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미래 - 자급자족 사회를 위한 農이야기
변현단 지음 / 들녘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읽기 삶읽기 167



아름다운 앞날을 바라려면

― 소박한 미래

 변현단 글

 들녘 펴냄, 2011.6.28.



  아름다운 앞날을 바라려면 스스로 아름답게 새 하루를 맞이해야 합니다. 날마다 아침에 새롭게 꿈을 짓고 삶을 가꾸어야 합니다. 아름다움은 어느 날 짠 하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선물이 아닙니다. 아름다움은 스스로 날마다 차근차근 일구고 가꾸어 누리는 삶입니다.


  쳇바퀴를 돌면서 아름다울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 가둔 쳇바퀴를 벗은 뒤, 스스로 새롭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날마다 되풀이하는 똑같은 일이 아니라, 날마다 새롭게 맞이하는 이야기가 되도록 스스로 바꾸어야 합니다.


  말로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스스로 바꾸면 스스로 즐겁거든요. 스스로 안 바꾸기에 스스로 안 즐겁습니다. 스스로 하면 되는 일이기에 남이 돕지 못하고, 스스로 하면 되는 일인 만큼 스스로 하는 동안 내 이웃과 동무도 즐겁게 배웁니다.



.. 아파트에 늘어선 음식 쓰레기통을 열어 보라. 도저히 사료로는 사용할 수 없는 것뿐이다. 화학 세제로 설거지를 하고 난 뒤 걸러지는 음식물 쓰레기여서 그 안에는 화학 물질이 분해되지 않은 채 잔존한다 … ‘국민의 건강’은 언제나 핑계였을 뿐이다. 건강 구호가 2010년에는 ‘국민 건강을 위해 쌀 소비를 권장한다’로 바뀐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문제는 ‘건강’이 아니라 소비 진작이었다. 정부 주도로 행해지는 일련의 식문화 정책 배후에는 반드시 기업의 이익이 도사리고 있다 ..  (16, 20쪽)



  그런데, 무엇을 바꿀까요. 어떤 삶이 아름다울까요. 무엇을 어떻게 바꿀까요. 참답게 아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요.


  학교나 사회에서 아름다움을 가르치거나 보여주는 일이 있을까요. 교과서나 방송에서 아름다움을 알려주거나 이야기하는 때가 있을까요. 대통령이 아름다움을 말한 적이 있을까요. 동사무소나 면사무소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을까요.


  시골에서 살기에 누구나 아름다운 삶이 되지는 않습니다. 시골에서 살더라도 자가용을 씽씽 몰거나 농약을 펑펑 쓴다면 아름다운 삶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도시에서 사니까 모두 안 아름다운 삶이 되지는 않습니다. 도시에서 살더라도 마당이나 텃밭을 일굴 수 있다면, 마을을 돌보고 이웃과 어깨동무할 수 있다면, 두레와 품앗이를 도시에서도 넉넉히 누린다면, 누구라도 아름다운 삶으로 나아갑니다.


  가만히 보면, 오늘날 시골에서는 두레와 품앗이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마늘밭에서 일을 돕는 이웃은 있으나, 다들 기계를 써서 논일과 밭일을 하니, 차츰차츰 두레도 품앗이도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 농부들의 판매권을 박탈하고 종자부터 생산 전 과정을 간섭함으로써 농부를 기업의 하청 노동자로 만들거나 대기업의 공장식 농사를 담당하는 농업노동자로 만드는 것이다 … 가공 식품을 먹지 않으면 곡물가 급등에 대한 우려를 떨쳐도 된다. 사실 한국식 밥상에는 가공 식품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 유일한 대안이 있다면 산업화와 기업화로부터 벗어나는 것뿐이다. 그리고 내 손으로 식의주를 해결하는 생활 구조로 돌아가야 한다 … 어쩌면 우리는 고기를 권하면서 폭력을 조장하는, 저급한 육류 문화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  (26, 47, 56, 86∼87쪽)



  우리 사회는 어디에서나 겨루라고 내몹니다. 서로 겨루어 한쪽이 이기고 한쪽이 지도록 내몹니다. 서로 돕는 길을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라, 성적 숫자에 따라 등수와 등급을 매기는 학교입니다. 함께 나누며 사랑하는 길을 보여주는 학교가 아니라, 더 이름난 대학교에 들어가느냐 마느냐로 아이들을 가르는 학교입니다. 도시에서는 ㅅㄱㅇ이라는 대학교에 들어가는 아이들 이름을 걸개천에 큼지막하게 써서 내겁니다. 시골에서는 아무 대학교라도 들어가면 아이들 이름을 걸개천에 큼지막하게 써서 내겁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길을 밝히는 학교란 자취를 감춥니다. 스스로 삶을 가꾸는 길을 보여주려는 학교란 태어나지 못합니다. 오직 도시로 가서 오직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고는 오직 돈만 벌라는 학교교육입니다.


  변현단 님이 쓴 《소박한 미래》(들녘,2011)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변현단 님은 ‘시골살이 생각’을 책 하나로 풀어냅니다. 인문도 철학도 교육도 사상도,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태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책 하나로 보여줍니다. 도시에서 떠드는 인문이나 철학이 아닌, 강단이나 제도권에서 외치는 교육이나 사상이 아닌, 몸소 흙을 만지고 풀과 나무와 이웃으로 지내는 삶에서 ‘생각’을 끄집어 내어 나누려 합니다.


