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소리 1
라가와 마리모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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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61



새하얀 소리는 해맑은 삶노래

― 순백의 소리 1

 라가와 마리모 글·그림

 이상은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2.12.25.



  비가 오는 날에는 빗소리가 흐릅니다. 눈이 오는 날에는 눈소리가 흩날립니다. 흔히들 빗소리는 들어도 눈소리는 못 듣는다고 하지만, 눈이 오는 날에도 소리가 흐릅니다. 갑자기 고요한 기운이 돌면서 소복소복 톡톡 하는 소리가 납니다. 자동차가 끊임없이 드나들고 온갖 기계가 끝없이 움직이는 도시에서는 눈소리를 듣기 어려울 수 있어요. 그러나 눈이 펑펑 내려 자동차를 멈추게 하고 기계도 멈춘다면, 바야흐로 눈소리가 어떠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겨울에 눈이랑 즐겁게 노는 아이들은 아직 눈이 쌓이지 않았을 적에도 눈소리를 듣고는 눈을 번쩍 뜨면서 창밖을 내다봅니다.



- ‘조금만 더 버티면 봄이었는데.’ (5쪽)

- “지금, 내 안은 텅 비었거든. 그래서 뭔가를 얻을라고 찾아 헤매는 듯한 느낌이데이.” (23쪽)

- “츠가루. 츠가루샤미센.” “아아, 요시다 형제나 아가츠마 같은? 하긴, 요즘 유행이니까.” “유행? 정식으로 하는 사람은 유행 같은 거 상관 안 한데이/” (33쪽)




  모기가 날며 애앵애앵 날갯소리를 냅니다. 파리가 날 적에도 날갯소리를 냅니다. 벌도 날갯소리를 내요. 그러면, 나비는 어떠할까요. 나비가 날면서 내는 소리를 알아차릴 수 있겠어요? 잠자리나 개똥벌레는 어떠할까요. 이들 날벌레가 하늘을 가르는 소리를 헤아릴 수 있겠어요?


  요즈음에는 전문직업으로 노래를 하는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어떤 이는 ‘절대음감’이라고도 합니다. 평론을 하든 심사를 하든, ‘가수가 되고 싶은’ 사람이 부르는 노래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따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아주 자그마한 소리까지도 알아채거나 살피는 듯합니다.


  그러면, 이들 평론가나 심사자는 ‘가수가 되고 싶은 사람이 내지르는 소리’라든지 ‘가수인 사람이 내지르는 소리’뿐 아니라, 바람이 풀잎과 나뭇잎을 간질이는 소리라든지, 풀벌레가 풀잎에 내려앉는 소리라든지,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는 소리라든지, 매미가 허물을 벗는 소리라든지, 나비가 꿀과 꽃가루를 빨아먹는 소리를 얼마나 알아차리거나 헤아릴 수 있을까요.



- “때리는 것도 모자라서, 악기까지 상하게 할 셈이야?” (16쪽)

- “유나 씨가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되나?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되는데.” (44쪽)

- “타케토. 너는 정말 밴댕이 소갈딱지구나? 너는 음악을 할 자격이 없어!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야! 그 사진은 뭐냐? 어떻게 악기를 다루는 팔을 짓밟을 수 있어?” (82∼83쪽)





  시골에서 할매나 할배는 ‘호미질 하는 소리’나 ‘낫질 하는 소리’만 듣고도, 호미나 낫을 쥔 사람이 어떤 마음이요 몸인가를 느낍니다. 지겨워 하는 빛인지 즐거워 하는 빛인지 곧바로 알아채거나 느낍니다. 공책에 연필로 글을 쓰는 사각사각 소리를 들으면서, 지겨운 숙제를 하는지 즐겁게 글빛을 가꾸는지, 이런 소리로 마음빛을 헤아릴 수 있는 어른이나 어버이가 있습니다.


  설거지를 하며 내는 소리를 듣고는 어떤 삶빛이 흐르는가를 읽을 수 있어요. 처마를 따라 똑똑 또는 줄줄 흐르는 물방울 소리를 들으면서 날씨가 어떠한가를 읽을 수 있어요. 하늘 따라 흐르는 구름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귀여겨듣는다면 하루 날씨뿐 아니라 며칠 동안 어떤 날씨가 될는지 읽을 수 있어요.


  동이 트면서 해가 저 멧등성이 너머로 올라올 적에도 소리를 듣습니다. 빛과 볕만 느끼지 않아요. 소리가 함께 있습니다. 바닷물이나 냇물이 찰랑거릴 때 물결소리만 있지 않아요. 물내음과 물빛이 함께 있습니다.



- ‘내는 말이제, 봄이 좋다. 하지만도, 겨울이 싫은 건 아니데이. 츠가루의 겨울은 얼어붙을 만큼 춥지만, 해님이 나와서 조금씩 눈을 녹이면, 소리가 변하제. 여름도 가을도 똑같은 기라. 계절마다 소리가 변하니까네. 그 소리를 언제든지 낼 수 있으면 행복한 기라.’ (88∼90쪽)

- “내는 내가 좋아서 켜는 것 외에는 관심 없다!” (149쪽)





  라가와 마리모 님 만화책 《순백의 소리》(학산문화사,2012) 첫째 권을 읽으면서 눈과 귀와 살갗이 모두 즐겁습니다. ‘새하얀 소리’란 무엇일는지 가만히 헤아리면서 즐겁습니다. ‘해맑은 소리’란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짚으면서 즐겁습니다.


  오래된 악기 하나를 켤 줄 알기에 남다른 소리가 흐르지는 않습니다. 서양 악기를 켜든 한국 악기를 켜든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마음을 담아 켜는 악기일 때에 비로소 대수롭고 아름다우면서 즐겁습니다.



-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돌아보게 만드는 기다. ‘소리’를 줄이면 안 된데이.” (160쪽)

- “연주의 우열은 뭘로 정해지노? 아무리 곡에 감정을 실어도, 서투른 건 서투른 기다.” ‘‘할배’의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할배’의 소리가 없어졌다는 건, 길러 준 부모와 스승을 동시에 잃었다는 뜻이다. 우리 형제는 똑같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180∼181쪽)





  악기를 타면서 ‘소리를 줄일’ 까닭이 없습니다. 밥을 지으면서 ‘밥맛을 줄일’ 까닭이 없습니다. 어버이가 아이를 사랑하면서 ‘사랑을 줄일’ 까닭이 없습니다. 삶은 늘 그대로 나아갑니다. 스스로 아름다운 빛이 되어 누리는 삶이기에 나 스스로 아름다우면서 즐겁고, 내 둘레 이웃과 동무한테도 아름다우면서 즐거운 노래를 들려줍니다.


  가수가 되어야 노래를 하지 않아요. 요리사가 되어야 밥을 짓지 않아요. 재단사가 되어야 옷을 짓지 않아요. 작가가 되어야 글을 쓰지 않아요. 사진가가 되어야 사진을 찍지 않아요. 언제나 스스로 삶으로 짓고 가꾸는 노래입니다.



- “연주의 우열 말이다. 내는 기준 같은 거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수많은 샤미센이 울려도 형의 소리를 알 수 있데이.” (184쪽)



  한국에서 꼭 가야금을 타거나 거문고를 뜯는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책이 나와야 하지는 않습니다. 대금이나 소금이나 풀피리를 부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만화책이 꼭 한국에서 나와야 하지 않습니다. 다만, 빛을 노래하고 들으면서 삶을 가꾸는 따사롭고 착한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사랑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 태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만화책 《순백의 소리》는 아주 아리땁습니다. 4347.8.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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