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 시골빛 삶노래
― 사랑하는 마음
둘레를 살펴보면 ‘사랑’을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랑을 다루는 문학이나 영화나 연속극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을 사랑대로 그리는 일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사랑’을 말하려는 사람들 가운데 참으로 사랑을 말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사랑이란 살섞기가 아닙니다. 살을 섞는 일은 ‘살섞기’입니다. 돈을 바라보며 ‘정략 결혼’을 한 사람이 ‘그래도 너를 사랑했어’ 하고 말하는 연속극이나 영화나 문학이 참 많습니다. 이러한 자리에 나오는 사랑은 참말 사랑일까요? 아닙니다.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지만, 속마음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입으로 읊는대서 사랑이 되지 않아요. 마음이 참다이 움직일 때에 사랑입니다. 마음이 곱게 흐르고, 마음이 착하면서 따스할 때에 사랑이에요.
사랑이란 나와 네가 서로 아끼는 마음입니다. 사랑이란 나와 네가 서로 살뜰히 보살피면서 즐겁게 노래하는 마음입니다. 사랑이란 나와 네가 서로 그리면서 좋아하는 마음입니다. 사랑이란 나와 네가 서로 섬기면서 북돋우는 마음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이 가장 흔하면서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는 까닭은, 바로 ‘사랑’이 삶을 살찌우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기에 삶이 빛나며, 사랑이 있어서 삶이 즐겁습니다. 사랑을 키우면서 아이들이 신나게 몰면서 자라고, 사랑을 보듬으면서 어른들은 저마다 제 꿈을 찾아 씩씩하게 일합니다.
학문을 할 때에도 참다운 사랑을 가슴에 품습니다. 참다운 사랑을 가슴에 품는 사람은 학문을 하면서 올바르게 섭니다. 참다운 사랑을 가슴에 품지 않는 사람은 이른바 관변학자가 되거나 사대주의에 사로잡히거나 일제강점기나 군사독재일 때에 부역을 하는 지식인이 되어요.
과학을 하는 사람이 참다운 사랑을 안 품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때에는 과학이 과학 아닌 전쟁무기 만드는 끔찍한 길을 걸을 테지요. 유전자를 건드린 씨앗을 퍼뜨려 지구별 곡물재벌이 온 나라를 망가뜨리면서 환경재앙을 일으켜는 앞잡이 구실을 합니다.
정치를 하는 사람이 참다운 사랑을 품지 않을 때에는 사회를 어지럽힙니다. 뒤에서 검은 돈을 빼돌리는 짓을 합니다. 경제를 하는 사람은 어떠할까요. 참다운 사랑이 없이 경제를 한다면, 사회를 어떻게 일그러뜨릴까요.
오자와 마리 님이 빚은 만화책 《은빛 숟가락》(학산문화사 펴냄)이 있습니다. 2014년 9월에 일본에서는 10권까지 나왔고, 한국에서는 6권까지 한국말로 나옵니다. 한국말 번역이 느려서 아쉬운데, 6권을 읽으면 앞선 다섯 권과 사뭇 다른 이야기가 흐릅니다. 이 만화책에는 ‘리츠’라는 젊은 사내가 주인공인데, 이 젊은이는 ‘낳은 어머니’와 ‘기른 어머니’가 다릅니다. 고등학교를 마칠 무렵 ‘낳은 어머니’가 있는 줄 처음 알아차립니다. 만화책 6권째에 이르러, 이 젊은이는 ‘낳은 어머니’가 궁금해서 찾아갑니다. ‘기른 어머니’는 더없이 따스한 사랑으로 품으면서 돌보았어요. 굳이 ‘낳은 어머니’를 찾아야 하지 않지만, 이 젊은이를 낳은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었을는지, 어떤 사랑이었을는지 궁금했어요. 아기였을 때 있었다는 위탁시설에 찾아가니, “성장한 당신이 본인 의지로 만나러 와 준 걸 안다면 분명 당신을 낳아 준 부모님도 기뻐하실 거예요(46쪽).”와 같은 말을 듣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눈물을 지어요.
