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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호 아이들은 왜 학교가 좋을까? - 장주식 선생님과 하호분교 아이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장주식 지음 / 철수와영희 / 2008년 12월
평점 :
사랑하는 배움책 24
아이들은 놀 수 있어야 즐겁다
― 하호 아이들은 왜 학교가 좋을까?
장주식 글
철수와영희 펴냄, 2008.12.15.
2014년이 흐릅니다. 올해에 우리 집 큰아이는 일곱 살입니다. 둘레에서 우리 큰아이를 보고 으레 나이를 물은 뒤 ‘곧 학교 가겠네.’ 하고 말합니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여덟 살이 되면 반드시 학교에 가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면, 학교에는 왜 가야 할까요? 아이들은 학교에 가면 무엇을 배울까요? 학교는 아이한테 어떤 곳일까요?
사회에서 지내려면 학교에 가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면, 사회란 어떤 곳일까요? 어떤 사회에서 지내야 하기에 학교에 가야 할는지요? 학교에 가면 아이들은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요? 아주 마땅히, 아이들은 학교에서 교과서를 배웁니다. 교과서에 따라 시험을 치르고 성적표를 받습니다. 아이들은 시험성적에 따라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에 가야 한답니다. 그러면, 대학교는 왜 가야 할까요? 대학교에 안 가면 안 될까요? 대학교에 가야 지식을 제대로 익히는가요? 대학교에서는 어떤 지식을 익힐 수 있는가요?
.. 아이들의 삶은 ‘정직’ 그 자체다. 아이들은 속일 줄을 잘 모른다. 남의 물건을 훔치고, 거짓말을 하는 아이도 더러 있으나, 그것은 그 아이의 본 바탕이 결코 아니다. 그 아이의 뒤에 그늘처럼 드리워져 있는 그릇된 어른의 삶이 아이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 내가 광호의 시를 낭독해 주었더니 아이들이 다 손뼉을 쳤다. 환호성을 지르면서 말이다. 광호의 눈가가 발그레해졌다 … “에이, 담부턴 골든벨 하지 마요.” 가슴 떨리는 경쟁이 싫다는 신음 소리다. 더구나 뭔가 선물까지 걸어 놓고 하는 경쟁이라 더욱 싫은 듯하다. 아무래도 내가 실수를 한 듯하다 .. (23, 38, 110∼111쪽)
학교에서는 삶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교과서만 가르칩니다. 학교에서는 사랑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사랑을 배울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꿈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시험성적만 가르치고, 대학입시만 가르칩니다.
학교를 잘 다니는 아이는 사회가 시키는 대로 잘 따를 수 있는 몸이 됩니다. 학교를 잘 마친 아이는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될 수 있습니다.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면 도시에서 연봉을 받을 테고, 연봉에 맞게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을 얻어서 살림을 꾸리겠지요.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된 아이들은 예순 남짓 나이가 되면 일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이때부터 연금을 받으면서 ‘놀’겠지요.
그러면, 예순이 넘은 나이부터 ‘놀’ 할매나 할배는 무엇을 하면서 놀까요? 돈을 쓰고 여행을 다니면서 노나요?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전원주택을 가꾸면서 놀까요?
아이들은 여덟 살에 접어들어 예순 살이 지날 때까지 ‘삶’이 없습니다. 그저 ‘월급쟁이’가 될 뿐입니다. 아이들은 여덟 살을 지나 예순 살이 넘도록 ‘사랑’을 배우거나 가르칠 일이 없습니다. 짝을 만나 시집장가를 가기는 하더라도, ‘사랑’으로 거듭나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여덟 살이 되면 ‘꿈’이 아닌 ‘직업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앞으로 도시 사회에서 어떤 일자리를 직업으로 삼아서 돈을 벌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다스려야 합니다.
