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504) 아래 4
그 당시, 우리 민족은 일본의 지배 아래서 식민지의 서러움을 당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김별아-김순남》(사계절,1994) 12쪽
일본의 지배 아래서
→ 일본한테 지배를 받으며
→ 일본한테 짓눌리며(억눌리며/짓밟히며)
→ 일본한테 눌리며(밟히며)
…
“지배 下에”라 안 하고 “지배 아래서”라 적으니 한결 낫지 않습니다. 일본사람이 쓰는 말투에서 한자 ‘下’만 ‘아래’로 고친다 한들 얄궂은 말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한국사람이 쓸 알맞고 바른 말투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지배 아래서”가 아니라 “지배를 받으며”입니다.
한자말 ‘지배(支配)하다’는 ‘다스리다’를 뜻합니다. 이 보기글은 “일본이 다스리는 식민지”처럼 고쳐써야 올바릅니다. 그런데, 글흐름을 살피면, 식민지라는 곳에서 우리 겨레가 서러움을 겪으면서 산다고 나와요. 서럽게 살아야 하는 식민지라 할 때에는 “일본이 다스리는 식민지”로 적을 때보다는 “일본한테 짓눌리는 식민지”나 “일본한테 짓밟히는 식민지”로 적을 때에 느낌이 제대로 살아나지 싶습니다. 4339.2.13.달/4347.9.2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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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무렵, 우리 겨레는 일본한테 짓눌리는 식민지가 되어 서러움을 겪으며 살았습니다
“그 당시(當時)”는 “그무렵”이나 “그때”로 손보고, ‘민족(民族)’은 ‘겨레’로 손보며, “식민지의 서러움을 당(當)하며”는 “식민지라는 서러움을 겪으며”나 “식민지가 되어 서럽게”로 손봅니다. “살고 있었습니다”는 “살았습니다”로 손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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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도 익혀야지
(511) 아래 5
우리 어린이 지도자들은 그 자세가 진지하고 참으로 순수한 종교적 열의로써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어린이 법회의 바른 모델을 정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헬무트 클라르/각묵 스님 옮김-어린이들에게 불교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고요한소리,1989) 39쪽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 어려운 여건에서도
→ 어려운 터전에서도
→ 어려운데에도
→ 어렵지만
…
“주어진 조건”을 뜻하는 한자말 ‘여건(與件)’을 살려서 “어려운 여건에서도”처럼 적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주어진 조건”이란 ‘터전’을 가리킵니다. “어려운 터전에서도”로 손볼 만합니다.
적잖은 사람들은 이런 자리에 “여건 하에”뿐 아니라 “여건 속에”처럼 쓰기도 합니다. “여건인 가운데”처럼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모두 알맞지 않습니다. 한자말 ‘여건’을 한국말 ‘터전’으로 바로잡았어도 “어려운 터전 아래”라든지 “어려운 터전 속”이라든지 “어려운 터전 가운데”처럼 적어도 알맞지 않아요. 낱말 하나하나는 알맞으나 말투가 올바르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영어로는 “in Seoul”일 텐데, 이를 한국말로 옮기면 “서울 안에서”가 아닌 “서울에서”로 적어야 올바릅니다. ‘안’도 한국말이지만, “서울 안에서”라 적으면 한국 말투가 아니에요. 4339.2.28.불/4347.9.2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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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린이 지도자들은 어려운 터전에서도 몸가짐이 차분하고 종교를 맑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린이 법회를 바르게 세우려고 힘쓰고
“그 자세(姿勢)가 진지(眞摯)하고”는 “몸가짐이 차분하고”나 “매무새가 참되고”로 손질하고, “순수(純粹)한 종교적(-的) 열의(熱意)로써”는 “종교를 맑게 사랑하는 마음으로”나 “종교를 사랑하는 깨끗한 마음으로”로 손질합니다. “바른 모델(model)을 정립(正立/定立)하기 위(爲)해”에서 ‘正立’이라는 한자말을 썼다면 ‘바른’이라는 앞말과 겹칩니다. ‘定立’이라는 한자말로 썼더라도 ‘세우다’로 다듬어야 알맞습니다. 이 대목은 “바른 틀을 세우고자”나 “바른 길을 찾고자”나 “바른 모습을 지키고자”로 다듬습니다. “노력(努力)하고 있고”는 “애쓰고”나 “힘쓰고”로 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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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도 익혀야지
(1004) 아래 14
엄마랑 장을 보러 나왔다가 가로수 그늘 아래서 잠깐 쉬어 가기로 했어
《김순한·정승희-푸릇파릇 가로수를 심어 봐》(대교북스주니어,2010) 25쪽
가로수 그늘 아래서
→ 가로수 그늘에서
→ 가로수 그늘 밑에서
→ 가로수 밑에서
→ 가로수 밑 그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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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사전을 보면 ‘밑’을 “물체의 아래나 아래쪽”으로 풀이합니다. 여러모로 엉뚱합니다. ‘아래’는 “어떤 기준보다 낮은 위치”로 풀이합니다. 이런 뜻풀이로만 보면 ‘밑’과 ‘아래’는 똑같은 낱말로 여길밖에 없습니다. 한국말사전은 두 낱말을 이렇게 다루기만 할 뿐입니다. 두 낱말을 어떻게 갈라서 다른 자리에 써야 알맞는가 하는 대목을 못 밝히거나 안 밝히곤 합니다.
‘밑’은 바닥과 가까운 자리를 가리킵니다. ‘아래’는 ‘위’와 맞물려서 씁니다. “그 집 아래”라 하면, 땅속을 가리키지요. ‘아래층·위층’처럼 ‘아래’와 ‘위’라는 낱말은 어느 집에서 한 층 높거나 낮은 자리를 가리킵니다. 그러니, 이 보기글에 나오듯이 “가로수 그늘 아래”처럼 쓸 수 없습니다. 그늘에서 아래란 어디일까요? 그늘에서 위란 어디일까요? 그늘을 위와 아래로 가를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그늘에서 위와 아래를 가른다 하더라도, “그늘 아래”라면 땅속을 가리킵니다.
사람들이 널리 부르는 대중노래 가운데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이라는 이름이 붙은 작품이 있습니다. 이 대중노래는 이름을 잘못 붙였습니다. 노래를 지은 사람이나 부르는 사람이나 엉뚱한 말을 쓰고 말았습니다. 이 노래를 듣는 사람도 엉뚱한 말을 따라서 쓰고 맙니다.
대중노래도 문학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니, 문학이라 할 대중노래가 사람들한테 엉뚱한 말을 가르치는 셈입니다. 노래만 좋대서 다 좋은 일이 아니라, 노래가 좋으려면 가락뿐 아니라 노랫말도 좋으면서 알맞고 올발라야 합니다. 아이들이 부를 노래도 이와 같아요. 아이들은 노래만 부르지 않고 말을 배웁니다. 어린이 노래에 붙이는 노랫말을 아무렇게나 붙일 수 없겠지요.
그늘은 “그늘 밑”이라고 적어야 합니다. 보기글에서는 “가로수 밑”이나 “가로수 밑 그늘”이나 “가로수 그늘”이라고 적을 수 있습니다. 4347.9.2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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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 장을 보러 나왔다가 가로수 그늘에서 잠깐 쉬어 가기로 했어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