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68] 왜 시골에 왔느냐 하면

―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보려고



  엊그제부터 면사무소에서 방송을 합니다. 태풍이 올라오니 모두들 집단속과 문단속을 잘 하랍니다. 바람에 날아가는 것 없도록 하라는 얘기가 흐르고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얘기가 떠돕니다. 오늘도 새벽부터 마을 이장님이 방송을 하고, 면사무소에서 두어 차례 더 방송을 합니다. 참말 태풍이 걱정스럽기는 걱정스러운가 봅니다. 그렇지만, 우리 식구는 태풍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태풍은 한 해에 한두 차례쯤 이 나라를 지나가야 한다고 여깁니다. 왜냐하면, 풀도 나무도 드센 바람을 한두 차례쯤 맞으면서 한결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더욱 씩씩하게 줄기와 가지를 뻗거든요.


  우리 집 마당에서 자라는 나무가 몇 해만 살다가 꺾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 집 후박나무와 초피나무를 비롯해 감나무도 모과나무도 살구나무도 복숭아나무도 매화나무도 탱자나무도, 모두모두 천 해쯤 너끈히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나무 한 그루가 천 해쯤 살아가자면, 드센 비바람을 해마다 한두 차례 맞이하면서 더욱 튼튼하면서 야무진 넋이 되어야 한다고 느껴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줄기가 짧고 알곡이 많이 달리는 나락’을 심습니다. 유전자를 건드린 나락입니다. 농협에서는 이런 나락을 ‘개량종’이라 말하지만, 이 볍씨는 개량종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골 할매와 할배가 ‘개량종 나락 볍씨’를 거두어 이듬해에 다시 심으면 제대로 자라지 않거든요. 해마다 농협에서 볍씨를 새로 사다가 심어야 비로소 알곡을 맺습니다.


  ‘개량종’이라면 씨앗을 받아서 갈무리한 뒤 이듬해에 다시 심어서 거둘 수 있어야 합니다. 유전자를 건드린 씨앗은 한 번 심으면 새로운 씨앗을 받아서 갈무리하지 못해요.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가 걱정할 일은, 온 나라 들판에서 자라는 나락이 ‘유전자 건드린 씨앗’인 대목이어야지 싶습니다. 우리가 걱정할 일이라면, 유전자 건드린 씨앗이 자라는 들에다가 농약을 엄청나게 많이 치는 모습이어야지 싶습니다. 태풍은 한 차례 휘몰아치다가 지나가요. 그렇지만 유전자를 건드린 나락은 우리 몸을 아프게 하고 땅을 망가뜨립니다. 들에 뿌리는 농약은 우리 몸으로 스며들 뿐 아니라, 땅을 무너뜨립니다.


  우리 식구는 시골에서 살아갑니다. 시골에서 살고 싶기에 시골로 와서 살아가면서, 도서관을 꾸리고 글을 써서 책을 내놓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까닭을 들자면 여럿 있을 텐데, 맨 첫째로 꼽는 까닭은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보고 싶다’입니다. 내 마음을 파랗게 물들이고 싶습니다. 내 넋을 파랗게 밝히고 싶습니다. 내 사랑을 파랗게 가꾸고 싶습니다. 내 가슴속에 파란 별이 자라도록 돌보고 싶습니다. 4347.8.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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