.. 이때 순간적으로 난 ‘그건 너만의 생각이지’ 하고 받아칠 뻔했다. 아찔하다. 만약 그렇게 툭 말했다면 승비는 그냥 입을 닫았을지도 모른다 … 나도 열아홉 살가지 시골에서 살았으나 변변히 아는 풀이름조차 없었다. 다만 ‘소가 먹는 풀과 먹지 않는 풀’로만 구분했을 뿐이다 … 교사가 여유롭고 평화로우면, 아이들을 바라보는 교사의 시선은 부드러워진다 … “군대 못 오게 해요.” 승비와 혜주가 합창을 하였다. “글쎄, 어떡하면 좋을까?” 나는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아이들 눈에 보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낀 하루였다 .. (26, 59, 66, 74쪽)
학교에 들어가는 아이는 삶과 사랑과 꿈을 배우지 못합니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는 아이는 집짓기·밥짓기·옷짓기를 배우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집과 밥과 옷을 보여주거나 가르치지 않아요. 과목에 맞추어 지식을 외우도록 할 뿐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집을 어떻게 얻나요? 건설업자가 지은 아파트를 빌리거나 사야겠지요. 아이들은 밥을 어떻게 얻나요? 어머니가 김치를 담거나 밥을 차려 주거나, 바깥에서 돈을 치러 밥을 사다 먹어야겠지요. 아이들은 옷을 어떻게 얻나요? 스스로 실을 얻거나 천을 짜지 못한 채, 옷집에 가서 돈을 주고 사서 입어야겠지요.
가만히 보면, 학교가 생기고 사회가 선 뒤로, 우리들은 모든 것을 잃고 지식과 졸업장을 얻었습니다. 학교가 없고 사회가 서지 않던 지난날에는, 우리들은 누구나 스스로 삶과 사랑과 꿈을 지었고, 집과 밥과 옷을 지으며 살았습니다. 학교가 생기면서 ‘홀로서기(독립)’를 하는 사람이 사라집니다. 학교가 온 나라를 뒤덮어 모든 아이가 학교를 다녀야 한 뒤부터, ‘홀로서기(자급자족)’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모조리 없어집니다.
.. 혜주도 아빠를 닮아서 산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숨소리 한 번 거칠어지지 않고 산을 잘도 올라간다 … 재미있는 노랫말을 많이 주기만 한다면 아이들이 요즘 자기들의 생활에 맞는 노랫말로 바꾸어 부르며 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 보았다 … 아이들을 모아 놓고 이런저런 역사 이야기를 시도해 보지만, 아이들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다. 미끄럼 타기 좋은 잔디밭이나, 좀 위험해 보이는 무너진 석축을 타고 놀기 같은 것 .. (57, 87, 105쪽)
장주식 님이 쓴 교육일기인 《하호 아이들은 왜 학교가 좋을까?》(철수와영희,2008)를 읽습니다. 책이름처럼 하호학교 아이들은 학교를 좋아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은 학교를 좋아한다고는 느끼지 못하겠어요. 학교가 좋은 아이가 아니라, ‘공부 경쟁을 덜 하면서, 조금 더 홀가분하게 놀 수 있는 터’이기 때문에 좋아하는구나 싶습니다. 하호학교에서도 장주식 님이 아이들한테 경쟁을 시키거나 시험을 치르게 하면, 모두 죽을 얼굴이 되고 죽은 마음이 되며 죽고 마는 몸짓이 되어요.
그러면, 왜 장주식 님을 비롯해서 학교에서 교사들은 경쟁을 시키거나 시험을 치르게 할까요? 위에서 시키니까요. 사회에서 시키니까요. 정치와 교육이 시키니까요.
삶을 헤아린다면 경쟁을 할 까닭이 없습니다. 삶을 찾아서 밝히고 가꾸려 한다면 시험을 치를 까닭이 없습니다. 어깨동무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마을에서는 두레와 품앗이가 있을 뿐, 경쟁이나 시험이란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호학교 아이들은 ‘놀이’를 할 수 있고, ‘어깨동무’를 하거나 ‘두레’를 할 수 있을 때에 즐겁게 웃습니다.
