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814) 보다 1


보다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현명하고 인도적인 경제 및 사회 정책에 의해 인구가 안정되는 것이다

《레스터 브라운/이상훈 옮김-맬서스를 넘어서》(따님,2000) 24쪽


 보다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 더 바람직한 그림은

→ 더욱 바람직한 그림은

→ 한결 바람직한 그림은

 …



  ‘보다’는 토씨입니다. “네가 나보다 빠르구나”라든지 “내가 너보다 크구나”라든지 “우리가 너희보다 세구나”처럼 쓰는 ‘보다’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보다’를 토씨가 아닌 어찌씨로 엉뚱하게 쓰는 일이 퍽 잦습니다. 왜 이런 엉터리 말투가 퍼지는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더니, 국립국어원에서 엮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다’가 올림말로 나옵니다. 게다가 북녘에서 펴내는 《조선말 대사전》에까지 ‘보다’를 어찌씨로 다루어 올림말로 싣습니다.


 [보다] 어떤 수준에 비하여 한층 더. 

  - 보다 높게 / 보다 빠르게 뛰다 / 그것은 서로 보다 나아지려는


  제가 떠올리기로는 1988년에 한국에서 올림픽을 치른다면서 한창 법석을 떨 무렵에 ‘보다’를 엉터리로 쓰는 말투가 확 퍼졌지 싶습니다. 1986년에 아시안대회를 열 때에도 이 ‘보다’라는 엉터리 말투가 엄청나게 쓰였어요. 그무렵 국민학교 어귀에 “보다 빠르게 보다 높이 보다 힘차게” 같은 글월을 나무판에 큼직하게 써서 붙이곤 했습니다. 과자 봉지에도 이런 글월이 찍혀서 나왔고, 방송 풀그림에도 이런 글월이 끝없이 되풀이되었어요.


 보다 높게 → 더 높게

 보다 빠르게 → 더 빠르게

 보다 나아지려는 → 더 나아지려는


  한국말 어찌씨는 ‘더’입니다. ‘보다’는 토씨입니다. ‘더’라는 낱말 말고도 ‘더욱’이 있으며, ‘더더욱’이나 ‘더욱더’ 같은 낱말도 있습니다. 군사독재를 내세운 정치권력이 엉터리 말투를 퍼뜨려서 우리 눈과 귀를 홀리려 했어도, 우리들은 언제나 슬기롭고 아름다운 넋을 튼튼하게 지키면서, 우리가 쓰는 말과 글도 슬기롭고 아름답게 가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37.7.31.흙/4347.9.26.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더 바람직한 그림은, 슬기롭고 아름다운 경제·사회 정책으로 인구가 제자리를 잡는 길이다


‘시나리오(scenario)’는 ‘그림’으로 손질하고, ‘현명(賢明)하고’는 ‘슬기롭고’로 손질하며, ‘인도적(人道的)인’은 ‘아름다운’이나 ‘따스한’으로 손질합니다. “경제 및 사회 정책에 의(依)해”는 “경제와 사회 정책으로”나 “경제·사회 정책으로”로 손봅니다. “안정(安定)되는 것이다”는 “제자리를 찾는 길이다”나 “제자리를 잡는 길이다”로 다듬습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534) 보다 2


이러한 살인적인 저임금과 말할 수조차 없이 나쁜 근로조건을 개선해, 보다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자 하는 몇몇 사람들의 움직임이

《편집부 엮음-뛰는 맥박도 뜨거운 피도》(미래사,1985) 17쪽


 보다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자

→ 좀더 사람답게 대접을 받고자

→ 조금이나마 사람답게 대접을 받고자

→ 그나마 사람답게 대접을 받고자

→ 얼마라도 사람답게 대접을 받고자

 …



  사람답게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일터에서 사람답게 대접을 받으려고 애쓴다면, “더 사람답게 대접을 받고자”라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사람답게 대접을 받고자”로 적어야 뜻이 또렷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나마’나 ‘얼마라도’를 넣을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나 ‘이제라도’나 ‘앞으로’를 넣어도 어울립니다.