  참말 그렇지요. 모든 생각은 흙에서 태어납니다. 모든 슬기는 풀과 나무에서 태어납니다. 모든 사랑은 숲에서 태어납니다. 흙과 풀과 나무와 숲이 아니라면, 생각과 슬기와 사랑이 자라지 않습니다. 그러면, 흙과 풀과 나무와 숲은 어디에서 태어났을까요. 바로 우리 마음에서 태어납니다.



.. 요즘 사람들은 누구나 ‘바빠 죽겠다’를 입에 달고 산다. 시간이 부족하다면서 다른 데서 시간을 아낀다고 아우성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 모두 소비하기 위해 돈을 버는 시간이나 먹기 위해 소비하는 시간들이다 … 전통 농법이 그리 거창한 이념이 아니다. 자신이 먹을 것, 안전한 먹을거리를 추구하는 소농이 바로 전통 농업이다. 내가 먹을 것이니 다양하게 짓고, 땅이 작으니 집약적으로 농사짓고, 자연히 섞어짓기와 돌려짓기를 한다 ..  (78, 145쪽)



  스스로 아름다우면서 따사로운 마음으로 오순도순 지내는 마을이 아름다운 숲입니다. 툭탁툭탁 치고받으면서 이웃조차 없이 밟고 올라서기만 하는 도시에 널따란 공원을 큰돈 들여 지은들 아름다운 빛이 흐르지 못합니다. 그래도, 도시 한복판에 숲이 있다면, 돈으로 만든 억지스러운 숲이라도 있다면, 이 숲에 깃들어 마음을 쉬고 몸을 달랠 테지요.


  한국 사회를 살펴봅니다. 서울이든 부산이든 대구이든 인천이든 대전이든 광주이든 울산이든 어디메이든, 도시 한복판에 숲이 있나요? 도시 한복판에 자동차도 오토바이도 없는 숲이 있나요? 도시 한복판에 오직 두 다리나 자전거로 오갈 수만 있는 숲이 있나요? 맨발로 흙과 풀을 밟으면서 맨손으로 쓰다듬을 수 있는 나무가 자라는 숲이 있나요?


  아파트 꽃밭에도 나무는 있지만, 농약을 엄청나게 뿌립니다. 아파트 꽃밭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살구알이나 감알이나 능금알이 맺는다면, 이 열매를 옷자락에 슥슥 문지른 뒤 곧장 입으로 베어서 먹어도 될까요? 도시마다 많은 커다란 가게에 그득그득 쌓인 열매나 푸성귀는 얼마나 정갈하거나 믿음직하거나 먹을 만할까요? 왜 우리는 아름답고 깨끗한 밥을 안 먹는 삶을 그대로 이을까요? 왜 우리는 안 아름답고 안 깨끗한 밥을 먹는 데에 그토록 많은 돈과 품과 겨를을 들일까요?



.. 도시 문명으로 인한 기후 온난화로 삶이 피폐해졌는데도 그것을 도시화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 한다. 오히려 자신의 터전에 들어와 교육을 빌미로 전통과 자연을 잠식하는 도시민들을 동경한다. 그들은 도시에서 사는 것을 ‘가난의 극복’이자 ‘자신들의 목표’로 설정하게끔 교육받는다 …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 화살을 돌리려면 먼저 자신의 임금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소비를 포기하고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 도시의 권력자가 된 일부 계층은 도시에서 살면서 자연과의 교감을 멀리 하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와 정치를 조작하기 시작한다 ..  (165, 195, 198쪽)



  변현단 님은 《소박한 미래》라는 책에서 ‘수수한 삶’이 가장 아름다운 우리 앞날이 될 수 있다고 밝힙니다. 다만, 《소박한 미래》라는 책에 쓰인 말이 쉽지는 않습니다. 변현단 님은 흙을 만지면서 살지만, 이 책에 쓰인 말은 ‘흙내음이 나는 말’은 아닙니다. 도시에서 학문을 하거나 책을 내거나 강의를 하는 지식인들과 똑같은 말입니다. 흙을 말하는 책이지만 흙내음이 나지는 않습니다. 풀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막상 《소박한 미래》라는 책에서 흐르는 글은 ‘풀내음이 나는 글’은 아닙니다. 인문 지식과 철학 지식으로 가득한 글입니다. 이 책에 깃든 이야기는 알차지만, 정작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여느 수수한 사람들이 읽기에는 너무 어렵습니다. 먼 옛날부터 시골에서 살며 ‘글을 모르던 사람’이 쓰던 말하고는 많이 동떨어졌어요. 글을 몰랐다 하더라도 삶으로 삶을 알고 삶으로 삶을 사랑하던 시골사람들 넋과 숨결까지는 건드리지는 못합니다. 다국적기업과 유전자조작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잘 밝히지만, 이러한 이야기를 여느 수수한 시골 할매와 할배가 알아듣도록 글을 쓰지는 않습니다. 도시에 있는 ‘지식 있는 사람’이 읽고 알아들을 만하게 글을 씁니다.


  아무래도, 도시에 있는 이웃들이 무엇인가 깨달아 도시살이를 바꿀 수 있기를 바라는 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도시에 있는 이웃들이 이제 도시를 떠나거나 버릴 때가 되었다고 이야기하려는 책이라고 할 만합니다.


  여름에는 여름내음을 풀 한 포기에서 느끼고, 가을에는 가을내음을 나무 한 그루에서 느끼며, 겨울에는 겨울내음을 햇살 한 조각에서 느끼는 이웃이 차츰 늘어나기를 빕니다. 온누리 모든 사람들이 봄에는 봄내음을 꽃 한 송이에서 느낄 수 있기를 빕니다. 4347.8.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