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눕다 경계에 서다 고려인 - 한금선 사진집
한금선 지음 / 봄날의책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85



바람에 누워도 일어나는 풀꽃

― 바람에 눕다 경계에 서다 고려인

 한금선 사진

 봄날의책 펴냄, 2014.8.19.



  풀을 베거나 뽑으면 한동안 땅바닥에 풀빛이 없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풀은 이내 돋습니다. 새로운 풀씨가 싹을 트고, 새로운 풀줄기가 오르면서 새로운 풀잎이 천천히 퍼집니다. 나뭇가지를 베면 처음에는 민둥민둥 앙상하지만 이윽고 새로운 줄기가 뿅 나옵니다. 아주 가늘고 작은 가지가 하나둘 나오고, 어느새 제법 굵게 자랍니다.


  다치거나 긁히거나 베인 자리에서 피가 나옵니다. 아야 아프네 하고 들여다봅니다. 다치거나 긁히거나 베인 자리에서 끝없이 피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어느 만큼 피가 나온 뒤 천천히 아뭅니다. 천천히 아문 뒤 딱지가 지고, 딱지가 떨어질 무렵 새로운 살이 돋습니다.


  풀은 그야말로 꾸준하게 자랍니다. 김을 매는 사람으로서는 풀이 그악스럽다 여길 만한데, 소한테 풀을 뜯기는 사람이라면 꾸준하게 자라는 풀이 고맙습니다. 풀을 뜯어서 먹는 사람한테도 풀은 고마운 밥입니다. 뜯어도 뜯어도 새로 나기 때문입니다. 상추도 부추도 고들빼기도 쑥도, 뜯으면 뜯을수록 새로 돋아서 그야말로 자꾸자꾸 새로 먹을 수 있습니다.


  오이도 토마토도 호박도 똑같아요. 따고 다시 딸 수 있습니다. 꾸준하게 새로 자라기 때문입니다. 딸기도 늦봄과 이른여름 사이에 꾸준히 새로 딸 수 있어요. 새로 꽃이 피고 지면서 새로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문득 사람살이를 떠올립니다. 사람은 어떠한가요. 사람은 새로 자라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새로 자라지 않는 사람인가요. 사람은 날마다 꾸준히 자라는 사람인가요, 아니면 어느덧 제자리에서 멈추면서 자랄 줄 모르는 사람인가요.





.. 물론 인터뷰 중에는 촬영을 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분들과 시선을 맞춘 채 얼굴을 맞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가 끝나면 내가 찍을 차례인데, 그때는 살아온 역사와 사연을 말하는 동안의 감정 기복이라든가 표정이 그들의 얼굴에서 모두 사라진 뒤였다. 맞바라보는 동안 자연스레 시선이 배경을 이룬 벽으로 확장되었는데, 아까의 눈빛은 나올 수 없지만 뒤에 다닥다닥 걸린 가족사진이라든가 카펫을 두른 벽 등이 그들이 하는 이야기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  (218쪽)



  한금선 님이 찍은 사진으로 엮은 《바람에 눕다 경계에 서다 고려인》(봄날의책 펴냄,2014)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한금선 님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고려인’ 취재를 나섭니다. 촬영기를 가진 사람과 취재를 하는 사람이 언제나 앞에 섭니다. 사진기를 가진 사람은 언제나 뒤에 섭니다. 촬영기를 돌리거나 취재를 하려고 이야기를 묻는 사람이 ‘일하는’ 동안에 사진기를 쥔 사람은 뒤에 서거나 밖에 나가야 합니다.


  사진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요. 사진가는 뒤에서 부스러기를 줍는 사람일까요. 사진가는 찰칵 소리를 내어 촬영을 가로막는 헤살꾼일까요. 사진가는 취재하려고 무언가 묻는 사람 눈길을 흐리거나 흐트리는 걸림돌일까요.


