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국을 끓이다가



  아침에 함께 먹을 밥으로 미역국을 끓이다가 거의 다 끓을 무렵 아차 하고 깨닫는다. 찬찬히 밥을 끓이고 국을 끓이고 무채무침을 하면서 ‘다 잘 되는데 무엇 하나를 아직 안 했네’ 하고 생각하면서도 무엇 하나가 무엇인지 몰랐다. 미역국 간을 볼 즈음 비로소 깨닫는다. 미역을 안 자르고 끓였네. 부랴부랴 가위로 석석 자른다. 팽이버섯도 썰어서 넣는다. 국그릇에 된장을 푼다. 미역국 불을 끄고 난 뒤 된장국물을 붓는다. 된장국물을 고루 섞은 뒤 다시 간을 본다. 아, 내가 끓인 된장미역국이면서도 참 맛있네. 나는 이 맛과 간을 언제부터 알았을까. 우리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았을까. 우리 할머니한테서? 더 먼먼 할머니나 어머니한테서?


  밥도 알맞게 뜸이 들었고 국도 맛나다. 무채무침을 먼저 밥그릇 바닥에 깔고 나서 밥을 얹고, 달걀을 네 조각으로 갈라 밥 옆에 놓는다. 그러고는 밥상에 차곡차곡 옮긴다. 국을 뜨고 아이들을 부른다. 수저는 놓지 않는다. 아이들이 수저쯤은 스스로 놓아야지.


  미역국을 끓인 날은 괜히 즐겁다. 예부터 미역국은 아주 뜻있게 끓였기 때문일 수 있다. 새로 태어난 아기를 기리면서, 새로 태어난 아기를 돌보는 어머니를 기리면서, 이 땅에 새로 태어난 즐거움을 기리면서, 미역국을 으레 끓였을 테니, 여느 날에 미역국을 끓일 적에도 오늘도 내 새로운 생일로 여길 만하다. 즐거운 밥잔치이다. 4347.9.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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