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만화책



  아이들이 만화책을 즐겁게 읽습니다. 만화책이 아이들 눈높이에 잘 맞을 뿐 아니라, 재미있고 즐거우면서 생각날개를 활짝 펼치도록 이끌기 때문입니다. 어른들도 만화책을 기쁘게 읽습니다. 만화책이 어른들 눈빛에 걸맞을 뿐 아니라, 재미있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빛이 그득하기 때문입니다.

  만화책은 만화로 빚은 책입니다. 만화로 빚기에 만화책일 뿐, 다른 것은 없습니다. 그림책은 그림으로 빚은 책입니다. 더도 덜도 아닙니다. 글책은 글로 빚은 책입니다. 사진책은 사진으로 빚은 책입니다.

  만화나 그림이나 글이나 사진이라는 ‘틀’을 써서 ‘이야기’를 담는 책입니다. 어떤 틀을 쓰더라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읽는 사람입니다. ‘틀’을 읽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때때로 틀도 읽을 만해요. 만화결이나 그림결이 고소하다면 한결 재미날 수 있고, 글결이나 사진결이 이쁘장하다면 한결 반가울 수 있어요.

  아름다운 만화책이 많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그림책이 많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사진책도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와 도서관과 문화와 학교를 돌아보면, 만화책은 ‘책’으로 안 다루기 일쑤입니다. 도서관 십진분류법에서 만화책은 어디에 들어갈까요? 그림책이나 사진책은 어디에 들어갈까요? 도서관 분류법은 오직 ‘글책’만 다루는 얼거리는 아닐는지요?

  만화로 이야기를 펼치든,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이야기를 펼치든 모두 반갑습니다. 어떤 틀을 쓰든, 삶을 빛내어 곱게 밝히려는 따사롭고 너그러운 마음씨를 담는 책일 때에 반갑습니다.

  요즈음은 ‘학습만화’라는 이름을 내세운 ‘껍데기 만화책’이 무척 많이 나옵니다. 여느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학습만화를 사다 줍니다. ‘만화책’이 아닌 ‘학습만화’를 말이지요.

  학습만화는 만화책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일까요? 학습만화는 문제집이나 참고서나 교과서와 똑같습니다. 참고서는 책이 아니고, 문제집도 책이 아닙니다. 책과 비슷한 꼴이지만, 책이 아닌 종이꾸러미이지요.

  글로 빚은 책 가운데에도 돈벌이에만 눈길을 둔 ‘처세책’이나 ‘경영책’이나 ‘자기계발책’이 대단히 많습니다. 학습만화란 상업만화요, 상업만화란 오직 돈벌이를 헤아려 ‘아이들이 교과서 지식을 더 잘 갖추어 대학입시지옥에서 더 잘 살아남도록 하는 참고서’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버이도 교사도 여느 어른도 이 대목을 알 노릇입니다.

  그림책 가운데에도 그림책 모양새를 하지만, 정작 그림책이 아닌 종이꾸러미가 있어요. ‘교과서 진도와 학습’에 도움이 되도록 엮는 그림책이 바로 ‘종이꾸러미’이자 참고서입니다.

  이제는 꽤 널리 알려졌지만 아직 알아차리지 않는 어른이 많기도 한데, 어린이책은 어린이만 읽는 책이 아닙니다. 그림책은 어린 아이들만 보는 책이 아닙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모든 어른이 함께 즐기고 누릴 수 있는 책입니다. 그림책은 퍽 어린 아이들도 삶을 읽고 사랑을 읽으며 꿈을 읽는 길에 즐겁고 반가운 길동무가 되는 책입니다.

  어버이나 교사나 여느 어른이 ‘아이와 함께 즐겁게 읽으면서 삶을 밝히는 길을 생각하는’ 책이 바로 그림책입니다. 그리고, 만화책도 이러한 얼거리하고 똑같이 맞아떨어집니다. 만화라는 틀을 써서 삶을 아름답게 그리고 사랑을 착하게 담으며 꿈을 싱그럽게 일구는 만화책이란, 바로 우리 삶과 어깨동무하는 책입니다. 삶책입니다.

  한국에서는 창작 만화책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오늘날 사회와 교육과 문화가 오롯이 ‘입시 경쟁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학습만화가 불티나게 팔리고 읽히며 돈까지 됩니다. 이런 흐름을 그대로 따르면서, 책다운 만화책하고는 사귀지 못한 채, 학습만화에만 길들며 눈과 마음을 잃어버린다면, 우리 삶은 어떤 빛이 될까요.

  그림책 읽는 어버이처럼, 만화책 읽는 어버이로 거듭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무늬만 만화인 책이 아닌, 아름답고 착하며 사랑스럽고 즐거운 만화책을 알아보는 눈 밝고 슬기로운 어버이가 되어야지 싶습니다. 눈이 밝은 몸짓으로 아름다운 그림책과 사진책을 알아보면 하루하루 즐겁겠지요. 눈이 밝은 몸가짐으로 춤을 추듯이 삶을 노래하는 이야기책을 하나하나 누린다면 날마다 활짝 웃으면서 이웃과 동무한테 살갑게 말 한 마디 건네겠지요. 4347.8.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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