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462) 원형
나머지 우리들은 원형 식탁을 깨끗하게 치운 다음, 그 위에 하얀 유리잔을 올리고, 카드놀이할 준비를 마쳤다
《주디 카라시크(글),폴 카라시크(그림)/권경희(옮김)-함께 살아가기》(양철북,2004) 66쪽
원형 식탁
→ 둥근 밥상
→ 둥그런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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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섯 가지로 실린 한자말 ‘원형’을 생각해 봅니다. 첫째(元型)와 둘째(元型)는 학문 하는 분이 즐겨씁니다. ‘옛 모습’이나 ‘첫 모습’이나 ‘밑 모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셋째(原型) 낱말은 말뜻과 말쓰임 그대로 ‘바탕’이나 ‘밑바탕’을 가리킵니다. 넷째 낱말은 조선 시대에 썼을까 싶은 말이나, 이제는 안 쓰이는 말입니다. 다섯째 낱말은 ‘둥근’ 모양을 가리킵니다.
다섯 가지 낱말을 죽 살피면, ‘이런저런 모습이나 모양을 가리키’되, 한자로 옮기기만 할 뿐입니다. ‘이런저런 모습이나 모양’ 그대로 적거나 쓰지 않습니다.
원형 무대 → 둥그런 무대 / 동그란 무대
원형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 둥글게 빙글빙글 돌아가는
원형의 물레 → 동그란 물레
한자말이건 한자말이 아니건, ‘원형’이라는 낱말이 우리가 넉넉히 쓸 만하다 싶으면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써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따로 가리키는 낱말이 있고 나타내는 낱말이 있으며 쓰는 낱말이 있는데, 그저 한자로 옮겨 놓았을 뿐인 낱말 ‘원형’이라 한다면, 이와 같은 낱말들을 쓸 까닭은 굳이 없다고 봅니다.
‘옛 모습, 바탕, 뿌리, 동그랗다’ 같은 낱말로 넉넉합니다. ‘첫 모습, 밑바탕, 밑뿌리, 둥글다’ 같은 낱말로 알뜰합니다. 4341.7.29.불/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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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우리들은 둥근 밥상을 깨끗하게 치운 다음, 밥상에 하얀 유리잔을 올리고, 카드놀이 준비를 마쳤다
‘식탁(食卓)’은 ‘밥상’으로 고칩니다. “그 위에”는 “밥상에”로 손질합니다.
원형(元型/原型) : 본능과 함께 유전적으로 갖추어지며 집단 무의식을 구성하는 보편적 상징
원형(元型) : 발생 면에서의 유사성에 의하여 추상된 유형
원형(原型)
(1) 같거나 비슷한 여러 개가 만들어져 나온 본바탕
- 이 건축물은 후대 건축물의 원형이 되었다
(2) 옷감을 잘라 양복을 만들 때 그 밑그림의 바탕이 되는 본(本)
(3) 여러 종류의 동식물 가운데 현존하는 생물의 근원으로 생각되는 모델
(4) 문예에서, 본보기인 성격을 만들어 낼 때 의지하는 실재의 인물
원형(?刑) : 죄를 짓지 않았는데도 받는 억울한 형벌
원형(圓形) : 둥근 모양
- 원형 무대 / 원형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철마 / 원형의 물레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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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말 바로잡기
(944) 녹음
계절의 여왕 5월은 다 지나고 어느덧 녹음의 계절 6월이 되었다 라는 라디오 소리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순-제3의 여성》(어문각,1983) 163쪽
녹음의 계절 6월
→ 푸른 6월
→ 푸른 철 6월
→ 푸른 잎이 우거지는 6월
→ 푸른 빛이 가득한 6월
→ 풀빛이 고운 6월
…
한국말사전에는 세 가지 ‘녹음’이 나옵니다. 첫째는 한국말입니다. 물에 녹는다고 할 적에 ‘녹다’를 이름씨 꼴로 바꾼 ‘녹음’입니다. 그런데, ‘녹음 = 융해’로 풀이를 하는군요. ‘융해’란 무엇일까요? 한국말사전을 다시 뒤적이니, ‘융해(融解)’는 “녹아 풀어짐”을 뜻한대요. 아, 그렇구나. 그러면, 또 ‘녹다’는 무엇일까요? ‘녹음’을 ‘융해’로 풀이하고, ‘융해’는 ‘녹음(녹다)’으로 풀이하는 한국말사전입니다.
녹음이 우거지다
→ 숲이 우거지다
→ 나무가 우거지다
→ 숲그늘이 우거지다
→ 숲빛이 푸르게 우거지다
녹음이 짙다
→ 아주 푸르다
→ 숲그늘이 짙다
→ 숲빛이 짙푸르다
한자말 ‘錄音’은 ‘소리 담기’를 뜻합니다. 소리를 담는대서 한자를 빌어 ‘녹음’으로 적습니다.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소리를 담으니 ‘소리담기’를 붙여서 한 낱말로 쓸 만하겠구나 싶습니다. 아니, 한 낱말로 쓸 수 있어야 할 테지요.
“여러 번 녹음을 하다”가 아니라 “여러 번 소리를 담다”입니다. “녹음이 잘되어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가 아니라 “소리를 잘 담아서 또렷하게 들렸다”입니다.
