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나's 도쿄놀이
배두나 글.사진 / 스테이지팩토리(테이스트팩토리)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찾아 읽는 사진책 190



놀 때에 즐겁게 사진

― 두나's 도쿄놀이

 배두나 글·사진

 테이스트팩토리 펴냄, 2007.8.13.



  배우 배두나 님은 2006년에 《두나's 런던놀이》를 선보이고, 2007년에 《두나's 도쿄놀이》를 선보이며, 2008년에 《두나's 서울놀이》를 선보입니다. 그러고는 더는 ‘두나놀이’를 잇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배우로 뛰느라 바쁜 탓이지 싶습니다. 어쩌면 너무 바쁘거나 다른 놀이를 찾았기에 ‘사진놀이’는 그만두었을 수 있습니다.


  배두나 님은 도쿄라는 곳을 “결정적으로 실망한 건 우리가 사는 서울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이었다. 수박 겉핥기식 여행의 배고픔과 목마름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그렇지만 도쿄는 참 희한한 곳이다. 그때는 도쿄 여행을 고생만 하고 재미없는 여행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돌아와서는 문득문득 생각나고, 또 가 보고 싶어졌다(13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도쿄와 서울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만합니다. 왜냐하면, 도쿄는 미국에 있는 도시를 흉내내어 커진 곳이요, 한국은 미국과 일본에 있는 도시를 흉내내어 커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서울에서 나고 자란 배두나 님이 보기에 도쿄에서 새롭거나 재미난 모습을 남다르게 찾기란 어려울 수 있어요.


  그러면, 배두나 님은 서울을 얼마나 잘 알까 궁금합니다. 서울이라는 곳을 얼마나 속속들이 알거나 읽을까 궁금합니다.






  마땅한 소리이지만,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속속들이 헤아리거나 살피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알려고 하면 다 알 수 있으나, 모두 알려고 하는 사람은 퍽 드뭅니다. 요즈음은 여러모로 울타리가 높아서, 다 알려고 해도 알기 어렵기도 하며, 굳이 알아야 할까 싶은 대목이 있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굳게 잠겨 그곳 사람이 아니면 문을 안 열어 주는 커다란 아파트가 있습니다. 아파트 어귀부터 못 들어갑니다. 이회창이라는 분은 예전에 대통령 후보로 나올 무렵 가회동 어느 빌라에서 살았다고 했는데, 이녁은 ‘월세 2000만 원’짜리 ‘가난한 서민’이었다고 밝힌 적이 있어요. 같은 서울이지만, 누군가한테는 2000만 원이 전세 보증금이고, 누군가한테는 2000만 원이 월세입니다. 그리고 누군가한테는 2000만 원이 아무것도 아닌 돈이 되고, 누군가한테는 2000만 원이 그림떡일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부잣집 빌라나 아파트 둘레에 얼씬하지 못합니다. 같은 서울이지만 다 알 수 없어요. 그런데, 부잣집 빌라나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가난한 골목동네로 찾아갈 일이 없어요. 골목을 골골샅샅 두루 두 다리로 거닐면서 헤아리는 부잣집 사람은 찾아볼 일이 없습니다. 더욱이, 조그마한 골목집에 이웃이나 동무로 찾아가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즐겁게 노는 부잣집 사람은 몇이나 될까 잘 모르겠어요.


  어느 쪽이 좋고, 어느 쪽이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삶에는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 사진에는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 누군가는 서울을 사진으로 찍을 적에 청담동이나 압구정동을 잔뜩 찍을 만해요. 누군가는 서울을 사진으로 찍을 적에 골목이웃 살림집에서 호젓하게 노는 삶을 신나게 찍을 만해요.




  서울에서 자동차와 찻길만 잔뜩 찍는 사람이 있을 테고, 서울에서도 텃밭을 일구고 마당을 손질하며 나무를 보듬고 골목꽃을 사랑하는 손길을 신나게 찍는 사람이 있을 테지요.


  배두나 님은 “누군가는 ‘저녁 한 끼를 먹으러 일본 가는 두나’라고 빈정댔지만, 난 고단한 내 친구에게 밥 한 끼 먹이러 일본까지 날아간 내가 기특할 때도 있다(24쪽).” 하고 말합니다. 삶은, 남 눈치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가든 자전거를 타고 이웃집에 가든, 삶은 모두 같습니다. 내가 손수 차린 밥을 함께 먹든, 전화를 걸어 튀김탉을 시켜서 같이 먹든, 밥은 모두 같습니다. 함께 먹는 마음을 살필 노릇입니다.


  그런데, 배두나 님은 아직 ‘남 눈길’에서 홀가분하지 못합니다. 도쿄여행이나 이웃집 골목마실이나 무엇이 다르겠어요. 속내와 마음은 같아요. 사랑과 꿈은 같아요. 그러니, “사실 이날은 모든 것이 감격 그 자체였다. 우리가 길거리 한복판에서 껴안고 있는데도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도 감격이었고, 손을 잡고 시부야  이곳저곳을 거닌 것도 그랬다(61쪽).”와 같은 이야기는 살짝 서글픕니다. 참말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아무것도 아닌 일에서 즐겁게 웃다가 살짝 눈물이 날 만한 배두나 님 삶입니다.

