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사진이 되다 (사진책도서관 2014.9.14.)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
나는 사진책도서관을 꾸리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이기도 하고, 사진을 말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처음 사진책도서관을 연 인천에서는 인천 골목동네를 사진으로 담았는데, 그때가 2007∼2010년이다 보니, 2014년인 올해에 돌아보더라도 다섯 해가 더 지났다. 2007년에 찍은 사진은 몇 해 있으면 벌써 열 해나 묵은 사진이 된다. 우리 집 큰아이가 올해에 일곱 살이니 그럴 만하구나 싶으면서도, 마음 한켠이 싸하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 집과 도서관이 인천에 있을 적에 찍은 꽤 많은 사진은, 이제 사진으로만 남은 모습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내가 아주 안 반가운 일은 오직 하나이다. 사진으로 찍은 모습이 사진으로만 남을 때에 참으로 안 반갑다.
나는 ‘기록’을 하려고 사진을 찍지 않는다. 나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다. 내가 도서관일기를 쓰거나 육아일기를 쓰는 까닭은, 그때그때 ‘기록’할 마음이 아니라, 그때그때 새로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살며 그곳 골목동네를 찍은 까닭은, 인천에 있는 이웃뿐 아니라 다른 고장 이웃한테도 ‘우리가 저마다 뿌리를 내려 사는 마을 이야기’를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마주하면서 즐거운 하루를 밝히자는 뜻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인천에서 그곳 골목을 찍으면서 한 가지를 더 느끼기도 했다. 인천이든 서울이든 부산이든 골목을 찍는 사람이 꽤 많다. 그런데 거의 모든 이들은 ‘나중에 기록이 될 모습’을 생각하면서 찍는다. 그래서 이런 이들이 찍는 사진은 언제나 ‘기록’이기는 하되 아무런 이야기가 깃들지 않는다. 골목에서 아이들이 뛰놀면서 웃는 모습을 찍더라도 그저 ‘기록’일 뿐 어떤 이야기도 깃들지 않는다.
이야기란 무엇인가? 이야기란 살내음이다. 이야기란 무엇인가? 이야기란 삶이다. 이야기란 무엇인가? 이야기란 사랑노래이다. 사진에 어떻게 살내음과 삶과 사랑노래를 담느냐 하고 묻는다면, 부디 사진기를 고이 내려놓기를 바란다. 글에 어떻게 살내음과 삶과 사랑노래를 담느냐 하고 묻겠다면, 부디 연필을 얌전히 내려놓기를 바란다. 노래를 부르건 춤을 추건 그림을 그리건 언제나 똑같다. 스스로 즐겁게 걸어가는 길에 ‘살내음·삶·사랑노래’를 살포시 담아서 들려주거나 나눌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따사롭다. 이 세 가지가 없이 어떻게 ‘사진’이나 ‘글’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나는 보도사진으로 사진을 배웠지만 보도사진이 썩 내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문이나 매체에 싣는 보도사진은 거의 다 살내음도 삶도 사랑노래도 없이 ‘특종’과 ‘놀라운 것’과 ‘짜릿한 것’에 휘둘리는구나 하고 느꼈기 때문이다. 다큐사진도 보도사진하고 거의 비슷하다. 다큐사진에 살내음이나 삶이나 사랑노래를 싣는 사진가는 몇이나 있을까?
다큐사진은 기록이 아니다. 보도사진도 기록이 아니다. 모든 사진은 기록이 아니다. 패션사진이나 상업사진이라 하더라도 장삿속이나 돈벌이가 아니다. 어떤 갈래에 들어가는 사진이라 하더라도 모두 ‘살내음·삶·사랑노래’을 밝혀서 보여주지 못한다면 ‘사진’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잘 생각해 보라. 글이라고 해서 모두 글이라고 하지 않는다. 자기계발책을 ‘글’이라고 여길 사람은 없다. 신문기사를 ‘글’이라고 여길 사람도 없다. 대통령 담화문 따위를 누가 ‘글’이라고 하는가? 공문서나 대학 논문을 누가 ‘글’이라고 하는가? 모양새로는 글이라 하더라도 글답지 않으면 글이 아니다. 그러니까, 사진기를 써서 사진 모양새로 만들더라도 사진답지 않으면 사진이 아니다. 이 대목을 제대로 못 읽고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 아주 많다.
내가 인천에서 사진책도서관을 처음 열면서 인천 골목동네 사진을 찍으며 배우고 즐거웠던 한 가지를 꼽자면, 바로 이런 대목이리라. 나 스스로 골목동네 사진을 찍는 동안 ‘사진 아닌 헛짓’을 하는 사람을 많이 만났고, 많이 느꼈으며, 많이 알아챘다. 이를 바탕으로 다른 곳에서도 ‘삶 아닌 헛짓’을 하거나 ‘사랑 아닌 헛놀이’에 휘말리는 사람을 자주 보았다. 그리고, 우리 집에 아이가 하나 태어나고 둘 태어나면서, 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동안 ‘삶을 삶대로’ 누리고 ‘사랑을 사랑대로’ 가꾸는 길이, 나 스스로 아름다우면서 즐거운 하루가 되는구나 하고 배웠다. 아이들과 도서관에 와서 놀듯이 이래저래 손질한다. 여러 해 묵은 골목 사진을 곳곳에 걸어 본다. 가슴이 찡하다. 살짝 눈물이 났다.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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