푸르게 빛나는 숲빛을 마음으로 그립니다. 즐거우면서 살가이 담아서 나누는 소리를 마음으로 떠올립니다. 숲도 나무도 소리도 모두 아름다운 결입니다. 4338.6.26.해/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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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5월은 다 지나고 어느덧 짙푸른 6월이 되었다 하고 나오는 라디오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계절(季節)의 여왕(女王)” 같은 말을 누가 언제부터 썼을까요. 사이에 ‘-의’를 넣어 “무엇의 무엇”처럼 쓰는 말투는 모두 일본 말투입니다. 한국 말투가 아닙니다. 오늘날 사람들한테 아주 익숙하다 싶은 “계절의 여왕”일는지 모르나, 우리는 한국사람답게 한국 말투로 새로운 빛을 담는 말마디를 지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여왕과 같은 철이란 무엇일까요? “아름다운 철”일 테지요. 그래서, 뒤따르는 “녹음의 계절”도 “푸른 철”이나 “짙푸른 철”로 다듬습니다. “되었다 라는 라디오 소리”는 “되었다고 하는 라디오 소리”나 “되었다 하고 나오는 라디오”로 손봅니다.
녹음 = 융해
녹음(綠陰) : 푸른 잎이 우거진 나무나 수풀. 또는 그 나무의 그늘
- 녹음의 계절 / 녹음이 우거지다 / 녹음이 짙다
녹음(錄音) : 테이프나 판 또는 영화 필름 따위에 소리를 기록함
- 여러 번 녹음을 하다 / 녹음이 잘되어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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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말 바로잡기
(1544) 사복
이 회사의 파트너로는 모건-록펠러연합에 속한 포토맥전력의 사장과 내셔널저축트러스트은행의 사장 등 쟁쟁한 멤버들이 참여하고 있었으며, 후버 자신도 월가의 투기가로서 사복을 채우고 있었다
《히로세 다카시/이규원 옮김-제1권력 : 자본, 그들은 어떻게 역사를 소유해 왔는가》(프로메테우스 출판사,2010) 131쪽
사복을 채우고
→ 제 뱃속을 채우고
→ 뱃속을 채우고
→ 밥그릇을 채우고
→ 제 밥그릇을 채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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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아홉 가지가 있다는 한자말 ‘사복’인데, ‘私卜’이나 ‘私僕’이나 ‘思服’이나 ‘射覆’ 같은 한자말을 쓸 일은 아예 없으리라 느낍니다. ‘蛇福’은 “신라 진평왕 때의 이인(異人)”이라는데, 외국사람 이름을 한자로 적은 이런 낱말을 왜 한국말사전에 실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嗣服’ 같은 한자말도 먼 옛날 권력자나 양반이 아니면 쓸 일이 없던 낱말입니다. 이런 한자말은 한국말사전에서 덜어야 마땅합니다. 한국말사전은 한자사전이나 옥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말사전은 한국말을 담는 그릇입니다.
백성들을 침탈하여 자기의 사복을 채웠으니
→ 백성들을 괴롭혀 제 밥그릇을 채웠으니
→ 사람들을 들볶아 제 뱃속을 채웠으니
→ 사람들을 짓밟아 제 주머니를 채웠으니
“제복이 아닌 옷”을 두고 ‘私服’이라고 한답니다.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런데, 이 한자말은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에 스며들었습니다. 한겨레는 먼먼 옛날이건 오늘날이건 ‘제복·사복’이 따로 없습니다. 그저 ‘옷’일 뿐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받아들인 서양 문화’에 맞추어 일본 제국주의자가 한국에 군국주의를 심으려 할 적에 ‘제복(군복)’과 ‘사복’을 나누었습니다. 이 아픈 생채기가 오늘날까지 한국에서 가시지 않았기에 이런 한자말을 아직 털어내지 못했습니다.
‘사복’이란 어떤 옷일까요? 우리가 늘 입는 옷이 ‘사복’일 테지요. 그러면, 옷이란 옷인데, 왜 옷을 ‘옷’이라 않고 ‘私服’이라 해야 할까요? 굳이 두 갈래로 옷을 갈라야 한다면 가를 수도 있습니다.
바깥밥과 집밥을 가르듯이, ‘바깥옷’과 ‘집옷’이라 하면 돼요. 바깥에서 일하면서 입는 옷이라면, 예부터 ‘일옷’이라는 낱말을 쓰기도 했어요. ‘제복’이라면 ‘일옷’인 셈이요, ‘사복’이라면 ‘집옷’인 셈입니다. 4347.8.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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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 단짝으로는 모건-록펠러연합인 포토맥전력 사장과 내셔널저축트러스트은행 사장 같은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었으며, 후버 스스로도 월가에서 투기가로서 제 뱃속을 채웠다
“이 회사의 파트너(partner)로는”은 “이 회사 단짝으로는”으로 손보고, “연합에 속(屬)한”은 “연합에 딸린”이나 “연합인”으로 손보며, “포토맥전력의 사장”은 “포토맥전력 사장”으로 손봅니다. ‘등(等)’은 ‘같은’으로 손질하고, “쟁쟁(錚錚)한 멤버(member)들이 참여(參與)하고 있었으며”는 “대단한 사람들이 있었으며”나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었으며”로 손질하며, “후버 자신(自身)도”는 “후버 스스로도”로 손질합니다. “채우고 있었다”는 “채웠다”로 다듬습니다.
사복(司僕) : [역사] = 사복시
사복(私卜) : 개인의 짐
사복(私服)
(1) 관복이나 제복이 아닌 사사로이 입는 옷
- 사복 경찰 / 사복 차림 / 사복 근무
(2) = 사복형사
- 세 명의 사복이 달려들었던 것이다
사복(私腹) :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이나 욕심
- 백성들을 침탈하여 자기의 사복을 채웠으니
사복(私僕) : 예전에, 세도가가 사사로이 부리던 일꾼
사복(思服) : 늘 생각하여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둠
사복(射覆) : 그릇 속에 숨겨 둔 것이 무엇인지 알아맞힘
사복(蛇福) : [문학] 신라 진평왕 때의 이인(異人)
사복(嗣服) : 예전에, 선대의 위업을 계승하거나 왕위를 물려받던 일
(최종규 . 2014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