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왕국 14
라이쿠 마코토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77



듣는 목소리·내는 목소리

― 동물의 왕국 14

 라이쿠 마코토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8.25.



  귀를 기울일 줄 안다면 우리는 어떠한 소리이든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못 듣는 소리가 있다면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쏟아 귀를 기울이면 어떠한 소리이든 듣지만, 마음을 쏟지 않으니 못 듣는 소리가 많습니다.


  아무리 북새통이어도 어버이는 아이 목소리를 알아차립니다. 수많은 사람이 북적이는 곳에 있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봅니다. 자동차 소리로 귀를 찢더라도 아이가 읊는 소리를 듣기 마련이고, 우당당탕 어수선한 곳에서도 내 이웃과 동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마음을 기울일 수 있다면 나무가 들려주는 목소리를 듣습니다. 마음을 기울이기에 꽃과 풀이 들려주는 목소리를 듣습니다. 마음을 기울인다면 벌과 나비와 잠자리가 어떤 목소리인가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 “이제 이 별은 폭발해 사라질 거야!” “그만해!!” (64∼65쪽)

- “가장 사랑하는 인간을 그 손으로 죽인 죄인이, 과연 살아서 행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일레인. 기라의 말 따위 듣지 마. 사는 게 쿠오우의 바람이었잖아? 그렇지? 일레인은 기라에게 조종당한 것뿐이야. 아마 네 손은 앞으로 사랑하는 많은 이들을 지킬 거야. 빼앗는 것이 아닌, 지키고, 키우는, 그런 손으로 만들자. 모두와 함께 살자. 네 뒤를 돌아봐.” (71쪽)





  냇물은 언제나 노래합니다. 냇물 곁에서 냇물노래를 듣는 사람은 냇물을 망가뜨리거나 허물지 않습니다. 냇물 곁에 있어도 냇물노래를 안 듣거나 못 듣는 사람은 냇물을 까뒤집습니다. 냇물노래를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은 냇바닥에 시멘트를 퍼붓습니다.


  행정 관료만 책상행정을 하지 않아요. 냇물노래를 안 듣기 때문에 책상행정으로 4대강사업 따위를 저지릅니다. 냇물노래를 헤아리지 않기 때문에 토목건설 일자리를 받아들이고, 냇물노래에 귀를 닫기 때문에 4대강사업 홍보를 하면서 돈과 이름을 거머쥐려는 짓을 저질러요.


  시골마을에 송전탑을 박는 한국전력 일꾼은 숲노래를 듣지 않습니다. 마을노래도 듣지 않습니다. 한국전력 일꾼을 돌보는 경찰과 전경 또한 숲노래와 마을노래를 듣지 않아요. 이들은 ‘위에서 시키는 소리’만 듣습니다. 위계질서에 갇힌 공무원과 군인은 ‘이웃과 동무가 들려주는 목소리’를 안 듣습니다. 게다가 공무원과 군인은 이녁한테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될 사람들이 들려주는 목소리조차 귀를 닫아요.


  가만히 보면 그렇습니다.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은 언제나 귀를 닫습니다. 모진 짓을 일삼는 사람은 늘 귀를 막습니다. 둘레에서 흐르는 소리에 귀를 꽁꽁 틀어막습니다. 함께 노래를 부를 생각이 없고, 다 같이 어깨동무를 할 뜻이 없어요.



- “모두를, 죽게 놔두지 않아. 살아서, 새로운 세상을.” (138쪽)

- “초목의 기분에 좀더 귀 기울여. 초목과 어울려 공존할 수 있을 거야. 물고기도 조만간 울음소리를 내게 되겠지. 재밌겠다, 그럴 수도 있겠는걸!” “그래도 악은 사라지지 않아! 먹지 않고도, 죽이는 놈은 사라지지 않아!” “그래, 사라지지 않을 거야. 그 점은 타로우자도 전부 선이 되라고는 하지 않았어. 그렇게 말한다고 달라질 것도 아니고. 동물 각자에겐 의지가 있어. 선도, 악도 있지. 하지만 선도, 악도 서로 목소리를 내고 귀 기울임으로써, 언젠가 악은 얌전해질 거야. 시간은 걸리겠지만.” (147∼148쪽)





  한국이라는 나라에는 교육정책이 없습니다. 정책이라고 할 것이 없어요. 모두 위계질서에 따라 내리는 ‘명령·지시’일 뿐입니다. 소리가 없습니다. 목소리가 없어요. 아이들 목소리를 듣지 않고 정책을 세우지요. 아이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서 입시지옥을 만들지요. 아이들 목소리를 마음에 담지 않으니, 언제나 아이들이 고단하지요.


