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이 돋지 못하는 곳은



  시외버스를 부산에서 순천으로 달렸고, 순천에서 다시 고흥으로 달린다. 벌교읍을 지날 무렵, 할매 여럿이 어떤 공원인지 시설 어귀에 있는 큰돌 둘레에 난 풀을 뽑는 모습을 본다. 풀이 그리 높게 자라지 않았는데, 아니 이 가을에 새로 돋은 풀이라고 해 보았자 발목 높이밖에 안 되는데, 참으로 알뜰히 풀을 복복 뽑는다.


  사람들이 잘 알아야 하는데, 숲에서 풀을 뽑는 사람은 없다. 멧길을 오르내리는 사람은 알 텐데, 멧길에 풀이 돋지 않으면 사람들이 디디는 발걸음에도 흙이 쓸려서 길이 무너진다. 풀이 없으면 멧자락이 무너진다. 풀이 없기 때문에 ‘산사태’가 일어난다. 풀이 없으니 비만 오면 흙이 모조리 쓸린다.


  풀이 없는 곳은 ‘사막’이다. 풀이 없는 흙땅을 걸어 보라. 이를테면, 학교 운동장 같은 데를 걸어 보라. 얼마나 더운가. 얼마나 고단한가. 얼마나 지치는가. 이와 달리 풀밭길을 걸어 보라. 잔디밭길을 걸어 보라. 땡볕이어도 풀밭길을 거닐면 그다지 덥지 않다. 잔디밭에 앉거나 누우면 시원할 뿐 아니라 싱그러운 바람이 분다.


  공을 차는 사람들이 풀 없는 맨흙땅에서 뛴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덥고 힘든가. 맨흙땅에서 넘어지면 무릎에 까지고 피가 난다. 잔디밭으로 잘 가꾼 곳에서 공을 차면 넘어져도 폭신하다. 웬만해서는 긁히지도 않고 피도 안 난다. 공을 차는 곳, 그러니까 축구장에 그토록 풀이 잘 돋도록 보살피는 모습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왜 축구장에만 풀이 돋게 하는지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걸어다니는 모든 길은 풀밭길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딱딱한 시멘트돌을 때려박는 짓은 멈추고 모든 거님길을 풀밭길로 바꾸어야 한다.


  잘 생각해 보라. 도시에서도 거님길이 시멘트돌 아닌 풀밭이 되도록 한다면, ‘보도블록 까뒤집는 바보짓’에 더는 돈을 안 쓴다. 게다가, 풀밭길로 거님길을 가꾸면, 이곳을 풀밭길로 가꾸는 일꾼을 둘 수 있다. ‘보도블록 까뒤집는 바보짓’은 돈을 헤프게 흘려 버리는 못난 짓이지만, 거님길이 흙땅에 풀이 알맞게 잘 자라게끔 돌본다면, 돈이 한 푼도 안 든다. 게다가, 풀밭길이 될 거님길로 가꾸려 하면, 일자리를 만들 수 있지. 풀밭거님길을 걷는 사람은 언제나 즐겁고, 아이들은 마음껏 뛰놀 수 있다. 넘어져도 안 다치지. 게다가, 풀밭거님길이 되면 언제나 푸른 바람이 불 테니, 바람맛까지 좋다.


  자전거길도 아스콘을 깔기보다는 풀밭이 되도록 하면 한결 낫다. 자전거길을 아스콘으로 까니까, 자전거꾼이 이 자전거길에서 너무 무시무시하게 마구 달린다. 자전거길이 그야말로 자전거길이 되도록 하려면, 어른도 어린이도 느긋하게 자전거를 즐기면서 타고 다니도록 하자면, 자전거길에서도 아스콘을 몽땅 걷고 풀밭길로 가꿀 때에 싱그러우면서 아름답다.


  잔디밭을 자전거로 달린 적 있는 사람은 알 테지. 잔디밭을 자전거로 달릴 적에 얼마나 즐겁고 가슴 가득 기쁨이 샘솟는지 알 테지. 마을 골목도 아스팔트 아닌 풀밭찻길로 바꾼다면, 골목에서 마구 내달리는 자동차가 사라지리라 느낀다. 그리고, 자동차가 오가지 않을 적에는 마을 골목에서 아이들이 다시 놀 수 있으리라.


  그러니까, 우리가 마을을 살리고 숲을 살리며 지구별을 살리는 길은 바로 하나이다. 풀부터 제대로 바라보고 아낄 수 있어야 한다. 풀은 따로 씨앗을 뿌리거나 심지 않아도 된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지켜보면 된다. 그러면 풀씨가 날아와 어느새 자란다. 마을 골목이라면 마을사람이 틈틈이 풀을 보듬으면 된다.


  풀이 돋아야 우리 모두 푸르게 숨을 쉬고 푸르게 생각꽃을 피울 수 있다. 4347.9.2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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