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지와 빵집주인 비룡소의 그림동화 57
코키 폴 그림, 로빈 자네스 글, 김중철 옮김 / 비룡소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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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428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되면

― 샌지와 빵집 주인

 코키 폴 그림

 로빈 자네스 글

 김중철 옮김

 비룡소 펴냄, 2001.8.21.



  우리 집 한쪽에 무너진 돌울타리를 다시 쌓으려고 이웃 할매가 논에서 돌을 고르던 오월에 크고작은 돌을 잔뜩 얻었습니다. 그런데 구월이 넘도록 돌을 마당 한쪽에 그대로 두었어요. 돌울타리를 손질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넉 달 만에 돌울타리를 손질하며 생각에 잠깁니다. 가을 뙤약볕을 받으며 돌울타리를 쌓는 동안, 이 울타리가 튼튼하게 서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중에 다시 쌓을 일이 없도록 하자면, 아이들이 큰 뒤에도 그대로 튼튼히 서도록 하려면 어떻게 쌓아야 할는지 생각에 잠깁니다.


  이렁저렁 쌓고 나서 가만히 바라봅니다. 더 높여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렁저렁 쌓인 데에 더 높이면 무너지겠습니다. 쌓은 울타리를 허뭅니다. 예전 높이에서 더 허뭅니다. 바닥부터 튼튼하게 하자면 돌을 넓게 쌓아야지 싶습니다. 석 줄로 쌓자고 생각합니다. 한 줄로는 안 될 테고, 두 줄도 힘을 덜 받겠구나 싶어, 석 줄로 처음부터 새로 쌓습니다.


  한두 줄이라면 돌이 얼마 안 들 테지만, 석 줄로 쌓으려니 돌이 아주 많이 듭니다. 바깥과 안쪽은 큰돌로 버티고, 사이는 잔돌로 채웁니다. 바깥과 안쪽을 큰돌로 서로 버티도록 하면서 안쪽에 잔돌을 동이에 담아서 붓습니다. 오월에 이웃 논에서 돌을 얻을 적에 할매가 들려준 말이 문득 떠오릅니다. 흙을 발라서 쌓으면 아주 튼튼하지만, 잔돌을 쓰면 더욱 튼튼하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오늘에서야 알아차립니다.



.. 샌지는 자기 마음에 꼭 드는 방을 찾았지. 그 방은 작고 아담했지만 아주 아늑했어. 무엇보다 이 방 밑에 빵집이 있다는 게 가장 좋았어 ..  (4∼5쪽)




  전라남도 고흥은 태평양을 맞댄 시골입니다. 태풍이 한반도에 찾아들 적에는 진도 해남 강진 장흥과 함께 바닷바람까지 고스란히 껴안습니다. 우리 집이 있는 마을은 바닷가부터 멧봉우리가 둘 있습니다. 바닷가 사람들은 태풍을 맞바로 받아야 하지만, 우리 집은 멧봉우리 두 곳이 먼저 튕겨 주어요. 그래도 막상 태풍이 찾아오면 바람이 얼마나 드센지 몰라요.


  태풍이 지나갈 때면 제주섬 사람들이 예부터 바람을 얼마나 무서워 하면서도 섬기고 애틋하게 여겼겠는가 하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제주섬은 예부터 지붕을 단단히 새끼줄로 동여맸어요. 돌울타리가 아주 높아요. 그러지 않고서야 버틸 수 없었겠지요.


  우리 집은 마당에 후박나무가 크게 자랐습니다. 그늘이 꽤 넓습니다. 마을 이웃은 그늘이 진다며 나무를 베라 하지만, 우리는 이 나무를 아낍니다. 여름에 나무그늘이 얼마나 시원한데요.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람이 얼마나 싱그러운데요. 후박나무 곁에서 자라는 초피나무도 키가 꽤 올랐습니다. 두 나무와 동백나무는 우리 집이 바깥에서 잘 들여다볼 수 없도록 가로막아 줍니다. 바람이 드세게 불 적에도 나무들이 먼저 받아 주어요.