  가만히 따져 봅니다. 촬영기를 돌리는데 옆에서 자꾸 찰칵찰칵 소리를 내면 거슬립니다. 딴 소리가 스미니까요. 취재를 하려고 묻는 사람 옆에서 자꾸 취재원 눈길을 빼앗으면 골이 날 만합니다. 취재를 하려는 사람은 취재원이 저한테 온마음을 쏟기를 바라니까요.


  그래요. 사진가는 외롭습니다. 사진가는 외로워야 합니다. 아니지요. 외로워야 하는 사진가는 아닙니다. 혼자 움직여야 하는 사진가일 뿐입니다. 혼자 움직이되, 홀가분할 수 있어야 하는 사진가입니다. 홀가분하게 움직이되 즐겁게 춤추고 노래할 수 있어야 하는 사진가입니다.






  생각해 보셔요. 촬영기를 돌리는 사람은 빙글빙글 춤을 추지 못합니다. 사진기를 쥔 사람은 빙글빙글 춤을 추듯이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촬영기는 세발이에 앉혀서 안 흔들리도록 해야 할 테지만, 사진기는 걸음걸이에 맞추어 함께 움직이면서 ‘어느 한때’를 사랑스레 담을 수 있습니다. 취재를 하려고 묻는 사람은 말씨 하나에 온힘을 기울여야 하는데,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양말이나 손가락이나 신발이나 마룻바닥이나 접시나 양탄자나 주름살이나 안경이나 거리낄 일이 없습니다. 무엇이든 꼭 한 가지만 살그마니 떼어서 찍을 수 있어요.


  홀가분하게 찍기에 홀가분한 사진입니다. 즐겁게 찍기에 즐거운 사진입니다. 신나게 찍기에 신나는 사진입니다. 사진을 찍어 이야기를 엮는 사람은 어디로든 움직입니다. 집 안쪽에서 둘러봅니다. 집마다 있는 사진틀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손님한테 차려 주는 맛난 밥상을 바라봅니다. 집 바깥으로 나와서 마당을 거닙니다. 사진은 ‘어느 한때’만 ‘찰칵’ 하고 찍으면서 이야기를 빚습니다. 사진가 한 사람이 빚은 이야기는 영상이나 글하고 사뭇 다릅니다. 영상은 끊임없이 흘러서 모든 것을 다 보여주려는 듯합니다. 글은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알뜰히 담아서 몽땅 알려주려는 듯합니다.


  사진은 영상이나 글처럼 하지 못합니다. 사진은 언제나 ‘어느 한때’만 ‘찰칵’ 담을 뿐입니다. 그리고, 어느 한때를 찰칵 담기에, 사진을 읽는 사람은 이 점에서 저 점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 점과 저 점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 무슨 삶이 있을까, 어떤 사랑이 있을까, 어떤 사람이 어떤 노래를 불렀을까 하고 스스로 곰곰이 헤아립니다.






.. 이후 또 어떤 작업 현장에서 어떤 작업 방식과 조우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난관 없이 관성적으로 찍었다면 저 보물 같은 순간은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  (221쪽)



  한금선 님은 촬영기를 쥐거나 연필을 쥔 사람한테 막혀서 ‘제대로 사진을 못 찍’을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한금선 님은 촬영기와 연필 때문에 사진을 사진대로 바라볼 수 있는 눈길을 얻습니다. 촬영기를 돌리는 자리에 굳이 사진기가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연필이 사각사각 춤추는 데에 구태여 사진기가 있을 일이 없습니다. 사진기는 사진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으면 됩니다. 사진기는 사진기가 있을 자리에 있어야 환하게 빛나고 맑게 흐르며 싱그러이 숨을 쉽니다.


