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알라딘 - 만화가 이우일의 폴라로이드 사진집
이우일 사진.글 / 호미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찾아 읽는 사진책 183


사진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아니
― 굿바이 알라딘
 이우일 사진
 호미 펴냄, 2007.12.31.


  2014년에 일곱 살을 누리는 우리 집 큰아이는 갓 태어난 뒤부터 아버지 곁에서 사진에 찍힙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날마다 함께 지내면서 날마다 사진을 찍으니, 나는 이 아이들을 맨 처음 사진으로 찍던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가지 모습도 잊히지 않습니다. 아니, 우리 아이들을 놓고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떠올릴 수 있습니다.

  큰아이가 갓난쟁이였을 무렵, 이 아이는 날마다 저를 빤히 들여다보며 사진을 찍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그러고는 여섯 달쯤 될 무렵인데, 볼볼 기어서 아버지 사진기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입을 맞춘다기보다 입에 넣어 맛을 보고팠구나 싶지만, 사진기는 아기 입보다 훨씬 크니 아기한테 잡아먹히지 않았습니다. 큰아이는 아버지 손전화를 쪽쪽 빨아서 먹느라 하나를 날려 보냈지만, 사진기는 날려 보내지 못했습니다. 돌을 앞두고 두 다리로 설 수 있던 큰아이는 아버지 사진기를 영차 하고 들어 목에 걸어서 놀기도 했습니다. 사진기 몸통과 렌즈 무게가 이 킬로그램 가까이 되었으니, 갓난쟁이로서는 대단히 무거운 것을 들고 목에 걸어서 논 셈입니다.

  나는 큰아이한테 ‘사진찍기’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디지털사진기를 쓰면서 디지털사진기에 찍힌 모습을 화면으로 어떻게 보는지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큰아이는 저 혼자 오물조물 만지더니 아버지 사진기로 사진을 찍습니다. 두 돌이 되기 앞서 ‘사진읽기’를 합니다.

  2014년에 네 살인 작은아이는 누나와 달리 아버지 사진기에 그리 눈길을 안 둡니다. 네 살에 이른 요즈음에 가끔 아버지 사진기를 슬쩍 집어들어 갑자기 수십 장을 촤라락 찍어대고는 얌전히 내려놓습니다.






  만화를 그리는 이우일 님이 내놓은 사진책 《굿바이 알라딘》(호미,2007)이 있습니다. 2007년에 나온 책이니 일곱 해만에 이 사진책을 알아보았습니다. 고맙게 아직 판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사진책 《굿바이 알라딘》을 보면 이우일 님 딸아이가 나오는데, 이때까지는 아주 어린 아이였다면, 이때부터 일곱 해가 흐른 요즈음은 이우일 님 딸아이는 훌쩍 컸겠지요. 아가씨가 다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폴라로이드 sx-70랜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는 것, 그것으로 단 한 장의 사진을 얻는다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다. 그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으니 공들여 단 한 장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그렇다(머리말).” 하고 흐르는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사진도 하나요 이야기도 하나입니다. 그리고, 아이도 하나요 어버이도 하나입니다. 우리 집에는 두 아이가 있습니다만, 큰아이는 큰아이대로 오직 하나뿐인 오롯한 숨결이고, 작은아이는 작은아이대로 오직 하나인 옹근 숨결입니다. 아이들한테도 어머니와 아버지는 오직 하나인 어머니요 아버지입니다.

  이우일 님은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쓰셨는데, 폴라로이드 사진기가 아니더라도, 사진은 언제나 하나만 얻습니다. 디지털사진기이든 여느 필름사진기이든 이와 같습니다. 원본파일과 원본필름이 있으면 언제든지 ‘복제’를 한다지만, 복제해서 다시 만드는 사진은 처음 만든 사진하고 빛과 느낌과 이야기가 달라요.

  다시 말하자면, 어떤 사진기를 쓰든, 우리는 오직 ‘사진을 한 장 얻’습니다. 오직 한 장만 얻는 사진찍기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꾸자꾸 새롭게 사진을 찍습니다. 한 번 찍은 사람을 다시 찍습니다. 한 번 찍은 나무와 꽃을 다시 찍습니다. 한 번 찍은 백두산과 지리산을 다시 찍습니다. 한 번 찍은 헌책방과 골목길을 다시 찾아가서 한참 거닐거나 누린 뒤 다시 찍습니다.

  사진은 스스로 찍을 때마다 새롭습니다. 사진은 스스로 만날 때마다 새롭습니다.

  이우일 님은 이녁이 쓴 사진기와 필름을 놓고 “그게 ‘타임 제로’ 필름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온도가 적당하면 포근하고 아련한 느낌의 사진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머리말).” 하고도 이야기합니다.






  참말 그렇습니다. 저는 디지털사진기 가운데 ‘캐논350D’를 무척 오랫동안 썼습니다. 사진기 부속이 모두 낡고 닳아 두 번 갈았는데, 더는 고쳐서 쓸 수 없다고 느껴, 이제는 ‘캐논100D’를 씁니다. 예전에 한 가지 사진기로만 오래 쓴 까닭은 그 사진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빛결이 있기 때문이에요. 다른 사진기로는 도무지 그 빛결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성능이나 화소가 훨씬 높은 다른 사진기로 찍어 보아도, 참으로 그 빛결이 나오지 않더군요.

  필름사진기도 기계마다 빛결이 다릅니다. 사진기 만든 회사마다 빛결이 살짝 다르고, 같은 회사 사진기라도 기종마다 빛결이 달라요.

  생각해 보면 누구나 알리라 느껴요. 똑같은 빛결이 나올 사진기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다 다른 사진기를 저마다 제 사진감에 맞추어서 씁니다.

  같은 곳에 서서 같은 것을 바라볼 적에도, 스스로 어떤 마음이고 눈길인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 다른 이야기를 짓습니다. 같은 곳에 서서 같은 것을 사진으로 찍을 적에도, 스스로 어떤 생각이고 눈빛인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이야기가 깃든 사진이 태어납니다.

  이우일 님은 “사진을 찍을 때 무엇으로 어떻게 찍었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사람이 찍는 것이니 찍는 이의 마음과 시선이 가장 중요하다고(머리말).” 하고 말합니다. 그림을 그릴 적에도 늘 이와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떤 그림결로 그림을 그리느냐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연필로 그림을 그리든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든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종이에 그림을 그리든 벽에 그림을 그리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 하는 대목을 담을 때에 ‘그림’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 어떤 사랑인가 하는 대목을 실을 때에 ‘글’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어떤 꿈인가 하는 대목을 얹을 때에 ‘사진’입니다.

  사진책 《굿바이 알라딘》을 천천히 읽은 뒤 덮습니다. 이우일 님은 이녁 사진에 더러 말을 몇 마디 붙입니다. 애써 말을 안 붙여도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알 만합니다. 굳이 말을 붙였기에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한결 잘 알 수 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반짝거리는 물건에 초점을 맞추면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58쪽).”와 같이 적은 글월에 밑줄을 긋습니다.

  즐겁고 싶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노래하고 싶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찍으면 얼마나 재미있는지 아시나요? 참말 재미있어서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읽으면 얼마나 재미있는지 아시나요? 참으로 재미있어서 사진을 읽습니다. 하루하루 재미있으니 새롭게 동이 트며 아침이 찾아옵니다. 하루하루 재미가 넘치니 아침이 지나 낮이 되고 저녁이 찾아와 밤이 깜깜하며 별빛이 흐릅니다. 사진은 삶빛입니다. 4347.7.3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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