지럽게 헤매지 않나요. 그러니, 이런 사회를 살며시 비꼬는 만화가 나올밖에 없으리라 느낍니다. 이 사회에서 즐겁게 웃을 일이 없기 때문에, 이 사회를 비꼬는 웃음밖에 얻을 길이 없구나 싶습니다. 가만히 보면, 《여덟》이라는 작품은 ‘재미있는’ 만화책이 아니라 ‘씁쓸하고 슬픈’ 만화책이지 싶습니다. 4347.9.28.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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