  지난날 한금선 님이 선보인 《집시 바람새 바람꽃》(눈빛 펴냄,2007)을 보면, 이무렵 한금선 님은 어떤 틀에 스스로 가두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한금선 님과 마주한 사람들하고 어깨동무를 하거나 활짝 웃거나 노래하는 사진이 못 되었다고 느낍니다. 저마다 다른 자리에서 저마다 다른 삶으로 저마다 다른 사랑을 속삭이는 무지개를, 무지개가 아닌 먹구름으로 보았지 싶어요.


  《바람에 눕다 경계에 서다 고려인》은 어떤 삶을 어떤 눈길로 바라보면서 어떤 이야기로 그러모으는 어떤 사랑일까 궁금합니다. 고려인은 한금선 님이 만나기 앞서이든 만난 뒤이든 언제나 고려인입니다.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이 있고,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눈물에 젖은 삶에 아픈 사람이 있고, 눈물에 젖은 삶에 아프면서도 곧잘 웃음을 지은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웃습니다. 따사로운 손길로 어루만지는 곁님이나 동무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면서 웃습니다. 주름진 얼굴에는 죽음을 이긴 고비가 깃들 뿐 아니라, 웃음과 노래와 춤으로 얼크러진 사랑잔치가 함께 깃듭니다. 사진기를 쥔 우리들은 이러한 숨결을 어느 만큼 바라보거나 느끼거나 살필 수 있을까요.






.. 이번 작업으로, 고려인에 대해서라기보다 사람과 사람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더 알고 느끼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  (222쪽)



  바람에 누워도 일어나는 풀꽃입니다. 풀과 꽃과 나무는 바람이 불면 흔들리면서 춤을 추고 노래합니다. 그만 비바람에 꺾이는 풀과 꽃과 나무가 있고, 비바람을 꿋꿋하게 견딘 풀과 꽃과 나무가 있습니다. 풀과 꽃과 나무는 비바람에 꺾인들 죽지 않습니다. 아니, 죽을 수 있어요. 그러나, 비바람에 꺾여 죽어도 새로운 씨앗이 이 땅에 드리워서 새롭게 태어나요. 아프고 괴로우면서 고단한 나날을 지나야 했던 고려인들 가슴에는 슬픔과 생채기와 얼룩이 있어요. 그리고, 슬픔 곁에는 즐거움이, 생채기 곁에는 웃음이, 얼룩 곁에는 사랑이 함께 있습니다. 삶을 이루는 이야기가 알뜰살뜰 있습니다.


  소담스레 밥상을 차려 이웃을 부릅니다. 소담스레 차린 밥상맡에는 사진가도 앉을 수 있습니다.  어제 그토록 모진 가시밭길에서 피울음으로 슬퍼야 했던 사람들이 오늘 잔치마당을 베풀면서 하하 웃고 기쁘게 노래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날들은, 모레는, 글피는, 새로운 해는, 또 새로운 해는, 다시 새로운 해는, 고려인들한테 어떤 삶이 될까요. 사진을 찍는 사람한테는, 또 남녘에서 살거나 북녘에서 살거나 중국에서 살거나 일본에서 사는 한겨레한테는, 오늘 하루가 어떤 날이 될까요.


  바람에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는 풀과 꽃과 나무한테는 국경이 없습니다. 풀씨와 꽃씨와 나무씨는 국경이나 정치나 이론이나 졸업장이나 재산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저 홀가분하게 어디로든 날아가서 깃들어 뿌리를 내려 싹을 틔웁니다. 한국(남녘이나 북녘)으로 가고픈 고려인이 있으나, 앞으로도 그곳에 그대로 남아 살아라겨는 고려인이 있습니다. 어디에 있든 고려인이며 한겨레입니다. 그리고, 어디에서든 싱그러운 숨결이며 사람이자 사랑입니다. 사진을 찍는 우리들은 사람을 찍고 사랑을 찍습니다. 사진을 읽는 우리들은 사람을 읽고 사랑을 읽습니다. 한금선 님이 고려인을 이웃으로 만나 알뜰살뜰 사진으로 찍어 나누어 주니 반가우면서 고맙습니다. 4347.9.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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