.. 우리 반 아이들은 물론이고, 5학년·3학년 아이들도 두엇 만났는데, “선생님, 1·2교시 체육 때 뭐 해요?” 하고 묻는다. 체육을 하지 않을 거라고 눈꼽만큼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얼굴이다. “오늘은 각자 교실에서 해. 더워서 운동장에서 못 해.” 이런 내 말에 아이들이 대번에 신음 소리를 내지른다. “왜요?” … 아이들은 정말 지치지 않는다. 힘이 무진장 끝도 없이 샘솟았다. 무려 열한 경기를 거의 쉴 새 없이 참여하면서도 힘들다고 중간에 포기하는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 우리 교실에도 겨울에 볕이 잘 들지를 않으니, 아이들은 볕을 따라 돌아다닌다. 틈만 나면 볕이 드는 창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재잘댄다 .. (170, 218, 255쪽)
장주식 님은 한 해 동안 바지런히 교육일기를 썼습니다. 이녁한테 부끄러울 만한 이야기를 감추지 않습니다. 알뜰살뜰 엮은 일기입니다. 교사와 어버이한테 거울이 될 만한 일기입니다. 다만, 장주식 님 스스로 한 가지를 놓친다고 느낍니다. 왜 학교가 있어야 하는지를 헤아리지는 않는구나 싶습니다. 학교가 무엇을 하는지를 살피지는 않는구나 싶어요.
하호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어디로 갈까요? 중학교나 고등학교는 어떠한가요? 초등학교까지만 맡으면 되고, 그 뒤에는 아이들이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할 뿐일까요?
하호학교에서도 예방주사를 그대로 놓습니다. 장주식 님도 예방주사가 무엇인지 깊이 살피지 않고 아이들한테 맞힙니다. 아마, 어느 학교 교사라 하더라도 예방주사를 제대로 알지는 못하리라 느낍니다. 나라에서 맞히라니까 맞힐 뿐, 예방주사 성분을 스스로 알아보거나 살피는 교사는 거의 없지 싶어요.
무슨 소리인가 하면, 예방주사뿐 아니라 교과서를 왜 써야 하는지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과서에 어떤 이야기가 깃드는가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이 초·중·고등학교를 열두 해 동안 다니면 모조리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갑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시골에 갈 생각을 아예 안 합니다. 학교만 다니면 모두 ‘도시내기’가 되거나 ‘도시바라기’가 됩니다.
.. 난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로 중학교를 가지 못하고, 1년 동안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일을 하였다. 물론 나는 중학교에 가지 못한 것에 대하여 별 불만도 없었다. 학교라는 곳에 대해 흥미도 없었고, 공부에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하는 일은 너무 힘들었다. 주로 논일과 밭일인데, 특히 담배 농사는 정말 힘들었다. 더운 여름날 진액이 나와 진득거리는 담뱃잎을 져 나르고 꿰고 말리는 일은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자고 일어나면 일·일·일이 이어졌다. 점점 일에 꾀가 나기 시작했고, 고통스런 노역에서 벗어나려면 중학교에 가야 된다는 걸 알았다 .. (286쪽)
시골에서 스스로 흙을 가꾸고 사랑하는 길을 이야기하는 교과서가 하나도 없습니다. 비료와 농약과 비닐과 시멘트와 기계를 쓰지 않고 들과 숲과 마을을 살리는 길을 밝히는 교과서나 책도 찾아보기 아주 어렵습니다.
아이들은 놀 때에 즐겁습니다. 아이들은 놀면서 자랄 때에 씩씩하게 큽니다. 아이들은 놀 때에 노래를 부르고, 아이들은 함께 놀면서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길을 느낍니다. 아이들은 어깨동무를 하는 동안 슬기로운 빛을 깨닫고, 아이들은 서로 돕고 함께 이웃을 보살피면서 꿈을 아름답게 키웁니다.
한여름에도 아이들은 땀을 흘리면서 뛰놉니다. 한겨울에도 아이들은 손발과 볼이 빨개지도록 뛰놉니다. 무엇이 이 아이들을 움직이게 할까요? 장주식 님이 남긴 1년 기록은 무척 돋보이기는 한데, 아이들이 왜 즐겁게 웃을 수 있는지 살피는 눈썰미를 《하호 아이들은 왜 학교가 좋을까?》에는 미처 담지 못했구나 싶어 아쉽습니다. 장주식 님 아이는 제도권학교 아닌 대안학교에 들어갔다는데, 하호학교 아이들은 나중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호학교 아이들이 아닌 다른 곳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호학교에서 한국과 지구별을 읽는 빛을 담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회에 길드는 아이라든지 사회에 톱니바퀴가 될 아이가 아닌, 삶을 가꾸고 사랑을 노래할 아이들과 함께 얼싸안는 어른이 되는 길을 밝히고 보여주는 교육일기를 새롭게 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7.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