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왜? - 우리 동식물 이름에 담긴 뜻과 어휘 변천사
이주희 지음 / 자연과생태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84



풀이름을 읽는다

― 내 이름은 왜?

 이주희 글

 자연과생태 펴냄, 2011.7.20.



  시골에서 사는 분들은 시골일을 합니다. 시골일은 으레 흙을 만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시골사람이 하는 일이란 흙일이라 할 만합니다. 시골사람은 시골을 지키니 시골지기라 할 수 있고, 시골지기는 흙을 만지는 일을 하면서 흙을 보살피거나 지키니까 흙지기라 할 수 있습니다.


  흙은 어떻게 지킬 수 있는가 하고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울타리를 세우면 흙을 지킬까요? 울타리를 높게 쌓아서 빗물에 흘러넘치거나 쓸리지 않게 하면 흙을 지킬까요?


  오늘날 시골을 보면 어디에서나 농약을 엄청나게 씁니다. 오늘날 시골을 살피면 어디에서나 비료를 가볍게 많이 씁니다. ‘유기질’이라는 이름을 붙인 거름을 흙에 뿌리는 시골이 차츰 늘어나는데, 정부에서 돈을 들여 마련해서 시골 흙지기한테 나누어 주는, 아니 싼값에 파는 ‘유기질은 무엇일는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돼지나 소를 키우는 곳에서 거둔 돼지똥이나 소똥일까요? 돼지똥이나 소똥이라면, 돼지나 소는 무엇을 먹고 어떤 똥을 눌까요? 아마 사료를 먹고 사료내음 가득한 똥을 누겠지요. 항생제를 먹고 나서 항생제 기운이 가득한 똥을 누겠지요.


  이제는 풀 먹는 소가 거의 없습니다. 이제 시골에서는 풀을 먹고 자라는 소가 매우 드뭅니다. 왜냐하면, 이제 시골에서는 풀이 몹시 드물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 풀밭 찾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시골에 풀밭이 있으면, 누군가 풀밭에 농약을 뿌립니다. 농약으로 풀을 태워 죽입니다.



.. 함경도 지방에서는 황새를 한새라고 하며, 한새봉이나 한새골처럼 지명에 한새가 들어간 곳도 모두 황새와 관련 있다 … 누런색을 제외한 다른 색깔 한우가 사라지게 된 것은 1920년대 말부터 일제가 우리 소를 누런색으로 통일하려는 운동을 펼치면서다 … 박쥐가 복을 상징하기 때문에 우리 나라 전통 공예품이나 가구 및 건축 장식에 박쥐 문양이 많이 들어간다 ..  (15, 18, 184쪽)



  농약 머금은 풀이라면 돼지나 소한테 먹일 수 없습니다. 농약 머금은 풀을 먹다가는 돼지도 소도 아프거나 죽겠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농약 듬뿍 쳐서 키운 쌀과 남새를 먹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먹는 능금이나 배나 포도나 복숭아나 딸기 따위에 농약을 얼마나 많이 치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퍽 드뭅니다.


  도시에서는 학교급식을 합니다. 학교급식은 거의 한국쌀을 씁니다. 그러면, 학교에서 급식으로 먹이는 쌀은, 한국쌀은 얼마나 깨끗할까요? 우리는 급식이라는 제도를 마련한 뒤, 아이들한테 ‘농약쌀’을 마구 먹이지는 않나 궁금합니다.


  게다가, 시골에서 흙에 뿌리는 유기질은 싱그러운 거름이 아니기 일쑤입니다. 화학약품 가윽한 사료를 먹고 자라는 돼지나 소가 눈 똥으로 만든 유기질을 흙에 뿌리니, 농약을 한 방울조차 안 썼다 하더라도, 무엇을 믿어야 할는지 아리송할 뿐입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수천만에 이르는 사람을 먹여살릴 만한 ‘정갈하고 아름다우며 착한’ 곡식이나 남새나 열매는 거의 없다고 할 만합니다. 이 나라 오천만 사람을 먹여살리는 곡식과 남새와 열매는 그예 농약덩어리요, 화학약품덩어리입니다.



.. 우리 나라는 스스로 생물을 조사하고 분류학적으로 정리한 역사가 짧다. 그래서 생물학의 후발주자인 우리 학자들이 우리 나라 생물 이름을 지을 때 어쩔 수 없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학명이나 이미 다른 나라 학자들이 붙인 이름을 많이 참조했다 … 멧토끼는 우리 나라 고유종으로 한반도 전역에 분포한다. 남한 지역에서는 멧토끼만 볼 수 있다. 그래서 예전부터 토끼라고 하면 멧토끼를 일컫는 것이다. 멧토끼가 생물학적인 정식 우리 말 이름이기는 하지만, 민간에서는 산토끼라고 더 많이 부른다. 실제로 많은 종류의 국어사전에는 멧토끼라는 말은 없고 산토끼라는 말만 있다 ..  (25, 166쪽)



  이주희 님이 쓴 《내 이름은 왜?》(자연과생태,2011)라는 책을 읽습니다. 풀이름, 나무이름, 벌레이름, 새이름, 짐승이름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이주희 님은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이 나라 ‘이웃님’ 이름을 하나씩 살펴봅니다.


