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 한국기층문화의 탐구 4
황헌만 사진, 김홍식 외 글 / 열화당 / 199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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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82



시골집을 찍는 사진

― 草家

 황헌만 사진

 김홍식·박태순·임재해 글

 열화당 펴냄, 1991.1.20.



  사진책 《草家》(열화당,1991)를 읽을 때에는 늘 즐겁습니다.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집이 가득가득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랑스러운 집에서 살아가는 사랑스러운 사람들 모습을 사진으로 엿볼 수 있고, 아름다운 집에서 살림을 꾸리는 사람들 모습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초가》라는 책은 ‘사진책’이라기보다는 ‘인문책’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사진책으로 삼습니다. 글로 ‘풀집’을 이야기할 때에는 제대로 와닿지 않지만, 사진으로 풀집을 이야기할 적에는 살갗으로 와닿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은 황헌만 님은 “초가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반부터의 일이었고, 198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미련스럽다 할 지경으로 이 일에 매달려, 이제 한 권의 책으로 엮게 되었다(237쪽).” 하고 말합니다. 1991년에 나온 책이니 그리 오래지 않은 지난날에 찍은 사진으로 엮은 책입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황헌만 님이 아니더라도 1970∼80년대에 조금만 눈빛을 밝혀 시골을 돌아다녔으면 ‘풀집’ 사진과 ‘고샅’ 사진과 ‘시골’ 사진을 훌륭히 남길 수 있었어요.


  1970∼80년대에 한국 사진가 가운데 몇 사람쯤 시골마을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았을까 궁금합니다. 박정희 독재정권이 막바지에 이른 때요 간첩신고가 불을 뿜던 때였기에, 시골에서 사진을 찍기란 아주 힘들었을까요?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이 불꽃을 피우던 때였기에, 먹고살기에 빠듯하여 필름을 장만해서 사진을 찍기란 몹시 힘들었을까요?


  《초가》에 나오는 모습은 아주 오래된 집이 아닙니다. 쉰 해를 묵거나 백 해를 묵은 사진이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너무 빠르고 끔찍하게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 깃발이 나부낀 바람에, 이 책에 나오는 모습은 아스라이 머나먼 옛날 옛적 이야기 같습니다.






  황헌만 님은 “따라서 여기에 수록된 초가들은, 지금에는 찾아볼 수 없게 되거나 ‘지붕개량’으로 다른 모습을 띠고 있기도 하다. 댐 건설로 인한 수몰지구, 도로 건설, 산업단지 조성 등으로 ‘국토의 살결’이 오죽 달라졌는가. 초가는 한반도로부터 떠나가고 있으나, ‘초가 사진’이 마치 초상화들처럼 남아 있게 된 것에 한 작가로서의 보람과 긍지를 삼아 볼 수 있을까(237쪽).” 하고 말합니다.


  곰곰이 헤아려 보면, 오늘날에는 ‘슬레트 지붕’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슬레트 지붕은 머잖아 모두 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나라에서 돈을 들여 치워 주기도 하지만, 슬레트 지붕은 비바람과 햇볕에 삭고 낡아 쉬 부스러집니다. ‘새마을운동 역사 기록관’을 세울 일이 아니라면 슬레트 지붕을 건사할 일이 없을 테고, 이런 지붕을 얹은 시골집이나 도시집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도 아주 드물리라 생각해요.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사진은 무엇을 찍을까요. ‘남기는 일(기록)’이 사진찍기일까요. 무엇이든 다 찍어서 남기면 사진이 될까요. 이를테면, 독재자를 찍는 사진도 ‘남기는 일’이 되고, 독재정권 군홧발을 휘두른 이들을 찍는 사진도 ‘남기는 일’이 되나요.






  적잖은 사진가는 나라에서 주는 돈을 받고 4대강사업 현장을 ‘그림처럼 멋있게’ 찍습니다. 이런 사진도 우리 사회와 역사를 남기는 일이 될까요.


  《초가》에 글을 쓴 박태순 님은 “대중문화 조작의 이런 노래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가 즐겨 부르던 민요는 무어라 했던가. ‘저기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금도끼로 찍어내고 은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지어내어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지고’라 했다(210쪽).”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래요. 저도 어릴 적에, 1980년대에 이런 노래를 흔히 듣고 불렀습니다. 저도 동무들과 동네 골목에서 놀면서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시골집을 찍는 사진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요즈음은 시골에 할매와 할배가 아주 많습니다. 젊은이는 거의 다 도시로 떠났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시골에서는 시골에 남는 젊은이나 어린이나 푸름이를 깔봅니다. 도시로 갈 재주가 없어서 남는 찌끄레기인 듯 여기기까지 합니다. 이와 달리, 도시에서 시골로 온 사람을 두고는 ‘돈도 있고 생각도 있는’ 사람으로 칩니다. 시골에서 내처 살아온 사람과 시골로 새롭게 들어온 사람을 바라보는 시골사람 눈매가 사뭇 다릅니다.


  시골은 어떤 곳일까요. 오늘날 시골을 돌며 사진을 찍는 사진가 한 사람이 있다면, 이녁은 어떤 빛을 사진으로 담으려 할까요. 어릴 적부터 시골에 그대로 뿌리를 내려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서 사진을 찍는 사진가는 있을까요? 나이 들어 깨우친 빛이 있기에 도시를 떠나 시골로 들어와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서 사진을 찍는 사진가는 있을까요? 그저 늙고 쭈그러든 할매와 할배만 어두컴컴하거나 슬프거나 쓸쓸한 모양새로 찍는 사진가만 있을까요?


  아이들이 시골에서 놀 수 있기를 빕니다. 어른들이 시골에서 일할 수 있기를 빕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시골에서 살림집을 곱게 꾸미면서 아름답게 꿈을 꿀 수 있기를 빕니다. 아름답게 가꾸는 삶을 아름다운 눈빛을 밝혀 사진으로 찍는 이웃이 있기를 빕니다. 사랑스레 돌보는 시골살이를 사랑스러운 손길을 뻗어 사진으로 담는 동무가 있기를 빕니다. 4347.8.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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