  앳된 젊은이가 군대에서 주먹질이나 발길질에 목숨을 잃습니다. 앳된 젊은이가 가녀린 동무를 두들겨패서 죽입니다. 죽인 녀석이나 죽은 아이나 모두 앳된 젊은이인데, 서로 이야기가 흐르지 못합니다. 온통 위계질서만 있기 때문입니다. 따사로운 목소리가 흐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군대라는 곳은 전쟁무기를 손에 쥐어 사람 죽이는 짓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면회나 휴가를 늘린대서 군대가 나아질 턱이 없습니다. 면회나 휴가를 늘려 보았자, ‘사람 죽이는 짓을 가르쳐서 길들이는 얼거리’는 하나도 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서로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삶’이 아니라 ‘위계질서에 따라 시키거나 부리거나 휘두르는 얼거리’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누구 이야기를 들을까요. 누가 누구한테 이야기를 할까요. 어떤 목소리를 듣습니까. 어떤 목소리를 들려줍니까.



- “기라, 넌 울음소리를 얼마나 들었지? 나보다 많은 동물과 얘기했냐? 귀를 막고 몇 안 되는 인간의 몇 마디 말 속에서 살아왔던 건 아니고? 귀도 기울이지 않은 네가, 어떻게 동물 전체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지?” (152∼153쪽)





  라이쿠 마코토 님 만화책 《동물의 왕국》(학산문화사,2014) 열넷째 권을 읽습니다. 이제 열넷째 권으로 《동물의 왕국》은 마무리를 짓습니다. 지구별에 끔찍한 죽음과 죽음과 죽음만 낳으려고 하는 ‘기라’라고 하는 불쌍한 아이에 맞서서 ‘타로우자’라는 아이는 온몸과 온마음을 바쳐서 “얘야, 우리 같이 살자.” 하고 말합니다. 이웃을 이웃으로 안 보고 모두 죽이려 하는 기라인데, 동무를 동무로 삼지 않고 모두 죽이려고만 하는 기라인데, 타로우자는 이런 기라한테도, 너 말이야 스스로 죽을 생각을 하지 말고 함께 살자, 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기라는 손사래칩니다. 기라는 살아갈 뜻이 없습니다. 기라는 ‘하늘나라’가 죽음 뒤에 찾아온다고 여깁니다. 기라는 갓 태어날 적에 ‘하늘나라를 삶 바깥에서 보았다’고 말합니다.


  기라라고 하는 아이는, 온통 죽음만 생각하는 아이는, 참말 하늘나라를 보았을까요? 아마 보았으리라 느낍니다. 그런데, 그 하늘나라는 죽고 나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지 싶어요. 삶을 스스로 아름답게 지었을 때에 몸뚱이를 내려놓고 넋이 찾아갈 수 있는 곳이지 싶어요. 삶을 스스로 아름답게 짓지 않은 사람은 몸뚱이를 내려놓더라도 갈 수 없는 곳이지 싶어요.


  그러면, 기라는 어떻게 될까요? 다시 지구별에서 태어나겠지요. 아마 앞으로는 ‘죽음’이 아니라 ‘삶’을 생각하는 숨결로 새로 태어나겠지요. 그래야, 기라 스스로 바라는 ‘하늘나라’에 갈 테니까요.



- “산이 으르렁거린다. 대지가 울고 있어. 물이 소리를 내고 있어. 난생 처음 보는 하늘빛이다.” (166쪽)

- “하나타, 또 꽃을 주워 왔네.” “부럽다. 나도 꽃이나 풀과 얘기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얘기까진 못 해. 그냥 마음만 아는 거지.” “그래도 하나타가 심은 꽃이나 작물은 절대 시들지 않는걸!” (176쪽)

- “진심으로 이 광경이 기뻐. 과학도 논리도 아니야. 진짜 답은 마음이 알고 있는걸.” (185쪽)





  만화책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아이 ‘타로우자’는 두려움이나 근심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만 있습니다. 무엇인가 하면, ‘사랑하려는 마음을 짓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니 두려울 일도 근심할 일도 없습니다. 사랑을 마음에 담았으니 두렵지 않습니다. 사랑을 담은 마음을 날마다 새롭게 지으니 근심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이웃을 생각합니다. 따사로운 동무를 생각합니다. 모든 삶을 즐겁게 짓습니다. 모든 하루를 아름답게 짓습니다.


  어떤 소리를 듣겠습니까? 어떤 소리를 내겠습니까? 풀과 꽃과 나무가 내는 소리를 듣겠습니까? 풀과 꽃과 나무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겠습니까?


  어떻게 살겠습니까? 미움과 따돌림과 밥그릇에 얽매인 종살이로 나아가겠습니까? 사랑과 꿈과 믿음과 노래와 이야기가 넘실거리는 아름다운 삶으로 나아가겠습니까? 길은 두 갈래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이 길을 가느냐 안 가느냐일 뿐입니다. 4347.9.1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