  그렇습니다. 이웃님입니다. 멧토끼도 이웃님이고, 고라니와 고니도 이웃님입니다. 해오라기도 이웃님이요, 박쥐도 이웃님이에요. 도룡뇽도 지렁이도 이웃님입니다.


  예부터 한겨레는 까치가 우는 소리를 듣고는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는 뜻으로 여겼습니다. 까치가 우는 소리를 그냥 소리가 아닌 아름답고 즐거운 노래로 받아들였어요.


  예부터 한겨레는 제비가 봄에 찾아올 적에 몹시 반겼습니다. 제비집을 허무는 짓이란 아주 나쁜 짓이라고 여겼습니다. 제비집에서 제비똥이 쏟아질라치면 똥받이를 달았어요. 한집을 이루는 제비를 우리와 같은 님이요 이웃이요 동무로 삼으면서 언제나 즐겁게 마주했습니다.



.. 해는 태양에서 유래해 희다는 뜻을 갖게 되었으며, 그렇게 본다면 해오라기는 ‘흰 오리 같은 새’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 예전 사람은 고니보다 백조란 말을 더 많이 썼다. 지금도 생물에 관심 없는 많은 사람에게는 백조란 이름이 더 익숙하다. 그런데, 이미 잘 알려졌듯 백조는 일본인이 만든 한자어다 … 오랜 언어 순화 노력에도 별자리 중에 백조자리를 ‘고니자리’라고,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고니의 호수’라고 고치자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  (45, 198∼199쪽)



  학자가 이런 이름이나 저런 이름을 붙이기 앞서, 모든 이웃님한테는 이름이 있습니다. 학자는 모르겠지요. 고장마다 우리 이웃님을 어떤 이름으로 불렀는지 잘 모르겠지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아야 하는 아주 작은 것이라면 모르되, 우리 곁에 있는 나무나 풀이나 꽃이나 벌레나 짐승이나 새라면, 아주 마땅히 어느 고장에서든 이 이웃님을 가리키는 이름이 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 학자로 일한 이들은 이웃님 이름을 살피거나 알아보려고 그리 나서지 않았습니다. 일본 학자가 붙인 이름을 슬그머니 따랐습니다. 얼토당토않다 싶은 이름을 학자 마음대로 붙이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자가 이 나라 마을과 고을에 엉뚱한 한자 이름을 마구 붙였듯이, 이 나라 학자는 이 나라 이웃님한테 터무니없는 이름을 붙이기 일쑤였어요.



.. 고려 시대에 이르러 잦은 전란과 사회적 혼란을 겪으면서 새로 건물을 짓거나 축대를 쌓는 데 많은 목재가 필요했다. 급기야 고려 말에 이르러서는 목재로 쓸 만한 곧게 자란 느티나무를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어쩔 수 없이 느티나무를 대체할 목재로 소나무를 선택한 것이다 … 고라니는 우리 나라와 중국 동북부 지역에만 사는데, 중국에서는 심각한 멸종위기에 놓여 법으로 엄격히 보호하고 있다. 눈에 많이 띈다고 흔하다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며, 실제로 흔하더라도 지금처럼 인간의 간섭으로 심각하게 왜곡된 자연생태계에서 어떤 계기로 일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  (76, 178쪽)



  마늘은 왜 ‘마늘’일까요? 박은 왜 ‘박’일까요? 흙은 왜 ‘흙’일까요? 나무는 왜 ‘나무’일까요? 아마 어느 누구도 말밑을 못 알아내리라 생각합니다. 누가 맨 처음에 이런 이름을 지었는지 알 길이 없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고장마다 고을마다 마을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서로 엇비슷한 이름을 썼어요. 옛날에는 인터넷도 자동차도 학교도 없는데, 다 다른 고장에서 태어나서 그 고장을 떠날 일이 없는데, 풀이건 짐승이건 벌레이건 나무이건, 고장이나 마을마다 사뭇 비슷하거나 아예 똑같기까지 한 이름을 썼습니다.


  풀이름을 읽습니다. 미나리를 읽고 쑥을 읽고 냉이를 읽고 꽃다지를 읽습니다. 흙을 만지며 숲을 사랑한 우리 옛사람이 저마다 어떤 사랑을 품고 어떤 꿈을 키우면서 이런 이름을 즐겁게 지어서 썼을까 하고 가만히 되뇝니다.


  이웃님한테 이름을 붙여서 부른 옛사람이라면, 이웃님을 해코지하거나 괴롭히는 일이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은 시골에서 사는 사람이 아주 드물고, 흙을 만지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이웃님과 가까이에서 만나면서 살갑게 어울려 지내는 사람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이웃님이 아니니, 이름을 제대로 모르고, 이름을 제대로 모르는 이웃님이니, 그저 경제개발과 막공사를 일삼습니다.


  풀이름을 읽어요. 우리 함께 풀이름을 읽어요. 목소리에 사랑을 실어 풀이름을 읽어요. 즐겁게 노래하고, 아름답게 춤추어요. 삶을 노래하고, 하루를 누려요. 4347.9.2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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