자, 이제 어떻게 할까요. 곧바로 ‘낳은 어머니’한테 찾아갈까요. 쉽지 않겠지요. 어느 날, 도시락을 싸서 대학교에 공부하러 간 날, 마침 낮에 말미가 납니다. 만날 사람도 할 일도 없습니다. 문득 ‘낳은 어머니 주소’를 받은 일을 떠올립니다. 천천히 걸어서 그곳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곳, ‘낳은 어머니’가 사는 곳에서 ‘낳은 어머니’는 못 만나고, 아마 ‘낳은 어머니가 낳았구나 싶은 어린이’를 만납니다. 만화책 주인공인 젊은이는 “동생일지 모르는 이 어린 남자아이가 지금까지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지 어쩐지 알 것만 같았다(150∼151쪽).” 하고 속으로 말합니다. 젊은이를 낳은 어머니는 나중에 동생을 낳았는데, 이 아주머니는 동생인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요. 젊은이한테 동생인 아이는 집에서 고작 아이스크림 하나 얻어 먹습니다. 집에서 굶기 일쑤입니다. 마침 젊은이가 싼 도시락이 있어 ‘동생이로구나 싶은 아이’한테 건넵니다.
‘기른 어머니’와 ‘기른 어머니가 낳은 동생’이 있는 집으로 돌아온 저녁에, 젊은이는 마음이 몹시 무겁습니다. 저를 낳은 어머니하고 함께 살았다면 어떤 나날이었을까 싶으면서, 저를 기른 어머니가 두 동생하고 누리는 따사롭고 포근하면서 아름다운 삶이 즐거우면서 괴롭고 말아요.
젊은이는 이튿날 다시 도시락을 쌉니다. 다섯 살짜리 어린이가 좋아하고 기뻐할 만한 도시락을 앙증맞게 쌉니다. 그러고는 이 도시락을 들고 ‘동생이로구나 싶은 아이’한테 찾아가서 건넵니다. ‘동생이로구나 싶은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살며시 안으면서 마음속으로 다시 생각하지요. “하지만 지금은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어제 저녁부터 지금까지 엄마에게선 아이스크림 하나밖에 얻지 못한 이 아이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있을지, 대체 뭘 할 수 있을지, 그것뿐이다(186쪽).”
사랑은 언제나 따스합니다. 따스하지 않은 사랑은 없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넉넉합니다. 넉넉하지 않은 사랑은 없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즐겁지 않거나 웃음을 불러들이지 않거나 노래가 흐르지 않는 사랑은 없습니다.
사랑인가 아닌가를 알려면 이 대목을 헤아리면 돼요. 따스한가요? 넉넉한가요? 즐거운가요? 웃음이 피어나나요? 노래가 흐르나요?
바닷속에 가라앉은 아이들은 몹시 아프고 슬픕니다. 이 아이들을 품을 수 있으려면 사랑으로 다가서야 합니다. 이런 이론도 저론 논평도 부질없습니다. 한국 정부가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려면 이 나라 시골마을 사람들을 사랑으로 품는 넋으로 맺어야 합니다. 돈이나 이익을 따져서는 안 됩니다. 사랑을 품지 않은 채 저질렀기에 4대강사업이 막나갔습니다. 사랑을 담지 않은 채 밀어붙이기에 밀양과 청도에서 송전탑 때문에 앓는 이웃이 많습니다. 사랑을 키우지 않으면서 때려짓기에 핵발전소가 크게 말썽거리가 됩니다. 지구별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아이들과 숲과 이 땅과 우리 삶을 사랑한다면, 엉터리 짓이나 멍청한 일을 벌일 수 없어요. 부디 이 나라에 사랑이 흐르기를 빌어요. 아무쪼록 우리 스스로 사랑을 가꾸기를 빌어요. 4347.9.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