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빠지도록 글을 손질한 뒤



  지난 엿새 동안 그야말로 눈이 빠지도록 글을 손질했다. 지난 스무 해 동안 쓴 글 가운데 ‘한자말을 한국말로 번역하기’에 맞추어 쓴 1600꼭지쯤 되는 글을 샅샅이 살펴서 301꼭지를 추린다. 스무 해 동안 쓴 글을 엿새 만에 되읽자니 엄청나게 마음을 모아야 했다. 그만큼 집에서는 하루에 두 차례 가까스로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 주고 모든 하루를 이 일에 바쳤다.

  한국말사전 하나를 새로 빚는 길이다. 새로운 한국말사전에 깃들 올림말을 갈무리하는 일은 아직 아니지만, 그동안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말사전이 어떤 모습인가를 곰곰이 돌아본 이야기라고 할 만하다. 먼저 한국에서 태어난 온갖 한국말사전을 찬찬히 살핀 뒤, 이 사전마다 알차거나 아름다운 대목은 받아들이거나 받아먹되, 안타깝거나 슬픈 대목은 가다듬거나 손질하거나 북돋아서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고 느낀다.

  개화기 무렵부터 태어난 한국말사전을 돌아보면 한국말사전이 아니라 ‘한자말’사전이라고 할 만하다. 그만큼 아직 학자들 생각이 얕다. 학자들 스스로 생각을 가꾸거나 북돋우지 못했다.

  한국말이 한국말이 되도록 마음을 기울이는 일은 학자가 할 수 있을까? 학자도 해야지. 그러나, 학자에 앞서 여느 사람들, 바로 나와 내 이웃과 수수한 모든 사람들이 할 일이라고 본다. 지난 엿새 동안 눈은 아주 아팠고, 등허리뿐 아니라 팔다리까지 결렸다. 스무 해 남짓 글을 쓰며 사는 동안 이렇게 온몸이 아픈 적이 없다. 그러나 새벽마다 다시 몸을 털고 일어났으며, 오늘 비로소 모든 글을 갈무리해서 책 하나로 태어날 수 있는 꾸러미를 엮는다. 스무 해 앞서 ‘한자말 1000가지를 뽑아서 이 낱말이라도 하루 빨리 털어내자’고 다짐했는데, 1000가지를 못 하고 300꼭지를 하니 살짝 서운하다. 그러나, 300꼭지라도 즐거운 이야기로 내 이웃들이 맞아들여 주기를 꿈꾼다. 나중에, 어느 만큼 지나고 나서, 새로운 한국말사전을 곱게 선보인 뒤에, ‘한자말을 한국말로 번역하기 사전’을 내놓을 수 있겠지. 다시금 기지개를 켜자. 4347.8.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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