  터무니없는 일터에서 터무니없는 일삯으로 힘들던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는 보기글입니다.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보다’라는 말투를 썼을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만, 방송이나 라디오에서 흐르는 잘못된 말씨에 천천히 길들거나 물들면, 누구라도 ‘보다’ 같은 말투를 잘못 쓸 수밖에 없으리라 느낍니다. 4339.4.1.흙/4347.9.26.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이렇게 끔찍히 낮은 일삯과 말할 수조차 없이 나쁜 일터를 고쳐서, 조금이나마 사람답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몇몇 사람들 움직임이


“살인적(殺人的)인 저임금(低賃金)”이라면, 사람을 죽일듯이 낮은 일삯이라는 뜻입니다. “끔찍히 낮은 일삯”이나 “터무니없이 낮은 일삯”이나 “너무 보잘것없는 일삯”으로 다듬습니다. ‘근로조건(勤勞條件)’ 같은 낱말은 그대로 두어야 할는지 모르나, ‘일터’로 손볼 수 있습니다. ‘개선(改善)해’는 ‘고쳐’나 ‘바로잡아’로 다듬고, ‘인간(人間)다운’은 ‘사람다운’이나 ‘사람답게’로 다듬으며, “몇몇 사람들의 움직임”은 “몇몇 사람들 움직임”으로 다듬습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697) 보다 3


생활교육은 보다 근본적으로 인간해방의 교육인 것이다

《야나기 히사오/임상희 옮김-교육사상사》(백산서당,1985) 22쪽


 보다 근본적으로 인간해방의 교육

→ 한결 뿌리깊이 사람을 살리는 교육

→ 속속들이 사람을 살리는 교육

→ 무엇보다도 사람을 살리는 교육

→ 모름지기 사람을 살리는 교육

 …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먼저 생각해 봅니다. 삶을 가르치는 일이란 무엇이 될는지 가만히 생각을 기울입니다. 어른이 되어 아이한테 이것저것 가르치는 일이 아닌, 어른과 아이가 함께 배우고 가르치면서 꾸리는 삶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가르침과 배움은 지식 물려주기가 아닙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삶이란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삶입니다. 그러니, ‘삶 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어른과 아이가 즐겁게 어우러진다면, 이때에는 모름지기 사람이 스스로 살아나는 교육이라고 할 만합니다.


  어찌씨로 잘못 쓰는 ‘보다’를 생각합니다. 군사독재 정치권력이 갑작스레 엉터리 말투를 널리 퍼뜨리기도 했지만, 일본책으로 학문을 익힌 지식인이 일본책을 한국말로 옮길 적에 ‘보다’를 아주 많이 끌어들였습니다. 지식 사회에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일본 한자말과 함께 일본 말투에 젖어들었고, 여느 자리에서 방송을 많이 본 사람들은 엉터리 정치권력이 퍼뜨리는 엉터리 말투에 스며들었어요. 정작 한국말은 제자리를 못 찾고 참으로 오랫동안 헤매거나 길을 잃습니다. 4340.2.9.쇠/4347.9.26.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삶 교육은 모름지기 사람살리기 교육이다


‘생활(生活)교육’은 ‘삶 교육’으로 손보고, ‘근본적(根本的)으로’는 ‘뿌리깊은’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인간해방’에서 ‘인간(人間)’은 ‘사람’으로 고쳐야 할 텐데, ‘해방(解放)’은 그대로 둘 수 있을 테지만, 생각을 찬찬히 넓혀 “사람살리기”처럼 새롭게 풀어내어 적을 수 있습니다. “교육인 것이다”는 “교육이다”로 손질합니다.


..


 우리 말도 익혀야지

 (1003) 보다 4


첫 장에서 나오는 인물은 명백하게 우리 아버지이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 한 남자의 인생을 넘어서는 보다 더 큰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폴 오스터/심혜경 옮김-글쓰기를 말하다》(인간사랑,2014) 66쪽


 보다 더 큰 것을 이야기하고

→ 더 큰 것을 이야기하고

→ 더 큰 이야기를 하고

→ 훨씬 더 큰 이야기를 하고

 …



  보기글을 잘 보면 알 수 있는데, “보다 더”처럼 쓰는 일은 그야말로 얄궂습니다. ‘보다’만 덜면 될 노릇입니다. 아니 ‘보다’를 넣을 까닭이 없습니다. “큰 것”을 힘주어 말하려고 “더 큰 것”으로 적는데, 이 앞에 ‘보다’를 왜 붙여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군더더기 겹말로 적어야 할 만한 까닭이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알맞고 바르게 가다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9.26.쇠.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첫 장에서 나오는 사람은 틀림없이 우리 아버지이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한 사내 삶을 넘어서는 훨씬 더 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인물(人物)’은 ‘사람’으로 다듬고, ‘명백(明白)하게’는 ‘틀림없이’나 ‘바로’로 다듬습니다.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結局)”이라 나오는데, ‘결국’은 ‘마무리’나 ‘마지막’을 뜻합니다. 겹말입니다. “한 남자(男子)의 인생(人生)”은 “한 사내 삶”으로 손보고, “큰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는 “큰 이야기를 합니다”나 “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로 손봅니다.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