  사람들이 알아보면 어떻고 안 알아보면 어떠한가요.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찍고 싶은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이쁘장하게 나오도록 찍기에 사진을 잘 찍는다고 하지 않습니다. 멋들어져 보이도록 찍기에 사진을 잘 찍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배두나 님이 선보인 《런던놀이》는 살짝 풋풋한 기운이 감돌지만, 아직 겉치레가 많이 끼었습니다. 《서울놀이》는 이녁이 나고 자란 서울에서 스스로 즐겁게 누린 삶을 보여줄 만했는데, 막상 서울내기로서 느긋하면서 호젓하게 서울을 누린 즐거움을 제대로 담지 못했습니다. 《도쿄놀이》는 풋풋함이 모두 가신 채 다른 사람들이 찍은 ‘그림 같은 느낌’을 적잖이 흉내낸 사진이 엿보이면서, 틈틈이 배두나 님 나름대로 ‘노는 삶’을 조금 실어서 보여줍니다.






  사진은 찍을 뿐 아니라 읽으니, 아무래도 ‘사진을 볼 사람’을 아예 생각 안 할 수 없다고 할 테지만, ‘사진찍기’를 ‘사진놀이’로 즐기려 했다면, ‘사진을 찍은 사람’ 마음이 더 드러나도록 사진을 찍고, 고르고, 살펴서, 책 하나로 엮으면 더 재미있고 아기자기했으리라 느껴요.


  “살인적인 요금 탓에 택시는 아예 탈 엄두도 못 내고, 지하철을 갈아타면서 도쿄의 거리를 뚜벅뚜벅 걸어다녔다. 하루 종일 걷다 보면 다리는 무척 피곤했지만, 덕분에 사진은 많이 찍은 것 같다. 특히 지하철에서는 제법 재미있는 광경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주머니 속에 커다란 아사히 맥주를 넣고 신문을 보고 있는 아저씨가 너무 귀엽게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실례를 무릅쓰고 ‘찰칵’ 셔터를 눌렀다(200쪽).” 하고 이야기하면서 보여주는 사진은, 《도쿄놀이》에 실은 사진 가운데, 남 눈치를 안 보고 찍은 몇 안 되는 사진들이고, 바로 배두나 님 마음과 사랑과 삶을 살포시 드러낸 몇 안 되는 사진들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진을 더 실었으면, 이렇게 스스로 찬찬히 더 오래 걸어다니면서 사진놀이를 누렸다면, 《도쿄놀이》가 한결 멋스러우면서 살가우며 재미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런던놀이》과 《서울놀이》에서는 이런 대목이 제대로 안 담기거나 못 담겼다고 할 만합니다.


  배두나 님 집에는 사진책이 얼마나 있을까요? “사진집 섹션은 내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서 구경하는 곳이라 마지막에 둘러본다. 사랑해 마지않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집 중에 혹시 소장하고 있지 않은 책이 없나를 확인한 후, ‘절대 없음’에 뿌듯해 하며 구석구석을 뒤졌다. 그중에서 눈에 띈 책이 있었으니, 데이비드 해밀턴의 사진집. 그의 사진집 몇 권을 꽤 오랜 시간 감상한 후, 책 가격에 긴장하여 딱 한 권만 골랐다. 덤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진가 셀리 만의 사진집도 한 권 샀다. 그러고 나니 나는 언제 울적했느냐는 듯 반짝반짝 행복해졌다(222쪽).” 하고 이야기하는 대목이 사랑스럽습니다. 다만, 브레송이나 셀리 사진책도 아름답기는 한데, 일본마실을 갔으면, 일본 사진책을 더 살펴서 장만해도 되리라 느껴요. 아니, 일본에는 한국에 알려지지 못했으나 놀랍고 대단하며 아름답게 사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아주 많아요. 그런 사진책들 이야기, 그러니까 한국에서 사진비평을 하는 사람들이 건드리지 못하거나 안 건드린 ‘예쁜 일본 사진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면 그야말로 ‘두나놀이’답게 빛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두나가 일본에서 처음 만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일본 사진가’ 이야기를 살며시 곁들일 때에, ‘사진놀이’를 지켜보면서 함께 놀자고 생각하는 우리 사진이웃한테 맛깔스러운 선물 하나를 건네줄 수 있겠지요.


  놀 때에 즐겁게 사진입니다. 놀기에 즐겁게 사진입니다. 아무쪼록 앞으로 즐겁게 놀 수 있기를 바라요. 그리고 ‘서울놀이’나 ‘도쿄놀이’처럼 뭉뚱거리는 사진에서 한 발짝 나아가, ‘시골놀이’나 ‘숲놀이’나 ‘바다놀이’, 또는 ‘전주놀이’나 ‘강릉놀이’, 또는 ‘서울 어느 한 곳 놀이’도 기쁘게 누리시기를 빕니다. 4347.9.19.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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