.. 샌지는 빵집에 가서 아주 조그만 계피빵을 샀어. “베란다에서 맛있는 빵 냄새를 맡았어요.” 샌지가 빵집 주인에게 말했지. “그래? 네가 빵 냄새를 맡았다고?” 빵집 주인은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어 ..  (9쪽)




  한겨레 옛집에는 대문이 없습니다. 알 사람은 알 텐데, 한국말에는 ‘문’이라는 낱말조차 없습니다. 한겨레 옛집에는 큰문(대문)도 작은문도 없어요. 나무와 흙으로 지은 집에는 ‘미닫이’나 ‘여닫이’가 있을 뿐입니다.


  한겨레 옛집에는 ‘마루문’도 없지요. 그냥 탁 트인 마루일 뿐입니다. 집과 바깥 사이에 경계가 없어요. 집집마다 세운 울타리는 이웃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경계가 아닙니다. 바람을 막으려는 울타리이고, 비가 덜 들이치도록 높이는 울타리이며, 들짐승이 함부로 드나들지 말라고 세운 울타리입니다. 게다가 돌울타리를 쌓지 않는 곳은 ‘바자(울바자)’나 겨우 놓았습니다. 탱자나무나 찔레나무를 심기도 했고요.



.. 재판관은 빵집 주인을 쳐다보았어. “넌 딸그락 짤랑 하는 동전 소리를 들었느냐?” “예, 재판관님.” 욕심이 난 빵집 주인은 대답하면서, 동전 그릇을 바라보았어 ..  (23쪽)




  코키 폴 님 그림하고 로빈 자네스 님 글이 어우러진 재미난 그림책 《샌지와 빵집 주인》(비룡소,2001)을 읽습니다. 이 이야기는 나도 어릴 적에 익히 들었습니다. 빵냄새에 돈을 물리려는 빵집 임자하고, 빵냄새 때문에 돈을 억지로 물어야 하는 안쓰러운 사람이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때에 마을 재판관은 아주 슬기롭게 일을 끝맺어요. 이쪽에 손을 들어 주거나 저쪽에 손을 들어 주지 않습니다. 오직 올바르게 일을 끝맺습니다.


  나는 이 옛이야기를 어릴 적에 들으면서 ‘슬기로우면서 올바르게 바라보고 생각하여 말할 줄 아는’ 매무새가 참으로 아름답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빵집 임자는 이녁 빵내음을 좋아하는 사람을 반갑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일 때에 아름다울 테고, 빵집을 찾아간 사람은 빵을 더 넉넉히 장만해서 기쁨을 누렸다면 한결 아름다웠을 테지요. 서로서로 마음을 더 나누지 못했어요. 서로서로 마음으로 더 사귀지 못했습니다.


  빵냄새가 좋다면서 냄새만 맡는다고 배가 부르지 않아요. 그런데 빵냄새가 좋다는 말만 하면서 빵은 정작 안 산다고 하면, 빵집 임자는 살살 약이 오를 수 있어요. 빵냄새에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무슨 말인가 하면, 그 좋은 빵냄새를 냄새로만 즐기지 말고, 빵을 입에 물고 냠냠 먹으면 훨씬 즐겁다는 뜻이에요.


  생각해 봐요. 구수하고 맛있는 냄새가 나는 밥과 국이 있을 적에 냄새만 맡게 하면 어떠한가요? 배부른가요? 굴비를 천장에 매달고서 눈으로 보고 ‘맛있다’고 여기라 하면 참말 맛있거나 배부른가요? 아닙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샌지’는 즐겁고 신나게 빵을 배불리 사다 먹을 수 있기를 빌어요. 빵집 임자는 샌지한테 덤도 주고 우수도 주면서 함께 즐겁고 사이좋은 이웃이 될 수 있기를 빌어요. 재판관은 샌지와 빵집 임자 두 사람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잘 지내기를 바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느낍니다. 다만, 샌지나 빵집 임자는 이를 얼마나 알아채거나 느꼈을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4347.9.1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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